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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쉴 틈 - 나만의 지도를 그리며 걷고 그곳에서 숨 쉬는 도시생활자 여행기
김대욱 글.사진 / 예담 / 2013년 5월
평점 :
“당신에게만 살짝 고백한다.
사실 나는 여행 중이다.
떠나지 않아도 괜찮은 여행을 꽤 오래전부터 해왔다.
아무도 모르겠지만.”
흔하디흔한 여행에세이집은 하나같이 다른 나라를 향해 있다. 아니, 작게는 국내의 여행지들도 속한다. 하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공통된 것은 ‘여행지’라는 것이다. 이미 알려진 꽤나 유명한 곳에서부터 아는 사람만 찾아가는 숨은 곳까지. 모두가 떠나야만 하는 여행지인 것만은 확실하다. 하지만 이 책은 무엇인가. 여행기이기는 하지만 ‘여행지’가 애매모호하다. 처음 이 책을 읽기 전 그러했다. 대체 이게 무슨 여행이라는 말인가와 같은 꽤나 심술궂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한 페이지씩 저자의 여행기를 읽으며, 어느 순간 나 역시 스스로의 여행을 시작하고 있었다. 내 과거의 추억 속으로, 그리고 지금 내가 머물고 있는 방으로, 오랜 시기를 보냈던 고향집으로, 그렇게 내 안으로 말이다.
총 4개의 챕터로 이루어져 있는 이 책은, 첫 번째 ‘잠들지 않는 방으로 히치하이킹’에서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머물러 있는 자신의 방으로의 여행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잠들고, 또 하루를 시작하는 가장 진실되면서도 적나라한 여행을 말이다. 두 번째, ‘아마도 이건, 여행’에서는 시간이라는 주제로 각 시간대에 초점을 맞춰 소소하지만 가장 일상적인 이야기를 전해 준다. 세 번째, ‘잊은 것과 남겨진 것에 대해 말하는 법’에서는 지난 추억 속으로의 여행을 통해 아련함과 향수가 듬뿍 묻어나는 여행기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지나간 내 추억으로의 여행까지 덧붙일 수 있어 몇 번씩 곱씹게 된다. 마지막으로 ‘그래도 가장 좋았어. 지금 이 자리가’에서는 자신의 다락방에 대해 소개한다. 어릴 적 살았던 자신의 다락방처럼 안식을 주고, 기분 좋음을 느끼게 하는 곳들로, 서점이나 도시의 숲, 한국영상자료원 같은 곳들이다.
아련한 감성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사진들과 함께하는 저자의 여행기는, 바로 일상이다. 바로 ‘떠나지 않아도 괜찮은 여행’인 것이다. 꽤나 그럴싸하고 현실적이어서 처음 느꼈던 심술궂은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어느새 기분 좋은 미소까지 그려졌다. 그리고 스스로에게도 꽤 괜찮은 여행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런 여행을 되짚어보고 생각하게 만들었다. 늘 숨이 차오르고 힘겨운 삶에서, 어쩌면 이 책은 제목 그대로 숨 쉴 틈을 주는, 여유와 추억이 묻어났다. 가장 일상적이고도 깨닫지 못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게 한다.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여행지에서, 스스로 지도를 그리며 걷는 도시생활자의 여행기, 그 여유로움이 바삐 걷던 내게도 숨 쉴 틈을 건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