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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든 멀리 가고 싶은 너에게 - 시인 엄마와 예술가를 꿈꾸는 딸의 유럽 여행
이미상 글.사진, 솨니 그림 / 달콤한책 / 2014년 5월
평점 :
절판
오래 걷다 보면 거리의 사람들이 먼 곳에 존재함을 느낀다. 이 거리, 이 나라, 이 사람들은 내 인생에 개입할 리 없다. 그들은 배경처럼 내 뒤로 사라진다. 나는 홀로 존재하는 1인극 배우. 이 거대한 무대 위의 다른 모든 이는 엑스트라. 내가 듣지 못하는 말로 떠드는 그들은 살아 있는 유령. 여행에서 경험하는 환상의 순간이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위해 존재하는, 나 홀로 살아 움직이는 외롭고도 충만한 시간. -26쪽
시인 엄마와 예술가를 꿈꾸는 딸의 유럽 여행기인, <어디든 멀리 가고 싶은 너에게>는 이야기 자체가 진솔하고 솔직하며 꾸밈이 없다. 그저 여행기에서 즐기는 아름답고 감성에 젖은 이야기들이 아니라, 그저 한 사람의 엄마와 딸의 이야기들을 기록하고 있다. 갑작스럽게 생에 처음 떠나게 된 엄마의 유럽 여행은 자유분방한 딸이 아니었다면, 평생 이루어질 수 없었던 그저 꿈에 불과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내심 두렵고 불안하면서도 유럽 행 길에 올랐고, 그곳에서 바라본 웅장하면서도 충만한 하늘빛을 바라보며 이제껏 이런 하늘이 존재하는지 조차 몰랐다는 사실에 속고 살아 온 것만 같다고 토로한다. 아마도 그녀가 떠나지 않았다면, 그녀는 평생 이런 하늘과 낯선 나라의 감흥적인 풍경들을 담을 수 없었을 것이고, 그것은 평생 그녀에게 존재하지 않는 기억들이었을 것이다.
엄마와 딸이 함께 하는 여행은 어떨까. 나도 늘 유럽 여행을 꿈꾸면서 한편으로는 가족과 함께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하게 된다. 물론 사랑하는 사람이나, 또래의 친구들과 떠나는 여행이 훨씬 편리하고 좋을 수도 있다. 함께 공유하고 즐길 거리들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보다 더욱 소중한 시간이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들임을 잘 알고 있다. 더욱이 어느 곳에 있어도 가족이라는 이름만으로도 든든한 그 감정은 어떤 것으로도 비교할 수 없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낯선 나라로 떠나는 가족 여행을 꿈꾸곤 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딸이 행복할 수 있도록, 그녀가 원하는 길을 전폭적으로 지지해주는 엄마로써의 저자의 모습이 굉장히 멋있었다. 누구나 자신의 딸이 중학교를 자퇴 하겠다 하면 선뜻 받아들일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은 우리네 사회에서 무언가 문제 있는 아이처럼 보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저자는 달랐다. 자신의 딸이 행복할 수만 있다면, 그것으로 그녀는 다른 어떤 시선에도 무너지지 않았다. 딸의 자유분방함과 모험적인 성향 역시 그녀의 예술적인 부분을 더욱 채워주는 것 같았다. 전체적인 이야기에 등장하는 많은 곳들에 대해 단순하고 간략한 설명 대신 조금 더 사진이나 이해하기 쉬운 부분들이 등장했으면 좋았을 법했다. 전체적인 내용이 여행안내서도 아닌, 그렇다고 해서 크게 공감 가는 부분도 많지 않았지만, 엄마와 딸이라는 두 사람의 단순한 기록들이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