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와 나 - 소설로 만나는 낯선 여행
성석제 외 지음 / 바람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낯선 도시에 서 있는 자신의 모습. 그리고 그 낯선 풍경과 스쳐가는 사람들에게서 느껴지는 이질감. 어쩌면 여행은 그런 낯선 모든 것들에서 느껴지는 이질감과 호기심, 그리고 안도감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정해져 있지 않은 새로운 것들이 불러일으키는 것은 신선함과 설렘, 그리고 다시는 똑같이 되풀이될 수 없는 일상에서 오는 흥분일 것이다. <도시와 나>는 이러한 낯선 도시의 여행자 혹은 삶을 지내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일곱 작가의 각기 다른 특유의 시선으로 그려낸 단편 모음집이다.


성석제의 <사냥꾼의 지도-프로방스의 자전거 여행>은 남프랑스 프로방스 지방의 아비뇽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비뇽연극제에 자신의 희곡이 오르면서 연극제 참여차 방문하게 된 주인공은 자전거 하나로 낯선 아비뇽을 돌아다닌다. 그곳에서 다치기도 하고 길을 잃기도 하면서 오로지 구글지도에 의지한 채 낯선 공간에 머무르는 주인공의 모습에서 따뜻한 햇살의 나른함이 느껴졌다. 함께 한가로운 자연속에 머무르는 듯한 늦은 오후의 따뜻한 나른함이었다.


백영옥의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은, 뉴욕의 도시를 배경으로, 세 사람의 어긋나 있는 혼자하는 사랑을 집을 빌려준다는 의미의 '서블렛'을 통해 여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남자 주인공의 집에 한 달간 머무르며 느끼는 감정들을 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감정들을 섬세하게 그려내 고요한 울렁거림이 느껴졌다. 일곱 작품들 중 가장 마음에 들어와 한 번 더 다시금 페이지를 들추어 읽어야 했다. 또 한 번 읽었을 때는 오히려 그 깊이가 깊어져서 더욱 좋았다.


도쿄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정미경의 <장마>는 도쿄에 도착해 함께 택시 합승을 하게 된 남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데, 어긋나 보이는 두 사람의 동행이 어쩐지 슬며시 웃음이 날 정도로 좋아서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함정임의 <어떤 여름>은 프랑스 동부의 브장송을 배경으로 열차 안에서 만난 두 남녀의 만남을 한 여름밤의 꿈처럼 그려내고 있다.


윤고은의 <콜럼버스의 뼈>는 스페인의 세비야를 배경으로, 자신의 친아버지를 찾기 위해 떠난 세비야에서의 기록을 보여주고 있다. 그곳에서의 우연한 만남과 노래. 그 모든 것이 아련하게 퍼지는 기분 좋은 밤기운처럼 반짝였다. 그녀의 최신작인 <밤의 여행자들>을 통해 그녀의 작품을 처음 접했는데 여행에 대한 이야기와 상상력이 글로써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다.


캘리포니아를 배경으로 한 서진의 <캘리포니아 드리밍>은 캘리포니아에 공부한다는 핑계로 와 있는 일본인 여자와 한국인 남자라는 한 연인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길지 않은 글 속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이 묘한 느낌을 자아내서 오래도록 두 사람의 대화를 곱씹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한은형의 <붉은 펠트 모자>는 아프리카 북단의 튀니스를 배경으로 붉은 펠트 모자를 쓴 로고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일곱 작품 모두 각기 다른 낯선 도시에서의 모습들을 특유의 매력적인 감성으로 그려내고 있어서 읽는 재미가 있었다. 더욱이 마지막에 각 작가들과의 간단한 인터뷰가 실려 있어서 이야기와 작가를 이해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이 글들을 읽고 있으면 낯선 도시에 우뚝 서 있는 내 모습과 그 낯선 도시의 이질감이 상상되어 묘한 떨림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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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과 여행, 모험은 뭐가 다를까. 대상의 거죽을 스쳐지나가는 것과 거죽 속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것 그리고 자신의 거죽을 열고 세포 속의 물질을 대상과 뒤섞는 것의 차이? 결국 여행을 하고 모험을 겪고 나면 그 전과는 다른 존재가 되는 거지.
-53쪽, 성석제 <사냥꾼의 지도-프로방스의 자전거 여행> 중에서

 

누군가의 뒷모습을 찍는 사람은 누군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사람을 쉽게 알아보기 때문이었다. 비오는 날 찍힌 그의 발자국에 자신의 발을 대어본 적 있는 사람, 좋아한다는 말 대신 그녀의 립스틱이 희미하게 찍힌 머그잔 위에 자신의 입술을 대어 본 사람이라면, 어떤 것으로도 멈춰지지 않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71쪽, 백영옥 <애인의 애인에게 들은 말> 중에서

 

불면에 시달리는 나와 달리 이 도시는 하루에 두 번도 더 잠들었다. 오후의 몇 시간 그리고 밤의 몇 시간. 나는 어떤 쪽으로도 이 도시에 흡수되지 못하고 거리의 먼지처럼 떠다녔다. 땅이 가장 뜨겁게 달궈진 오후, 그 몇 시간의 공백에는 노면전차의 철로만 태양 아래서 뜨거운 숨을 쉬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순간을 걷고 있으면, 어느 순간 단지 빛만으로 귀가 멀어버릴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둥근 고막에서 마지막 소리가 길게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기어코 혼자가 되곤 했다.
-165쪽, 윤고은 <콜롬버스의 뼈>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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