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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린 아픔
소피 칼 지음, 배영란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첫인상은 시린 아픔이라는 제목의 느낌과 책의 느낌이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었다. 보통 책을 선택하는 데에는 제목의 비중이 클 때도 있고, 누군가의 추천이나 내용에 따른 경우도 있다. 혹은 책의 내용이나 제목과 상관 없이 책의 디자인이나 느낌이 압도적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경우도 있다. 이 책 같은 경우에는 제목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책의 독특한 디자인과 느낌이 단연 좋았다.
이 책은 저자인 소피칼이 외무부 장학금으로 일본에 가 있는 동안의 D-92일이 생각지도 못한 이별을 맞이하는 기간이 되면서, 그 이별의 과정들을 하루하루 카운트다운하며 담아낸 기록이다. 마치 예술서적이나 사진집을 연상케 하듯이 앞부분에는 사진들이 많이 자리잡고 있어 책장을 넘기며 하루씩 그녀의 이별 카운트다운을 같이 세는 기분이었다. 처음 그녀가 언급했던 것처럼 그녀는 이별의 탓을 일본으로 생각했다. 떨어져 있어야했던 그 시간들 말이다. 하지만 이별을 맞이하고 그 이별을 극복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자신의 이별이야기를 토로하며 그녀는 받아들여야 하는 이별에 대해 바로 보고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보통의 이별이 그러하듯, 힘든 이별은 끝끝내 마음 속에 남아 불현듯 나타나 스스로를 괴롭히거나 오래도록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보통 이러한 이별이 남겨주는 아픔들은 홀로 감내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녀는 이별을 상대화시켜 상대방의 아픔을 듣는 대신 자신의 이별이야기를 털어놓는 것으로 이별을 극복시켰다. 그녀의 말대로 그것은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3개월 정도의 기간에 이별을 극복했다고 하니 말이다. 누군가는 이별뿐 아니라 가슴 속 상처는 홀로 꽁꽁 싸매 저 깊은 마음 속에 숨겨두는 것보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그 사실을 진실되게 마주해야 극복할 수 있다고들 말한다. 어쩌면 그녀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 이야기일 듯하다. 오랜만에 독특한 감성을 담아낸 수필집을 만날 수 있어서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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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나는 외무부 장학금으로 3개월간 일본에 가 있게 되었다. 10월 25일, 그 사람과 헤어지기 전 92일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도 모른 채, 나는 프랑스를 떠났다. 평범한 이별이었으나, 그 당시 나에게 그와의 이별은 내 생애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으로 느껴졌다. 나는 이 모든 게 일본 여행 탓이라고 생각했다. 1985년 1월 28일, 프랑스로 돌아온 나는 일본에서 지낸 이야기를 하기보다, 실연의 아픔을 달래기 위한 의식적 행위로서 내 아픔을 이야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 대신 친구든 우연히 만난 사람이든 내 이야기를 들은 상대방에게 지금껏 자신이 겪은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억지로라도 내 사연을 이야기하다가 나 스스로 지칠 때쯤, 혹은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견주어 나 자신의 고통을 상대화하게 될 때쯤, 서로의 가슴 아픈 사연을 주고받는 이 행위는 끝이 난다. 이 방법은 근본적인 효과가 있었다. 석 달 만에 완전히 치유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