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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잉 아이 - Dying Eye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0년 7월
평점 :
품절
“기시나카 레이지가 복수하기로 결심한 것은 어쩌면 그 순간이 아니었을까. 처음에는 다소 주저하면서 가해자가 일하는 술집을 기웃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가해자는 불쾌한 일을 깨끗이 잊은 것처럼 보였다. 가능한 한 재미있는 일을 생각하려 한다는 그 말을 기시니카는 어떤 기분으로 들었을까. 그는 피해자가 영원히 잊지 못한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말을 툭툭 내뱉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419쪽)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씁쓸함과 동시에 소름이 끼쳐왔다. 더불어 한 순간의 예기치 못한, 혹은 원치 않은 사고로 인해 생명을 잃어버린다는 것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싶었다. 이 책에서 나오듯 차 사고는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며, 어쩌면 새 생명이 태어나는 것보다 차 사고를 포함해 목숨을 잃는 일이 더 높을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태어나고,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한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순리이면서도 씁쓸해지는 일이다. 미나에의 갑작스런 죽음 역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안타까워지는 동시에 소름끼쳤던 것은 가해자이지만, 죽어가는 그녀의 두 눈을 똑바로 마주해야 했다는 사실이다. 죽어가는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일이란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 더욱이 자신이 누군가를 서서히 죽이고 있으며, 서서히 죽어가는 그 사람의 눈동자를 마주하는 것이다. 아마 평생을 잊으려고 노력해도,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죄책감의 일종일수도 있지만, 그 보다는 증오를 한 가득 담은, 혹은 마지막에 내비치는 죽어가는 이의 마지막 절규이기 때문일 것이다.
직접적인 가해자는 아니지만, 일종의 미약하지만 가해자일 수 있는 주인공 신스케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은 미나에의 남편인 레이지에게 머리를 얻어맞게 된다. 그 충격 탓에 교통사고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된다. 결국엔 레이지가 자신에게 내린 복수라고 생각하고, 어떻게든 정리를 해야겠다 싶어 사고와 관련되었던 사람들을 찾아가면서 기억을 되찾기 위해 애를 쓰게 된다. 그러면서 하나 둘씩 밝혀지는 사고에 대한 경위는 그에게 충격을 안겨준다. 더욱이 교통사고 보다 갑작스럽게 그를 사로잡은 루리코라는 여자에 대한 정체가 충격적이다. 결국 모든 사고의 발단은 교통사고로 인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 한 여자의 가슴 아픈 일이 발단이 되었겠지만, 이 사건은 우리에게 또 다른 아픔을 안겨준다. 더욱이 교통사고를 낸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다지 높은 형량을 받지도 않은 채 말이다.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인생인데, 피해자와 피해자의 주변인들만이 또 다른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이 너무 가슴 아픈 일이었다.
내 지인 중에는 갑작스런 교통사고에 대해 일종에 강박증을 갖고 있었다. 자신에게도 언제, 어디서 갑작스럽게 사고를 당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게 조심하는 게 좋은 것이긴 하지만, 이 책 속의 미나에처럼 자신의 탓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고를 당해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리고 결국 신스케가 복수를 당하게 된 것은, 글 속에 나온 내용처럼 가해자는 아무렇지 않은 듯, 그때의 사건을 잊은 듯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보는 게 너무도 견디기 힘들어서 였을 것이다. 현재 이 시간에도 무수히 많은 교통사고가 일어나고, 예기치 않은 일로 목숨을 잃는 사람들이 많다. 어쩐지 가슴이 뻐근해지는 책이었다. 약간은 허황된 유령이야기에, 인형이야기에, 복수이야기이지만 아무쪼록 속도감있게 읽히는 동시에 삶과 죽음에 대해, 혹은 남겨진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