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훈련소에 들어가기 전 책 한권을 읽고 싶어 이 책을 짚었더랬습니다. 누구나가 그러겠습니다만, 책을 고르면서 뭔가 새롭고 가치있는 것을 기대했습니다. 좁은문!! 뭔가 내 삶에 큰 기둥이 되어줄 것만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앙드레 지드!! 작가의 이름 또한 처음인데도 여러번 들어본 듯하게 친숙하게 들려왔습니다. 보통의 고전보다는 얇은 편이었습니다. 훈련소 가기 얼마안 남은 저는 빨리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이틀에 걸쳐 금새 이 책을 읽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시 기억을 떠올려보면 제가 보통 때보다 빨리 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남녀 주인공의 아름다운 사랑에 너무도 몰입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가 쉽게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사랑이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오늘날 사랑을 하는 남녀가 이 책을 읽었을 때 느끼는 것은 가식적인 사랑일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소설 속 주인공은 사랑하면서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사랑하면 우리는 같은 시간을 보내고 사랑을 나누고 결혼을 하고 함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오늘날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해온 불변의 사랑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러나 소설 속 주인공들은 사랑하기 위해서 사랑하지 않고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조금은 어려운 말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더 쉽게 말해 여자 주인공 알리사는 자신의 신앙을 위해 사랑을 버린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녀는 더 숭고한 신에 대한 사랑을 위해 세상의 사랑을 마음 속에 묻어두려 하는 것입니다. 글을 읽는 동안 저 또한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신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같이 할 수는 없는 것인가? 그녀는 그렇게 신을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야 했는가? 이 질문에 대하여 우리는 어떠한 대답을 할 수 있을까요? 그녀의 행동은 어리석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어야 신 또한 사랑할 수 있지 않은가?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대답을 그녀에게 책을 읽으며 마음 속으로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작가의 삶에 영향을 주었을 청교도 정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청교도 집안에서 자란 작가에게 그러한 영향이 적든 크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청교도 정신은 금욕적인 사상을 깔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인공 알리사에게 나타나는 신에 대한 사랑, 그것은 금욕적인 사고와 맞닿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시대를 감안했을 때 그 생각은 근거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어졌습니다. 그리고 오늘날도 사람들은 신에 대한 성스러운 사랑과 남녀간의 사랑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남녀간의 사랑이 천박한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 또한 그러한 사랑이라는 것은 큰 모순으로 다가옵니다. 알리사가 신앙을 위해 자신의 사랑까지 묻어두는 것이 너무도 숭고하고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그것은 그것이 일면 어리석은 구석이 있더라도 우리가 오늘날 잊고 있는 무엇가를 말하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을 위해 자신의 사랑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돈을 위해서는 종종 포기하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적어도 돈을 위해서 사랑을 버리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이 사랑을 버린 것은 더 숭고하고 가치있다고 여겨지는,그들 마음 속의 절대자에 대한 사랑과 신념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생각이 들면서 저는 더욱더 그들의 사랑에 놀라고 안타까워했습니다. 그리고 더욱더 사랑을 신중하고 아름답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