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네 시
아멜리 노통브 지음, 김남주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오후 네시. 표지는 그럴 싸 했다. 설정 역시 충분히 흥미로웠다. ‘이 사람이 왜 그랬을까?’ 혹은 ‘이런 행동이 이 사람에게 어떤 의미였던 걸까?’ 같은 기대와 궁금함으로 읽어내려 간 이 책은 중반쯤까지는 무난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중반이 지나가며 슬슬 화가 나기 시작했다.

에밀-그는 선량한 사람이 아니었다. 이해되지 않을 만큼, 단지 소심한 사람이었고 나는 그 지나친 소심함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 역시 상당히 소심한 편이다. 하지만 전화벨이 울릴 때, 받고 싶지 않다면 받을까 말까 고민은 하겠지만 받지 않을 수 있고, 누군가 우리집 문을 두드릴 때 반갑지 않은 사람이라면 없는 척 문 열지 않을 수도 있다.

주인공 에밀, 그의 행동-전화벨이 울리자 숨이 막히고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또한 문을 두드릴 때도 그러한-은 이제 단순한 소심함을 넘어 뭔가 정신적 이상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향할수록 그의 생각은 정신이상자처럼 변한다.

마지막으로 치달을 때쯤 나타나는 그의 자기합리화는 참으로 대단하다. 어느 책에선가 읽은 적이 있었다. 아무리 극악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며, 잘못을 인정하는 사람이 없다고. 그는 자신의 행동이 정당한 것이었다고 스스로 합리화를 시키며 어느 타인-그 이웃의 남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한다.

이 얼마나 교만한 행동인가. 어느 누구도 타인의 생각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밀이란 교만한 작자는 그 이웃의 생각을 자신이 정확히 알고 있는 양, 자신이 원하는 그 생각이 정말 그 사람의 생각이라는 합리화 속에서 ‘그 사람이 죽는다 해도, 이미 노인이므로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라는 무섭고도, 든든한 자기보호의 생각 속에 어쩌면 자신일지도 모르는 타인을 죽이는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그는 자신을 죽인 것이다.

이 책은 끝까지 내가 궁금해 했던 것들에 대해 단 한 가지도 보여주지 않았다. 이웃집 남자에게 그 두 시간은 어떤 의미였는지, 정말 아무런 말이 없어야 할 만큼 아무 의미도 없었던 건지.. 난 어쩌면 그렇게 불만투성이로 보이던 그 남자에게, 그 시간은 행복했던 시간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행복했던 순간을, 에밀이라는 그 남자가, 자기가 괴롭다는 이유로, 그 역시 괴로워하는 거라고 합리화시키고 빼앗아 버린 건 아닐까.

이 책은 중반까지만 읽으면 딱 좋을 책이다. 중반이 넘어섰을 때 나는 책을 덮고 싶어했고, 그 때에 책을 덮었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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