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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 소실형 ㅣ 레드 문 클럽 Red Moon Club
가지오 신지 지음, 안소현 옮김 / 살림 / 2014년 9월
평점 :
존재하나 존재하지 않는 소실형. 처음 이야기를 읽기에 앞서 이 '소실형'이라는 것이 굉장히 궁금했다. 어떻게 소실형을 받게 되는 것일까. 아니, 존재하기는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렇다면,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게 되는 것일까,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이러한 의문들을 안고 이야기를 읽어 나갔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사미 가쓰노리다. 바로 소실형을 선고 받은 인물이다. 이야기의 앞 부분에서부터 그가 소실형을 선고 받게 되고, 그 소실형이 무엇인지 하나하나 보여준다.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리게 되면서 1년이라는 실형을 선고 받게 된 주인공 가쓰노리는, 솔깃할만한 제안을 받게 된다. 바로 1년이라는 실형을 8개월로 줄여준다는 것이었다. 그 조건이 소실형이다. 감옥에서 1년을 보내는 대신, 소실형이라는 형을 택하면, 자신이 살던 집에서 8개월만 버티면 되는 것이었다. 그 누구나 이 제안을 받게 되면 고민을 하게 될 것이다. 감옥과 집, 거기다가 4개월이라는 기간까지 줄여주지 않는가. 하지만, 가쓰노리는 소실형이라는 형벌에 대해 제대로 된 설명을 듣지 못한 채 그 제안을 받아 들인다. 소실형은 '베니싱 링'이라고 하는 특수 목걸이를 하게 되는데, 이 특수 목걸이는 전파로 인해 이 목걸이를 착용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게 된다. 때문에 자신의 앞에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가 자신을 발견할 수 없는 것이다. 하지만, 투명인간과 같은 원리가 아니라 전파를 통해 사람들에게 보이지 않는 것뿐이기 때문에, 조심하지 않으면 그 사람들과 부딪히거나 차에 치이거나 사고를 당하게 될 수도 있었다. 그런 사고는 결국 죽음에 이르기 때문에 꽤나 공포스러웠다. 길을 지나가다가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고, 앞과 뒤에 오는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집에서 생활하긴 하지만, 대중매체는 어떤 것도 접할 수 없고, 말을 할 수도 없으며, 편지나 글을 쓸 수도 없다. 하루에 한 번씩 걸어서 시설에 나와 음식을 배급받아야 한다. 그 어떤 대중교통도 이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에는 집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들이 더욱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을 살펴 보면, 소실형이라는 것이 무섭게 다가온다. 잘못된 행동을 하려고 하면 목걸이가 스스로 감지해 목을 조여 온다. 내내 감시를 당하는 기분이다. 무엇하나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인간의 존엄에 관한 문제가 담긴 소실형과 갑작스럽게 가쓰노리에게 발생한 사건들. 이 모든 것들이 씁쓸하고 안타까웠다. 과연 이러한 형벌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생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읽는 내내 많은 생각을 갖게 해준 작품이었다. 이야기 속 가쓰노리가 말했던 것처럼, 인생은 일정한 형식으로 비일상적인 사건에 연류되며 모든 것은 다시금 일상으로 돌아간다. 이 이야기 역시 마찬가지다. 시간은 흐르고 삶은 지속되고 세상은 언제나처럼 그렇게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