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철학자의 행복한 고생학 - 긴 호흡으로 인생을 바라보라. 그때 고생은 의미가 된다
신정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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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고생학’ - 그럴싸한 말 같지만, 누군가는 어찌 고생이 행복할 수 있느냐고 강력하게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누구나 고생하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덜 고생하고, 많이 행복 하고 싶지, 누가 고생을 행복으로 받아들이며 사서 고생을 하려 하겠는가. 하지만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생은 결코 고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딛고 일어날 수 있는 단단한 것이라고. 저자는 고생에 대해 부모세대, 우리세대, 자식세대로 나뉘어 이야기를 전개한다. 부모세대는 그야말로 고생 그 자체였다. 하루하루 사는 것 자체가 그야말로 고생이었던 것이다. 그들에게는 ‘다음에 하면 되지, 뭐’의 개념이 없었다. 그저 지금 이 순간만이 존재했고, 이 순간을 버티기 위해서는 다음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늘 부족했고, 그렇기 때문에 늘 고생할 수밖에 없었다. 글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파지는 순간이었다. 
 


부모님의 세계는 구체적이며 감각적이라고 할 수 있다.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은 쓸데없는 짓이기도 하고, 시간과 돈을 버리는 철모르는 짓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나의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편안한 일상의 영역이다. 그곳을 쓸고 닦으며 소중하게 가꾸기에도 벅찬데 뭣하려고 그 밖의 세계에 관심을 두거나 이쪽저쪽을 넘나들며 기웃거리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33쪽 
  


특히나, 이 시대의 어머니들의 고생은 어디에도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들에게 주어진 것은 늘 ‘희생’과 ‘헌신’이었다. 남편, 부모, 자식들을 위해 늘 그들은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모든 사람들에게 먹이고, 입히고 그런 다음에 자신의 것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욕심내지 않은 것이 우리네 어머니였다. 우리 어머니 역시 고생을 겪고, 또 고생하며 사시지만, 우리네 부모님에게 있어 고생은 행복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고생은 그저 삶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늘 어머니를 떠올리면, 눈 끝이 시큰해지고 마음이 저린 것 역시 그런 이유일 것이다. 우리들을 위해 있는 힘껏 희생한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미 아무개의 며느리, 아무개의 부인, 아무개의 어머니로서만 존재해 온 것을 지극히 잘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누구에게 기댈 사람이 없었다.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길이 닫혀 있으니 당신 아닌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수 없었다.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일을 풀어가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결국 자야 될 잠을 자지 않고 쉬어야 할 때 쉬지 않고 먹어야 할 것을 건너뛰어야 했다. …요즘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면 두 손 두발 다 들고 줄행랑을 놓을 것이다. …어머님 앞에 서면 ‘힘들다’는 말을 끄집어낼 수가 없다. -38쪽 
 


하지만, 우리 세대는 어떠한가. 그저 고생이라고 하면 예전 부모세대가 겪었던 고생의 1/10도 안 될 것이다. 허나 그 고생마저도 겪지 않으려 하는 것이 바로 지금 우리네 현실이다. 너무도 살기 좋아지고 편해졌다. 없어서 못 먹던 옛 시절과는 달리 이젠 넘쳐나서 버리는 실정이다. 새로운 것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등장하기 때문에 멀쩡한 물건 역시 새것으로 교체하기 위해 버려진다. 늘 새로운 것을 찾고, 유행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달려 나가는 고생,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고생은 그것이다. 이 상황에서 저자의 말은 지금의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자꾸 버리다 보니 간직해야 할 것 마저 실수나 선택으로 버리게 된다는 것. 그렇다, 우린 기억력이 나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의미를 망각하고 잊어버리게 된 것이다. 어쩌면 우린 점점 그런 감정이 메말라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부모세대는 삶이 고생이었을지라도, 따뜻한 무언가가 있었다. 내가 먼저가 아닌, 당신이 먼저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에겐 당신이 먼저이기 전에 내가 먼저여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예전 세대의 ‘희생’적인 부분이 옳다고 보진 않는다. 난 여자가 어머니라는 이유 하나로 고생하고 희생해야 한다는 부분에는 치가 떨릴 정도다. 다만, 그 당시의 인간애가 잊혀져 간다는 것이 씁쓸할 뿐 인거다. 
 


도시의 살림살이는 결국 끊임없이 사다가 쓰고 버리고, 버리고 새로 사서 쓰는 과정을 되풀이하게 되어있다. 그렇게 자꾸 버리다 보니 남겨서 간직해야 할 것마저 실수이든 선택이든 버리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원래부터 기억력이 나빴던 것이 아니라 이런 생활을 반복해서 중요한 사건과 의미를 쉽게 잊어버리게 된 것이 아닐까? -67쪽 
 


결코 고생을 해야지만, 인간적으로 곧고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불어 고생 역시 무조건 옳다고 보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저자의 이야기들을 쭉 읽으면서,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말이지 생고생이 아닐까 싶었다. 너무도 안일한 세상에 살면서, 지극히 사소한 문제로 자살까지 하는 세상. 2008년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자살률 1위라고 한다. 특히나 20대~30대 사망 원인 1위가 자살이란다. 이렇게 자살이 빈번하게 일어난 일은 뭘까. 더욱이 자살의 이유들을 들으면, 학업 성적이 떨어지거나 애인과의 결별, 취업이 되지 않아서 등 죽음을 택하기에는 너무 아쉬운 문제들이었다. 이는 저자의 말처럼 “삶에서 적절한 불편함, 조금의 고통을 완전히 배제하려고 한 데서 원인”을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우리에겐 고생이 필요하다. 처절하게 고생해보고,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이 삶이 얼마나 감사하고, 편안한 것인지를 여실히 깨달아볼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나 역시도 이 책을 읽으며, 다시금 겸손해지는 동시에 부모세대의 고생을 떠올리며 고개 숙일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끔은 고생이 행복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고생은 사람을 단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과 마음을 바싹바싹 마르게 한다. 생명의 기운을 시들게 하는 고생(枯生)이 된다. 고생은 힘들기는 해도 아름다울 수 있다. 그것이 사람을 이전보다 나은 삶을 가능하게 하여 고상한 인물로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즉, 고생이 고생(高生)인 것이다. -14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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