목공 소녀
박정윤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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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공 소녀》는 <초능력 소녀> <트레일러 소녀> <기차가 지나간다> <목공소녀> <소요> <파란 평행봉> <내 곁에 있어줘> <길은 생선 내장처럼 구불거린다> <미역이 올라올 때> 총 아홉 편의 단편들을 수록하고 있다. 특히나 인상 깊게 다가온 작품은 <초능력 소녀>와 <목공 소녀>였다. 초능력 소녀는 뱃속에서 결합쌍생아로 있던 '수'와 '화'가 태어나면서 기적처럼 분리된 소녀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성장하면서 일반적인 일란성 쌍생아로 자란 그녀들은 독특하게도 분리되는 과정에서 서로의 등에 흔적이 남았고 그 흔적을 맞닿으면 서로의 생각과 모든 것들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러던 그녀들에게 현실의 참혹한 사건이 일어나면서 예기치못한 길을 가게 된다. 목공 소녀 같은 경우도 주인공 '진이'는 소녀이지만 소녀가 아닌 삶을 살아간다. 아버지가 죽고 상어라는 존재에게 유린당한 뒤 그녀는 15년 동안이나 중학생 소녀라는 타이틀에 머무르며 현실과 공포들을 부정한다. 이처럼 이 글 속의 소녀들은 하나같이 평범한 소녀였다가 한 사건들을 통해 더 이상 소녀일 수 없는 검은 암흑 속으로 빠져들게 되는데, 이러한 사건들 속에서 소녀들이 왜 소녀일 수 없는지에 대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인식할 수 있게 된다.


"소녀에서 성장을 멈춰버린 소녀들이 도로로 질주하고 있고 길은 막다른 골목이다. (...) 너무도 참혹한 그 풍경 속에서 어느 순간 소녀들은 화상 입은 얼굴에 이식한 남의 피부처럼 이질적이다 못해 섬뜩한 존재가 되고 만다. 박정윤은 이 기괴한 콜라주를 조감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으로 들어가 진물이 흐르는 소녀들의 등에 기꺼이 자신의 등을 맞댄다." 라고 평한 하성란 소설가의 글이 참으로 와닿았다. 이 글 속의 소녀들은 하나같이 소녀라기엔 지나치게 적나라하고 섬뜩하다. 흔히들 소녀라는 이미지에 생각하는 아름답고 풋풋하고 순수하기만 한 이미지는 찾아볼 수 없다. 이 소녀들은 모두 위험한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고 있다. 또한 이번 작품 속 소녀들은 그녀의 전 작품인 <프린세스 바리>와 같은 맥락에서 이야기되고 있다고 하는데, 그 전 작품을 보지 못해 궁금증이 일었다. 이 단편들과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작품 같아서 기회가 되면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돌 안에 스며든 것을 파내는 작업이다. 나는 덩어리 돌앞에서 돌을 쓰다듬고 연장으로 톡톡, 쳐보기만 할 뿐, 돌 속에 스며들어 있는 것을 아직, 끄집어내지 못하고 있다. 늦게 돌 앞에 앉아 더디게 돌을 들여다보고 있지만 나는 멈출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낡은 연장을 손에서 놓지 않을 것이다." 라는 저자의 말처럼, 끊임없이 손에 연장을 든 채로 돌 안에 스며든 것들을 파내고 또 파내어 세상밖에 내놓을 날이 기다려진다. 어떤 돌을 다듬고 어루만져 또 다른 기묘함과 신선함을 안겨줄지, 그녀의 다음 작품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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