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 노재희 소설집
노재희 지음 / 작가정신 / 201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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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고독 속으로 달아나라.’ 책 제목이자 이 책속에 실린 첫 번째 단편인, <고독의 발명>에 나오는 문구이다. 이 문구가 왜 이리 좋은지, 계속해서 머금고 내뱉는 어감이 좋았다. 그럴싸해 보이기도 하고, 다 읽고 난 뒤에는 이 책 속의 이야기들을 이처럼 잘 표현한 문구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멋스러웠다.

 

시인이 되길 꿈꾸지만, 아내와 아이 그리고 회사 일로 지치며 고독한 시간을 즐길 수 없는 엄복태의 이야기인 <고독의 발명>,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무릎이 아픈 춘복 할머니의 무릎에 피어난 꽃에 대한 <누구 무릎에 꽃이 피나> 이어,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 <시간의 속> <그날 저녁, 그는 어디로 갔을까> <성가족> <생활의 기술> <당신 손목을 붙드는 그림자>까지. 총 여덟 편의 단편들을 수록하고 있다.

 

시인을 꿈꾸는 엄복태는 늘 고독을 꿈꾸고 고독한 시간을 바랐지만, 고단한 회사생활과 만원버스, 다시 집에서는 아내와 아이들로 인해 도무지 시인으로서의 길을 갈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시’란 무엇인가. 끝까지 포기하고 싶지 않은, 고독과의 연계성. 그의 고독은 ‘시’였다. 이 작품과 다음 담편인 <누구 무릎에 꽃이 피나> 그리고 <시간의 속> <그날 저녁, 그는 어디로 갔을까>라는 작품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현실적이지 않은 뒤의 두 작품은, 시간이라는 것을 주제를 가지고 있다. 아버지를 지나간 시간의 좌표에 새겨 넣고, 앞으로의 어머니의 좌표를 새겨 넣기 위한 일, 그리고 지나간 사랑의 과거를 시간의 좌표에 두는 것. 돌릴 수도 돌아갈 수도 없음을 인정하는 것. 시간의 속에서 누구나 조금씩 더디게 흘렀으면 바란다.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진정한 고독을 느끼는 것이야말로 자신의 단단한 자아를 만나는 일이라고 말하는 이야기들은, 점점 스스로의 고독을 잃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선한 감각을 일깨운다. 전체적으로 하나하나 단편들을 놓고 보아도 놀라우리만치 전개가 빠르거나 반전이 숨어있거나 다이내믹하지는 않다. 딱 시간이 흐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흐를 뿐이다. 그 자연스러운 흐름과 연계성은, 고독과도 맞물린다. 진정한 고독, 그리고 그 속으로 달아나라. 당신만의 고독 속으로.

 

 

“갑자기 아내가 읊었던 뮈세의 시가 떠올랐다. 이 세상에서 나에게 남은 유일한 진실은 내가 이따금 울었다는 것이다. 그 말을 생각하자 정말 눈물이 났다. 엄복태는 그것이 세상에 남은 마지막 진실인 것처럼 진심을 다해 울었다. 한참을 꺼이꺼이 우는데, 휴대전화의 알람이 울렸다 못다 한 내 마음을, 못다 한 내 마음을…. 고독해질 시간이었다.”

-고독의 발명 중에서

 

“나는 무서웠던 것 같다. 두 노인 사이에서 두 개의 노년을 사는 기분, 이상하게 겹으로 늙어버린 시간 속에 빠져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으니까. 나는 과거에 눌린 채 살고 싶지도 않았지만 언젠가 오게 될 미래를 마주하며 살고 싶지도 않았다.”

-시간의 속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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