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미터 - 너와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
임은정 지음 / 문화구창작동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너와 내가 닿을 수 없는 거리, 1미터.
잘나가던 방송국 PD였던 강찬은 갑작스러운 사고로 인해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늘 음주운전을 하지도 않았고, 안전운전을 해왔는데도 이는 상대방의 예기치 않은 실수로 인해 한 사람의 인생을 순식간에 다른 방향으로 전환시켰다. 그는 그것이 무척이나 억울하고 화가 났다. 하지만 어찌 인생을, 벌어진 일들을 돌이킬 수 있으랴. 그저 그는 이 순간 죽어버리고 싶었다. 숨이 붙어 있다고 해도, 그는 죽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여겼다.
강찬은 죽지 않았다. 죽음의 근처에서 그는 여전히 숨 쉬고 있었고, 영원 같은 이 육신의 감옥을 탈출할 방법도 언제 석방될지에 대한 기약도 없었다. 강찬은 자신의 생명을 마치 전깃불 끄듯 소등하고 싶었다. 이제 영원한 어둠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강찬은 죽음이 소 떼처럼 씩씩한 먼지들을 끌고 다가와 그를 몰고 가버렸으면 하고 생각했다. -26쪽
하지만 죽는 것 마저 좀처럼 쉽지 않았다. 결국 행복 요양원으로 옮겨진 강찬은 자신의 옆 자리에 같은 처지로 누워 있는 찬강을 만나게 된다. 말을 할 수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둘은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끈을 통해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것은 일종의 텔레파시로 통했지만,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기이한 것이었다. 처음 강찬은 그런 찬강의 존재가 성가시고 귀찮기만 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찬강에게서 또 다른 세상을 만나기 시작했다.
인생을 뭔가에 빗대어 비유하자면 뭐가 있을까요? 여러 가지 비유가 있겠지만 누군가는 인생을 신 사탕에 비유했다고 하죠. 겉으로는 달콤한 것 같지만 막상 입에 넣으면 시고 쓰고 참을 수 없어서 뱉어버리고 싶은 맛.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어서 뱉으려야 뱉을 수 없어 삼켜버려야 하는 것. 그런 게 인생이라고 했다고 하죠.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동의하십니까? 인생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요. -167쪽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을 함께 해 나가면서, 다시금 뼈저리게 깨닫게 되는 것은 인생의 차디찬 단면이었다. 또한 죽음은 언제나 나와는 연관 없는 존재라는 대단한 착각이다. 늘 삶은 죽음과 연장선상에 마주한 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지만, 늘 우리는 그 존재를 망각한다. 때문에 현재의 살아가고 있는 삶에만 집착하고 욕심을 부리기 일쑤다. 하지만 그것이 다 무엇이랴. 강찬 역시 그러했다. 성공하기 위해 악착같이 달려 나갔고, 최고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살았다. 하지만 결국 그는 병실에 누운 채, 말도 할 수 없는 식물인간이 되어 있었다.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위치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사실 생각만으로도 끔찍함과 공포가 밀려왔다. 그것은 누구나 그럴 것이다.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대로 말을 할 수도 움직일 수도 없는 몸뚱이란. 하지만 이들의 글을 읽어 내려가면서, 나 역시도 또 다른 세상과 마주할 수 있었다. 영혼과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진실 된 인간의 감성을 말이다. 그것은 결단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인지 찬강이 무척이나 존경스럽고 아름다워 보였다.
“아저씨, 연리지 알아요? …연리지는 떨어져 있는 두 나뭇가지가 서로 붙는 거잖아요. 그런데 왜 붙는지 알아요?”
“왜?”
“서로 그리워하기 때문이래요.”
“그런데 넌 뜬금없이 왜 연리지 얘기를 꺼내?”
“저 앞에 있는 나무요. 너무 정다워 보여서요. 서로 손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까워서요. 아저씨 우리도 한번 해볼래요? …아저씨, 아저씨 침대와 내 침대의 거리가 1미터 정도예요. 우리가 서로 간절히 원한다면 우리도 연리지처럼 될 수 있지 않을까요?” -215~217쪽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하나가 될 수밖에 없는 나무들. 찬강은 그들의 그 그리움이 마치 우리들 같다고 표현했다. 나는 그 표현이 너무도 아름다워 가슴이 떨렸다. 고작 1미터를 사이에 두고 서로를 그리워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딱 그와 같았다.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두 사람의 모습은 보는 내내 그 만큼 가슴 떨리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서로에게 사소한 일로 토라지고, 다시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회용적인 사랑이 남용되는 사회에서 그들의 사랑은, 그 만큼 고귀했다. 그들의 사랑만큼이나 아름다웠던 것은 바로 행복요양원 사람들이었다. 다들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즐겁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다. 다 제각각의 슬픔과 아픔을 지닌 채 서로에게 위로가 되고 버팀목이 되어 가고 있었다.
누구나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면 두려워지기 마련이다. 후회하는 사람도 있고, 생에 집착하는 사람도 있고, 덤덤하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늘 죽음은 슬픔을 동반한다. 더욱이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말이다. 남겨진 사람들에게 그 만큼 소중한 사람의 죽음은 슬픔과 절망이었다. 나 역시 소중한 누군가의 죽음들을 맞이했던 기억을 떠올리자면, 울컥 치밀고 들어오는 슬픔에 주체가 되지 않을 정도다. 결코 손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죽음이다. 헌데, 이상하게 이 글을 읽고 나니- 약간은 죽음에 대해 아름답다는 생각을 했다. 결코 받아들일 수는 없지만 조금이나마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너무나도 혼란스러운 시절이 있었다. 30년 넘게 세상을 살아왔는데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답을 알 수 없다는 게 아이러니하고 억울했다. 착하고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살면 사람들은 그런 사람을 ‘바보 같다’고 무시를 했고, ‘그렇게 살아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겠느냐’고 비아냥거렸다. …그래서 나는 결국 그냥 살기로 했다. 이 얘기는 어쩌면 그 결정에 대한 격려를 찾기 위해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너무도 버거운 주제였기에 한 문장, 한 단어 책을 써가는 여정은 쉽지 않았다. -작가의 말 중에서
작가의 이 말들이 어찌나 가슴을 파고 들어오는지. 나는 여전히 어떻게 살아야 할지 혼란스럽다. 아마 평생을 가도 그 혼란을 껴안고 살아가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그 만큼 살아간다는 것은 늘 고뇌와 혼란을 동반하는 건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이 작가 자신에게 격려가 된다고 이야기 했듯, 이 책이 내겐 앞으로 살아가는 데에 큰 위로와 응원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다. 그 만큼 이야기를 읽는 내내 가슴이 뻐근했다. 이 책 속에는 한 글귀, 한 글귀가 다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또한 식물인간일지라도 생명이라는 소중함을 깨닫게 해주었고, 행복은 결코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늘 죽음을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살아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작가의 말처럼 그냥 살아가면 되는 거다. 악착같이 욕심 부려 붙잡지 말고 그냥 있는 그대로를 즐기며,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면 그만인 것이다. 생명의 소중함, 삶의 기막힌 아름다움, 생각하기 나름인 삶이지만, 우린 조금 더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다. 조금만 방향을 틀어 생각해 보면 말이다. 지금 두 다리로, 내 생각을 말하며,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있는 난 큰 축복이다. 그런 큰 축복을 지니고 있는데 더 무엇이 필요하랴. 1미터 거리에서 나누는 그들의 깊은 사랑은 내내 내 삶을 지탱해 줄 큰 위로가 될 것이다. 치열한 삶에 찌들어 아픈 사람이라면, 피폐해진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름다운 행복요양원 사람들과 함께하며 아름다움을 느껴보길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