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부닥치고 힘으로 겨루어야지! 말로 싸우는 건 품위있는 동물이 할 일이 못 된다! 부끄러운 일이야!" 마디바는 늘 그렇게 말하곤 했다. 와니니는 꾹 참고 돌아섰다. 속이 부글부글 끓어도 하는 수없었다. 말로 싸우자니 야단맞을까 봐 눈치가 보이고, 몸으로싸우자니 질 게 뻔했다. - P21
"이제 그만 울어야지. 넌 이제 어린애가 아니야. 무리를 떠나는 순간 어른이 된 거야. 혼자서 살아가야 하니 어른인 거고, 와니니, 넌 남보다 빨리 어른이 되었어. 그뿐이야." "그래, 무리를 떠나는 것으로 벌을 받았으니 대가를 치른거야. 이미 대가를 치른 일에 대해서는 죄를 묻지 않아, 그것이 사자의 법이야. 그러니 이제 울지 마." - P55
"초원의 모두는 언젠가 죽게 되지. 말라이카도 너도 마찬가지야. 그게 오늘일지 내일일지 아무도 몰라. 그러니 오늘 네가할 일을 해. 그럼 내일이 올 거야. 그것이 초원의 법이야." 그러나 와니니는 자신에게 내일이 없다고 확신했다. - P56
"그리고 애초에 그런 생각 자체가 문제야. 누가 마디바의 아이를 공격했는지 모르지만, 어쨌거나 지난 죽음은 따지는법이 아니지. 누가 누굴 해쳤다고 앙갚음을 하려 들다니, 그래서야 초원의 꼴이 어찌 되겠어? 그런 식으로 따지면 그동안우리가 잡아먹은 그 수많은 누며 얼룩말이며 임팔라며 가젤은 다 어쩔 거야? 그네들이 떼 지어 복수하러 오는 거 봤어?" 일리 있는 소리였다. 쫓고 쫓기고, 먹고 먹히는 건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와니니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말라이카는 사자다. 사자를 사냥감처럼여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사자가 아니잖아요." 와니니가 말했다. 아산테는 검은 갈기가 휘날리도록 고개를 세게 젖히며 헛웃음을 쳤다. "하! 사자는 뭐 별건 줄 아냐? 초원에서는 풀 한 포기나 사사 독숨이니 마찬기지야. 너, 보아히니 혼자 떠돌아다니는 것같은데, 그동안 충분히 느끼지 않았어? 사자라고 목숨이 두개든 세 개는? 사자는 뭐 그리 지만 대단하든?" 와니니는 말문이 막혔다. 마디바의 사사들은 대단하지만, 사자라고 모두 그런 건 아니었다. 혼자가 된 뒤 충분히 느낀일이었다. - P89
"어째서 가만히 있어요?" 기다리다 못해 와니니가 물었다. 아산테와 잠보는 영문을모르는 듯 눈만 끔벅거렸다. 그러다 아산테가 먼저 질문의 뜻 을 알아차렸다. "이런, 이런……. 와니니야, 너는 아무래도 떠돌이 생활에적응을 못 한 것 같구나. 아직 마디바의 아이로 살던 버릇이남아 있네. 그러다 큰일 난다. 정신 차려." 잠보도 설명을 보탰다. "그래, 떠돌이들은 함부로 포효하면 안 돼, 그건 주변의 수사자들에게 시비를 거는 일이나 다름없으니까 말이야. 어쩌다 사냥감을 겁주느라 포효할 때도 있는데, 그러고 나면 재빨리 그 자리를 떠야 해. 그 영토의 주인인 수사자와 마주치기전에 도망쳐야 하는 거지. 떠돌이는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지내는 게 제일이야." 아산테와 잠보는 타고난 떠돌이 같았다. 떠돌이 생활에 대해서는 초원 제일로 꼽을 만했다. - P96
그리고 딱 한 걸음 떨어진 자리에 서서 말했다. "재밌다. 또 하자!" 혹멧돼지는 거대한 살들을 출렁대며 유쾌하게 웃고는 여유로운 걸음으로 멀어져 갔다. - P104
모두에게 고마웠다. 아산테가 위로해 준 덕분에 용기를 되찾았다. 잠보가 먼저 손 내밀어 준 덕분에 친구가 되었다. 말라이카가 살아 준 덕분에 마음의 짐을 덜었다. 서로 도우며 살아남았다. 다치고 쫓겨나고 버림받은 처지지만 서로 힘이 되어 주며 여기까지 왔다. - P169
"나 원 참……. 그래, 맞다! 너 때문이다. 너 때문에 내가 무투와 그 아들과 맞서 싸웠지. 세상에, 마디바라니! 무투라니! 와니니야, 이 아산테가 무투와 마디바의 전쟁에 이름을 올렸다. 이제 온 초원이 나를 기억할 거야." "그까짓 게 무슨 소용이라고!" "어허, 생각해 보아라. 사실 코끼리가 사자보다 거대하지. 코뿔소가 더 힘이 세고, 하마는 사자보다 훨씬 포악해, 그런데도 왜 사자를 초원의 왕이라 하는 줄 아느냐?" 와니니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당연하게 여겼을 뿐, 그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사자는 명예를 위해 싸우는 족속이기 때문이야. 사자는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명예를 위해 목숨을 거는 족속이야. 그래서 사자를 초원의 왕이라고들 하는 거야. 와니니야, 나는 오늘명예를 위해 싸웠어. 와니니 무리의 명예를 위해 마디바의 사자들을 도왔고, 아산테의 명예를 위해 무투와 당당히 맞섰지. 그러니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냐? 이제 됐다." 와니니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되긴 뭐가 돼요? 어서 여기서 빠져나가야 해요. 아저씨, 움직일 수 있겠어요?" "설마 그럴 리가. 내 꼴을 봐라." - P208
세상에는 동물의 종류만큼 다양한 삶이 있다. 사람 사는 세상에는 사람의 수만큼 다양한 삶이 있다. 틀린 삶은 없다. 서로 다를 뿐이다. 저마다 저답게 열심히살고 있다. 얼룩말은 얼룩말답게, 이구아나는 이구아나답게, 흰개미는 흰개미답게, 플랑크톤은 플랑크톤답게 그리고 사람은 사람답게. - P214
"와니니!" 마디바는 눈을 가늘게 뜨며 와니니를 보았다. 사냥감을 살펴보는 눈이었다. 와니니는 네 다리가 와들와들 떨렸다. 마디바를 똑바로 보기도 어려웠다. 그대로 마디바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엎드리고 싶었다. 말라이카는 풀숲에 앉아 마디바를 향해 깊이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마디바의 사자라면 마땅히 그래야 했다. 하지만 와니니는 곧게 서서 마디바를 똑바로 보았다. 눈을피하지 않는다는 것은 복종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와니니 무리. 와니니는 아산테의 그 말을 생각했다.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비로소 떨지 않고 입을 열 수 있었다.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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