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3
사는 얘기 한 잔
불평 섞인 한 잔
그냥 웃는 한 잔

그렇게
한 잔에서 한 잔으로
서로의 인생이 부딪히고 찰랑이며
붉어진 당신 얼굴을 보는 게 좋다

오늘만큼은 나의 삶이
잠시 이곳에서 멈추어도 좋다는 듯
빨간 신호등처럼 빛나는 당신

취한다는 건,
때론 가장 따듯한 일이 된다 - P23

당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도, 술도, 눈앞에 있다는 건,
생각보다도 더 당연한 일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있는
힘을 다해, 만끽하시길 바랍니다. - P45

나는

제페토



높은 양반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산업역군이란다
나의 일터는 경제의 최전선이고
전선에서는 다들 죽는 거란다
일 년에 이천 명씩
다치기도 부지기수


그런 거란다
원래 그런 거라는데
억울하다
석연치 않다


나는 역군 아닌데
종현이 아버지인데
지수 씨 남편인데
썩 괜찮은 아들인데

나는 사람인데



<<그 쇳물 쓰지 마라>>(수호서재, 2016) - P84

저금

시바타 도요




난 말이지, 사람들이
친절을 베풀면
마음에 저금을 해둬

쓸쓸할 때면
그걸 꺼내
기운을 차리지

너도 지금부터
모아두렴
연금보다
좋단다



<<약해지지 마>>(지식여행, 2010) - P122

기쁘고 슬프고 사랑하고 추억하는
그 마음이 담기는 게 몸이라서

몸 좀 챙기란 말은
맘 좀 챙기란 말이 된다

몸이 마음의 저금통이라면
마음은 몸의 동전 같은 것

좁은 몸 배부르게
좋은 마음 가득 집어넣고도

돼지저금통처럼 웃을 수 있게
심심할 때마다 하나둘씩 꺼내볼 수 있게

모두 건강하게 삽시다
부디 장수합시다
- P124

민타임 초콜릿 포터

이제 나 혼자서도 즐겨 마시게 된 첫 흑맥주는,
‘올드 라스푸틴(Old Rasputin)‘.
맥주 라벨 한가운데에는 왠지 섬뜩하게 느껴지는
‘라스푸틴‘의 얼굴이 고풍스럽게 그려져 있고, 그 얼굴 주변에는 ‘진정한 친구는 한 번에 사귈 수 없다‘라는 문구가 러시아어로 적혀있다. 최면술로 러시아의 마지막 왕조를 파탄으로 이끈 성직자의 초상 밑에 쓰여 있으니 아주 교훈적이랄까, 마치 나한테 주는 라스푸틴의 마지막 경고같달까.

진정한 관계는 한 번에 얻을 수 없다는,
그러니 너에게 걸려 있는 최면술 같은 콩깍지 따위는 얼른 벗어버리라는. - P168

내 청춘의 영원한

최승자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이 시대의 사랑>>(문학과지성사, 1981)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김용택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한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쳐 오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르는 물 어디쯤 눈부시게 부서지는 소리
문득 들려옵니다




<<참 좋은 당신>>(시와시학사, 2004)

어버이날이 아니라도
부모님 얼굴이 떠오르는 날이 있습니다

새해가 아니라도
무언가 결심하게 되는 날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아니라도
선물을 건네주고픈 날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꼭 무슨 날,
어떤 날이 아니라도

당신을 생각하기에는
모든 날이 가장 좋은 날입니다 - P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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