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군하리]

-김사인

쓰다 버린 집들 사이로
잿빛 도로가 나 있다
쓰다 버린 빗자루같이
나무들은 노변에 꽂혀 있다
쓰다 버린 담벼락 밑에는
순창고추장 벌건 통과 검정 비닐과 스티로폼 쪼가리가
흙에 반쯤 덮여 있다
담벼락 끝에서 쓰다 버린 쪽문을 밀고
개털잠바 노인이 웅크리고 나타난다
느린 걸음으로 어디론가 간다
쓰다 버린 개가 한 마리 우줄우줄 따라간다
이발소 자리 옆 정육점 문이 잠시 열리고
누군가 물을 홱 길에 뿌리고 다시 닫는다

먼지 보얀 슈퍼 천막 문이 들썩 하더니
훈련복 차림의 앳된 군인 하나가
발갛게 웃으며
신라면 다섯개들이를 안고 네거리를 가로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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