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마지막 장미
온다 리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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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주인공은 자신에게 일어나지 않았던 일을 낯선 남자가 자꾸 일어났던 일이라고 말하니까 그런가 보다고 믿게 되죠. 올해 처음 만나는 남자인데도, 지난해에는 밀회를 즐겼고, 앞으로도 함께 살아갈 남자라고 믿게 돼요. 존재하지 않는 기억을 존재하는 기억으로 착각한 것이죠. 데자뷰란 것도 뇌가 기억을 끄집어낼 때 실수로 처음 있는 일을 과거에 경험했던 기억으로 착각하는 현상이니까요. -344~345쪽.

우리 모두가 기억을 날조하고, 자신에게 생겼던 일, 과거에 있었을 일을 날마다 자기 안에서 만들어 나가고 있어요. 있었을지도 모르는 밀회, 만났을지도 모르는 연인을 찾고 있습니다. -372쪽  



지금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기억의 단편들이 오직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기억되기를 바라기 때문에 기억된 것인지 알 수 없을 만큼 모호하다. 이 온다 리쿠의 <여름의 마지막 장미>라는 작품이 딱 그렇다.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아슬아슬하게 줄타기를 하듯 넘어간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다. 누구의 기억이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사람을 교묘하게 헝클어 놓는다. 바로 온다 리쿠의 작품에 묘미가 아닐까 싶다. 사실 온다 리쿠의 작품을 접한 것은 이 작품이 처음이다. 늘 서점에 갔을 때 다양한 작품들을 훑어보긴 했지만, 이렇게 완독하긴 처음인 것이다. 상상외로 기묘한 분위기와 환상의 기류를 담고 있었다. 그녀는 추리작가로서 뛰어나다고 하며, 그에 걸맞게 팬 또한 많은 듯 하다. 이번 작품은 추리소설 같으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 이 작품의 성격 역시 글에 맞게 모호하지 않았나 싶다.  

 
글의 처음부터 등장하는 산 속 깊은 곳에 위치한 초호화 호텔. 그리고 그런 호텔에서 매년 파티를 벌이는 사와타리 가의 세 자매인 이치코, 니카코, 미즈코. 이들의 초대장을 받은 사람만이 올 수 있는 파티다. 그래서 인지 매년 이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은 내년에도 초대장을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한다. 더불어 그녀들과 개인적인 티타임을 가진다. 더불어 그녀들은 매번 서로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진실인지 거짓인지 모를 잔인하면서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초대 손님에 조카인 류스케와 류스케와 혼인한 사쿠라코, 그리고 사쿠라코의 남동생이자 사쿠라코와의 밀애를 즐기는 도키미쓰가 있다. 또한 사쿠라코와 밀애를 즐기면서 류스케와는 사업적인 파트더인 다쓰요시가 있으며, 류스케의 사촌인 미즈호와 미즈호의 매니저인 사키까지. 복잡하게 얽힌 관계는 서로가 서로에 대해 견제하듯, 서로에 대한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누어진 장 마다 화자가 바뀌면서 지극히 한 사람의 입장에서 다양한 사건을 이야기하고 풀이하는 방식이 사뭇 신선했다. 그래서 인지 더더욱 진실의 갈피를 잡기 어려웠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게 되면, 정말이지 그것은 기억의 일부분이 되고 만다. 누구나 상상하고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런 신비로움과 환상에 사로잡혔던 것 같다. 분명 나는 그 시각에 그 사람을 잔인하게 죽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그 시각에 또 다른 누군가를 죽였다. 이런 식으로 서로의 기억 안에서 반복되는 사건들의 전개는 도대체 저 사람이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를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모호한 경계선을 만든다. 굉장히 독특한 전개방식에 사로잡혀 아름다우면서도 지독하게 슬픈 영화 한 편을 본 느낌이다. 인상적이었고, 그래서인지 온다 리쿠의 다른 작품들 역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을 되짚어가는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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