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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1
마거릿 애트우드 지음, 이은선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6살의 아름다운 소녀, 그레이스 막스. 과연 그녀는 악마의 얼굴을 숨긴 영악한 살인자인가 아니면 그 시대상에서 안타깝게 희생양이 되어버린 순결한 피해자인가? 이 책을 읽기에 앞서 이 질문이 먼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그래서 일까. 책을 읽는 내내, 그녀가 범인인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 꽤나 집요하게 파고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점점 머릿속은 복잡해지고, 뒤엉켜 도무지 결론을 내릴 수가 없었다. 이것 역시 작가가 의도한 것인가 싶을 정도였다. 분명 그녀는 순수했고, 누가 보아도 그 시대상에서 안타깝게 버려진 희생양이었다.
하지만 문득, 그런 와중에서도 난 그녀를 의심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미 그녀를 범인이라고 생각을 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렇다 할 물증은 없었지만, 무엇이라도 결론을 얻어내고 싶었던 것이다. 3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교도소와 정신병원 생활을 겪은 그레이스 막스. 어여쁜 나이에 고통스런 시간을 보내야 했던 그녀가 안쓰러운 것은 사실이다. 실제 사건을 모티브로 쓰인 글이라는 것이 더욱 충격적이다. 어쩌면 그것이 더 흥미를 동하게 했다. 더불어 결론이 궁금했던 것 역시 실제 사건이라는 데에 연유한 것이리라. 하지만 끝까지 속 시원한 답은 얻을 수 없다.
그저 구석구석 파고들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결론을 낼 수 있게 여운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다른 때 같았으면 이런 여운이 좋아 책을 덮고도 한참이나 깊은 생각에 빠지며 그 시간을 즐겼을 것이다. 원체 영화든 책이든 모호한 결말을 통해 독자로 하여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제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그레이스>는 달랐다. 뭔가 속이 꽁꽁 뭉친 기분이었다. 도무지 생각하려고 해도 갈팡질팡할 뿐, 스스로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녀를 살인자라고 몰아붙이지 못하는 것으로 봐서, 일찍이 그녀를 위로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무쪼록 그 시대상의 씁쓸한 모습과 한 여인의 아픔을 꽤나 긴 시간동안 함께 하며, 가슴이 먹먹했다.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아마 몇 번을 읽어도, 생각을 끝낼 순 없을 것 같다. 여전히 미스터리한 사건의 결말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