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해 여름 갑자기
차우모완 지음 / 엔블록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보통은 마지막 책장을 덮는 순간 스치듯 번뜩이는, 혹은 아직까지 자리하는 여운이라는 것을 감지하게 마련인데 어쩐지 이 책은 그 느낌이 기묘하다. 480여 가까이 되는 묵직한 두께는 처음 책을 받아들고는 헉 소리가 날 정도였다. 하지만 두께와는 다르게 읽는 속도는 꽤나 빠르게 진행됐고, 외려 다른 책들보다 더 빠른 시간 내 완독하지 않았나 싶다. 헌데, 그 느낌이 기묘하다는 것은- 뭔가 다 읽고 내려갔는데도 내가 한 편의 허구적인 소설을 읽은 것인지, 누군가의 기록을 읽은 것인지, 것도 아님 미스테리한 추리소설을 읽으며 함께 사건을 쫓아 나간 것인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욱이 소설 내 자주 등장하는 의학적인 용어와 의학적인 책에 대한 내용 및 책 속의 여주인공이 앓고 있는 유방암에 대한 진지하고도 풍부한 상식들은 건강 서적을 방불케 했던 것이다. 사실 외려 의학적인 각주가 너무 방대하게 많은데다 사건 중간 중간 계속해서 등장하는 탓에 빠르게 읽히는 속도감과 추리해 나가는 사건들 사이의 맥을 끊어놓기 일쑤였다. 그래서인지 나는 책을 읽는 동안 각주는 일체 신경 쓰지 않고 넘기는 방법을 택했다. 그리고 나중에 한 장씩 가볍게 넘기면서 각주를 눈여겨보았다. 꽤나 복잡 미묘한 책이다.  

 


성탄절을 앞두고 유방암 판정을 받은 지원. 그리고 그런 아픔을 지닌 채 힘겨운 발걸음으로 돌아간 집에서 목격한 남자친구와 앳된 소녀의 섹스 장면. 이 얼마나 비극적이고 가련한 여자인가. 인생을 송두리째 잃었다고 느낄 만큼, 그녀에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 순간 이미 그녀의 인생은 막을 향해 치닫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선택한 고향으로의 길. 그 고향에서 만난 마지막 사랑의 남자. 그리고 죽은 줄 알았던 친언니의 등장과 함께 시작되는 풀리지 않는 의문의 사건들. 연이어 자살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시체가 발견되고, 점점 더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든다. 지원은 이 모든 사건들을 풀기 위해 추리를 시작하게 되고 그때마다 새로운 사실들이 터져 나오면서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나게 된다. 참 이것 역시 다소 힘들었던 것이, 지원의 뛰어난 추리(?)를 따라가는 것이 참으로 힘들었다. 빠르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그녀와 순경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사건을 추적하게 되는데, 모든 것이 내가 생각하기도 전에 하나하나 드러나게 되는 전개로, 약간의 반전을 가미해 재미를 주고는 있으나 여러모로 너무 복잡한 구조 속에, 터져 나오는 연이은 사건들로 읽는 과정이 다소 힘에 부쳤던 것 같다.  


작가의 이력을 꼼꼼하게 챙겨 보았으나, 도저히 작가에 대해 파악할 단서는 보이지 않는다. 본명인지 아닌지도 모를 독특한 이름만이 그의 존재를 부각시킬 뿐이었다. 아무쪼록 오랜만에 참으로 독특하고 재미난 구조의 작품을 읽지 않았나 싶다. 불만족스러운 부분도 많았지만, 만족스러운 부분도 꽤나 많았다. 진지하게 파헤치는 깊은 내면의 구조는 나에게도 상당 부분 많은 영향력을 전해주었다. 더불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이 작품으로 인해 암에 대해서나 항암제에 관해서 알게 모르게 지식을 얻기도 했다. 사실 서평을 쓰면서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 읽은 것으로 이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는. 그래서 인지 몇 번이고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몇 번 읽고 난 뒤 이 작품을 다시금 논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싶었다. 지금 말할 수 있는 것은 참 다양한 구조와 다양한 사건을 장치한 기묘한 작품이라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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