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멸종 직전의 우리 ㅣ 작가정신 소설락 小說樂 4
김나정 지음 / 작가정신 / 2014년 3월
평점 :
<멸종 직전의 우리> 라는 제목만 보고서는, 어쩐지 자연재해라든지, 외계인이라든지 거한 이유로 인해 멸종을 앞둔 사람들의 생존이야기가 아닐까 싶게 만든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야말로 평범하다. 지극히 평범해 오늘 오전 지하철을 타고 오면서 보았던 인터넷 뉴스의 한 기삿거리였던 거 같기도 하고, 혹은 주변 사람들에게서 들었던 이야기 중의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그만큼 이야기의 중심에 바로 우리들이 존재한다. 지금의 삶, 멸종 직전의 우리들의 모습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글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엉망진창에 얼룩진 삶에서 살아남기 위해 생존을 벌이는 이야기라는 점에서는, 앞서 제목만 보고 상상했던 것과는 맞아떨어진다.
12살밖에 되지 않은 초등학생인 어린 소녀가, 친구인 한 소녀를 칼로 찔러 죽였다. 가히 상상할 수도 없는 나이의 소녀가 누군가를 죽인다고 하는 사건은, 어쩌면 더 이상 놀랄 일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늘 접하는 뉴스에서, 언제인가부터 놀라움 대신 ‘아니, 또?’ 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만큼, 이 세상은 이미 용납할 수 없는 범죄들로 얼룩져 있고, 우리 모두 그 속에서 하루를 살아나가고 있다. 그러니, 가해자가 내 가까운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 피해자가 내 가까운 사람이 되지 않으리라는 것도 장담할 수 없다. 그래서 인지 이 이야기가 더욱 실감나게 다가온다.
이야기는 각 장마다 등장인물들 중 한 사람씩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전한다. 죽은 딸 나림의 엄마인 권희자는, 딸에 대한 애정과 딸을 잃고 난 뒤에 겪은 말로 하지 못할 고통들을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나림을 죽인 살인자로 각인 된 선주의 엄마는 살인자의 가족이라는 지울 수 없는 고통으로 결국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시작한다. 하나둘씩, 어린 소녀들의 가족들, 그리고 소녀 자신들, 죽음 이후 20년이 흐르고 난 뒤 선주가 낳은 아들 안도까지. 각자의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딱 그 몫을 전달한다. 결국에 하나의 큰 사건을 둘러싸고 각자가 감내하고 겪었어야 했을 고통을 돌아가며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다. 저자가 마지막 이야기에 말했듯, 그 속사정을 다 안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털어놓음으로 인해 가벼워지는 것은 맞는 말인 듯하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바라보게 되는 마음도 어쩌면 조금 더 가벼워, 누구에게도 치우치지 않게 된다. 어느 누구에게 감정이입을 하거나 좌지우지되어 마음을 해치지 않는 것이 좋다.
누구나 한 번쯤 저자와 같이 느끼게 되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는 허망함. 그 감정은 현재와 지금 이 순간을 소중하게 느끼게 하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인지 가장 가까운 사람들 중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낸 사람들은, 순간을 즐기라고, 순간을 행복하게 살라고 말한다. 이 이야기의 끝에서 이 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었지만 애써 무시해버렸었던 누군가의 진심을,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