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루의 참나무. 두 번의 사랑, 다섯 번의 상처]

벌목공의 무시무시한 전기톱 모터 소리가 시끄럽게 흔들린다. 그의 심장을 쌔앵 잘라내며 온전히 제 마음속에만 간직하고 싶었던 그의 역사가, 격정적이었던 사랑의 시간들을 무자비하게 폭로해버렸고 은밀했을 비밀은 톱밥처럼 쏟아졌다. 번개를 견디고 폭풍을 버티고 어둠속에 우뚝 솟아 저 멀리서 왔을 누군가를 그리며 사랑해왔던 그 아름다운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의 푸르렀던 시간들은 한낱 나이나 셈하는 동그라미따위로 치부되거나 가벼운 입담들이나 앉았다 떠나는 때묻은 의자가 되고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의 떨리는 심장앞에 사랑의 실체를 보여주듯 활활 타올라버리는 마른 장작이 되거나, 필름으로박제된 고급 테이블로 비밀의 장소에서 탐욕의 냄새를 맡으며 인간들의 온갖 구역질나는 유희의 목격자가 돼버렸을 것이다.

새벽, 뇨기를 해결하고 졸린 걸음에 비틀거리는 나의 푸른 그림자가 멈추었다. 밑둥이 거세된 나무 등걸이 내 앞을 가로 막으며 갈라진 소리로 말을 걸었다. 자신의 사랑을 잊지 말아달라고. 제발 지나치지말고 나의 그 절절했던 시간들을 한번만이라도 기억해달라고. 그 절규앞에 난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바닷가 신새벽은 가슴 시리게 밝아져갔다.


-150329 제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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