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마르케스 할배의 [백년의 고독]이라는 책중에 마꼰도로 찾아온 집시서커스단의, 매일 같은 시간에 머리가 잘리는 운명을 타고난 여자가 아주 짧게 언급돼.

내 상상으로는 아마 이럴거야. 멈췄던 시계추가 갑자기 똑딱거리는 소리에 깜짝 놀란 고양이의 눈동자처럼 신기하고 무시무시한 광경을 보기 위해 관중들이 꾸역꾸역 모여드는 거야. 웅성대는 좌중을 둥 둥 북소리로 제압하고는 앞머리는 소녀시대, 뒷머리는 석기시대인 한 미친 눈빛의 여인네가 나타나는 거지. 수 천 번 이상 목이 잘려봤기 때문에 이제 두려움 따위는 없고 오히려 이번엔 제 목을 어디로 튀게 해야 집어 가기 편할까라는 여유로운 생각을 숨긴 채, 거짓으로 공포심에 온몸을 떠는 척하며 제 피로 온통 쵸콜릿색으로 변색된 단두대에 목을 거는 거야.

뎅.강.

목이 잘리면 벌떡 일어나 목에 달린 입의 익숙한 지시대로 더듬는 척 목을 찾아 겨드랑이에 끼고는 사라졌다가 잠시 후-피를 다 뿜어냈기에-곰표밀가루처럼 창백한 얼굴을 하고 아주 온전한 모습으로 나타나는 거야. 사람들은 그 고통을 매번 겪어야하는 여인의 운명에 잠시 비통해하다가 돌아갈 때 쯤 자신들의 목을 한 번 훑어내리고는 제자리에 붙어있는 걸 확인하며 안도의 한숨을 쉬겠지. 좀 전의 비통따위는 다 잊은 채 말야.

오늘 점심으로 3인분을 시켰는데 중량으로는 2인분이 될까말까한 대패삼겹살을 심사 뒤틀린 채 먹고 나와서 하나로마트에 사무실에 필요한 간식거리를 사러 갔어. 입구계단에서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가 소아마비성인지 심하게 뒤틀어진 다리를 끌며 계단 난간을 간신히 짚어가며 한 발 한 발 떼는 한 사내를 부축하고 있더군. 그렇지. 여기 이렇게 잡을까? 옳지. 마치 아기를 다루는 엄마처럼. 머리를 빡빡 깎은 작은 체구의 사내는 그 보다 더 작은 어미의 손을 잡고 자꾸만 땅에 달라붙으려는 신발과 싸우며 평생 제 어미 눈을 못맞춰봤을 사시의 눈동자를 위 아래로 굴려 어미를 바로 보려했어.

평생 흔들리는 어머니였고. 평생 흔드는 아들이었겠지. 평생을 사내의 어그러진 얼굴을, 다리를, 인생을 바라봤을 노파의 죄책감과 썩어 터지고 갈라지고 말라붙은 가슴팍이 느껴지더라. 삶은 치사하고 신은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어. 선택이란 게 없었을 태생적 기형과 태생적 고난은 도대체 무엇에 대한 형벌인걸까. 그는 기억도 못하는 전생의 무슨 죄악에 대한 댓가인걸까. 혹시 신은 다트판에 아무렇게나 다트를 던져 10점 나온 운명은 억만장자로 1점 나온 운명은 천형을 안고 일생을 살게끔 만들어 놓은 건 아닐까. 인류를 포함한 생물의 수가 너무 많아서 이제 하나하나 설계하기가 귀찮아진거야. 고깃집의 부정은 차치하고서라도- 고작 대패삼겹에 심사뒤틀린 나. 대패삼겹살 일억톤이 와도 바꾸지 못할 저 비틀린 삶. 돌멩이와 우주만큼 커다란 차이 아닌가.

몇가지 물품을 사서 나왔어. 낮인데도 어둑스런 잿빛사위는 몹시 불안해보였고 차갑게 목덜미를 쑤시는 칼바람이 홱홱 날라다녔어. 한 두 방울 떨어지던 빗방울이 어느새 촘촘해지더니 요즘들어 가뜩이나 나빠진 시야를 빗살치듯 흐뜨러트렸어. 아, 겨울의 반항이군. 그래 겨울은 어쩌면 서커스단의 그녀를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어. 매년 3월이면 늘 이렇게 탄식의 눈물을 흘리며 잠시 앙칼지게 대들어보지만 결국 거부할 수 없는 기요틴에 목을 내밀어야 하는 신세니 말이야. 시간보다 더 먼 옛날, 지구가 태양을 돌기 시작한 바로 그 때부터 소멸과 부활을 반복하는 계절의 지긋지긋한 순환처럼.

그래도 겨울아, 봄아, 여름아, 가을아, 너흰 부활이라도 하잖니. 그것이 목숨을 끊고싶을 정도로 지긋지긋하더라도, 그렇더라도 너흰 그 새 삶을 살아보기라도 하잖아. 뒤틀리고 흔들린 한번 뿐인 쩨쩨한 삶은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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