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제목치고는 그리 편한 제목은 아니다. 마귀, 망령, 귀신과 같은 의미를 지닌 악령.

이 소설은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과 죄와 벌에 비해, (개인적으로)읽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은 도선생작품의 전문가이기도 하고 번역을 많이 해왔던 분인,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번역자 김연경씨가 번역을 한 터라, 나름 부드러운 흐름의 독서를 기대했다. 그러나 등장인물들의 사회, 종교, 철학적 관념의 성찬을 추적하기가 벅찼고 여기에 도선생 특유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만연체적인 문장은 물흐르듯 책장을 넘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 작품 역시 다른 두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죄와 벌만큼이나, 감탄에 감탄을 토해내며 읽게 되는 소설이다. 각각의 인물들이 풍기는 매력이 거의 마력수준...

소설의 사건들은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의 도끼사건에 이어, `잔인한 천재`라는 타이틀이 붙은 도선생의 특성이 유감없이 나타난다.  20여명이 넘는 인물중 열명이 넘게 죽어나간다. 악령이라는 제목처럼 이 책을 읽다보면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과 사건의 전개를 추동하는 것이 바로 `마귀들림`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야기 얼개의 중심에는 주인공이랄 수 있는 `스따브로긴`과 `5인조(의 인물들)`가 있는데, 우선 5인조중에 가장 흥미를 끄는 인물은 [끼릴로프]다. 스따브로긴과 함께 이 책에서 가장 철학적인 문제를 던지는 인물이랄 수 있다. 바로 끼릴로프의 자살론. 인신이 되기 위한 관념, 즉 또 다른 형태의 악령에 사로잡힌 자다. 허무주의, 염세주의적인 사상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무신론자이면서 스스로 신이 되길 원하는 그의 이론과 실제 그가 `신`이 되기 위해 감행하는 장면에서, 책임에도 저절로 눈감게 하는 그 기괴함이란...

스따브로긴. 모든 사건의 그물망과, 주제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인물. 정리하기가 복잡하다. 그의 어머니 바르바라의 평생 친구자 연인이기도 하면서 그녀가 만든 `주조물`인 스쩨빤에 의해 어린 시절, `우수`, 즉 무엇인가의 부재에 대한 음울한 근심과 욕망을 향한 추구의 감정을 알게 된 그는 그 어떤 주저함없이 행동할 수 있으며, 그 어떤 공포감에도 끄떡없는 거대한 정신적, 육체적 힘을 소유한 자다. 그가 능욕한 열네살 바기 마트료카의 비극이나, 사람들앞에서 뺨을 맞는 정도따위는 주체할 수 없는 쾌감이 될 수 있고 그런 쾌감을 넘는 욕망들 또한 어느 한 순간에 정신적힘을 발휘, 초월적 존재처럼 제어해 낼 수 있다. 


한 때, 5인조의 모든 구성원들의 정신적, 사상적 지도자이기도 했던 그는 숭배와 존경의 대상이다. 뾰뜨르쓰쩨빠노비치(쓰쩨빤이 과거에 카드빚으로 버린 아이)는 이런 힘을 자신의 조직적 목표를 위해 이용하려한다. `모든 일이 해결`되면 대중들을 구원하고 인도해줄 초월적 존재로 그를 내세우고 싶어 할 정도다. 그러나 그는 뾰뜨르의 이런 제안을 거절하고 사라진다. 참칭자로 불릴만한 힘이 초래한, 악령에 사로 잡힌 듯한 범죄에 대한 그의 모순적인 행동과 고뇌의 편력을 찾아가는 과정과 결말은 어줍잖은 교훈이나 변화에 대한 기대를 조롱이나 하듯, 무척이나 스따브로긴스럽다.....


5인조 얘기를 해보자. 이 5인조는 무정부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이고, 공상적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모인 비밀결사집단이다. 러시아 전역에 `그물망`처럼 수백개(혹은 어쩌면 그들만의 단 한 개) 얽혀있다고 뾰뜨르는 주장한다. 이들은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계획을 세우며 `민중적`인 방법이라는 방화나 소요를 일으켜 일시에 그 넓은 그물망에 권력을 낚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들이 집단에 해가 되는 행동, 즉 [샤또쁘]처럼 사상을 전환하고 `밀고`를 하려는 자(라고 판단되는)는 결사의 조직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 샤또쁘.. 너무 불쌍....암튼,  이 모든 `권리`는, 이 책에서 조직의 넘버2, 가장 악독하고 영악스런 뾰뜨르의 강제적 선언이자 권리이다. 그의 허락없이는 배신이나, 탈퇴나, 심지어는 자살을 택할 수 있는 권리조차 없다. 회원들의 모든 `권리`는 그가 계획하고, 그가 명령을 받는다는-그러나 실체를 확인할 수 없는- IS(국제인터내셔날)의 지령에 따른다. 여기에는 그 어떤 인본주의적 사회주의 사상의 핵심따위는 찾아 볼 수 없다.


새로운 사상과 관념에 의해 `잡아 먹힌` 인간들의 추구 대상은, 그 사상이 이루고자 하는 새로운 사회에서의 새로운 삶이 아니라, 그 사상 자체가 된다. 슬라브주의를 배격하고 서구의 자유주의와 무신론의 영향으로 점차 신이란 존재가 무의미해지는 시대에서 오직 자신들만의 사상이 새로은 신을 대신하게 된다. 그 새로운 `신`을 위해서 방해되는 모든 것들은 쓸모없는 존재다.  5인조중의 한 명인 [쉬갈료프]는 이점을 철학적으로 정립하려 한다. 요약하자면 ˝평등사회를 구현한 사회에서 지력와 권력은 10퍼센트의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고 나머지 90퍼센트의 일반 대중들은 오로지 그들에게 복종을 해야하고 그럼으로써 불평등한 사회를 종식하고 범세계적인 평등을 얻는다˝


이것은 마치, 죄와 벌에서 라스콜리니코프가 세상을 비범인과 범인으로 나누고 비범인은 범인에 대한 무제한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는 논리다. 무솔리니와 히틀러가 통치이념으로 내세웠던 파시즘에 다름 아니다. 대중을 현혹하고 사회의 불평등을 고착시킨다는 종교와 신의 `헛소리`를 없애려 했으나, 결국에는 또 다른 신적 구조를 숭배하는 아이러니의 본질에는 이러한 숨길 수 없는 욕망과, 어쩌면 유사이래로 제대로 풀지 못했던 사회권력의 속성이 숨어있다. 스따브로긴이, 끼릴로프가 개인적 악령에 씌여 비극을 초래했다면 이 5인조는 사회적 악령에 씌였던 것이다.

묘하게도 이 사탄들을, 악귀들을, 악령들의 물리침은 이 책의 맨 첫 장에 나온다...

이 책의 내용을 단순하게 비정한 혁명가 집단이나 그릇된 사회주의 사상에대한 비판으로 읽으면 곤란하다. 여기서 나오는 사회주의적 사상은 일반적 이념과는 매우 동떨어진 것이기도 하거니와 작가가 말하려 하는 주제도 그것이 다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이 책의 모티프는 도선생의 페트라세프스키회사건과 당시 혁명가 집단에서 벌어진 비인간적 사건에서 일부 따온 것이기도 하다). 오히려 이 책은 당시 역사적 변혁기를 앞두고 설익고 무자비하며 비인간적인 관념의 노예-바로 악령에 사로 잡힌-가 된 인간군상들을 통해, 이런 악령에 의한 홀림이 얼마나 잔인하고 비열한, 그리고 얼마나 `추접한` 비극을 낳는 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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