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가에서 구정설을 쇠고 이미 신정설을 쇠신 장인 장모 두 분께서만 계시는 처가댁에 들렀다. 30여년 거주후 재개발지역선정으로 완공때까지 계실 곳으로 이사준비 중이신데, 저녁밥 먹고 입주할 곳에 이삿짐 배치 얘기가 나오다가 장인어른의 책장때문에 약간의 격론(?)이 벌어졌다. 아래 사진은 아랫층 서가의 한쪽벽면을 차지하고 있는 3칸의 책장인데 이 넓이의 책장이 다해서 3개정도 된다.

처형은 아빠 책 좀 정리하고 비우셔, 제발, 장모님은 새로 이사할 아파트의 거실에까지 책장을 놓을 수 없다, 그러니 책장 2칸정도는 알아서 정리를 하시라, 나는 저 아까운-장인께서 평생 공부한 역사가 남은-책을 버리다니요, 처가 둘째형님은 이미 책은 안(못)버리는 걸로 오래전에 정리되었으니 왈가왈부치 말고 거실 한쪽 면엔 책장을 놓지않으면 모든 방은 책장에 점거당한다, 예전 젊었을 적, 이삿짐 쌀 때, 당신은 오로지 책만 상자에 담은게 이삿짐꾸리기의 전부인 분 아니냐, 등속의 시끄러운 말들이 오고 갔다.

심지어 어쨌든 지금은 보지 않은 책들이 많으니 미련없이 버려야한다, 설사 매각을해도 이런 전공서적을 누가 사겠느냐따위의 말들도 나왔는데 수십년간 빛바래가며 빽빽한 책장에서 연대의 힘으로 결속해왔던, 한때는 높은 몸값을 자랑하던 책들이 엿들었다면 졸지에 치욕스런 천덕꾸러기가 된 신세한탄과 배신감에 스스로를 발화시켜버렸을 것이다. 요즘엔 기증을 한다해도 도서관에서 사람이 나와 심문하는 듯한 눈초리로 필요한 몇권만 빼가지 않는가.

그 와중에도 조용히 듣고만 계시는 장인께서는 무언의 저항을 보이셨다. 예전 혈기라면 큰소리가 났을 뻔한데, 이젠 연세때문이신지 이런 소동쯤은 초연하게 되었는지, 팔짱을 끼신 채 그저 앞뒤로 이리저리 까딱하시기만 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집사람이 아빠가 아까워서 못버리는거다, 그러니 당신이 좀 가져가라, 고 했을 때 화들짝 반가운 얼굴로 그래 구서방, 마음에 드는 거 있으면 가져가게, 지금 아래층에 당장 가세, 라며 마치 고차방정식의 해답을 찾은 듯한 표정을 지으셨다. 도저히 버릴 순 없고 얼마간의 수를 줄여야하는 상황도 알지만 그대로 가져가겠다는 고집도 은근 부담은 되셨을텐데 폐기치 않고 보관장소가 생기게 되니 이 얼마나 기쁘지 않으시겠나.

장인께서 가진 책들은 9할은 영문책이고 1할 정도는 일문책이다. 익숙한 책 제목들과 문학관련 책들을 쭉 훑어보았다. 내가 만약 전공을 계속했다면, 저 모든 책이, 역사가 고스란히 내게 이전됐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내 손때묻은 책들이 아님에도 마치 박물관의 유물처럼 어떻게든 보존해야한다는 뜬금없는 의무감마저 들었다. 아, 조국이 날 부르고 21세기가 날 간절히 원하지 않았다면!

아무튼 애석히도 내가 아랫층에 내려가 뒤져서 가져 온 것들은 고작 한글로 된 아주 아주 오래된 책들 몇권과 최근 장바구니에 담아 둔 돈키호테를 운좋게 얻는데 그쳤다. 지금 와서 내가 다시 전공을 공부할 것도 아니요, 원서들을 가져간다해도, 20여년이 지나 영어 까막눈이 다 되어가는 영어실력은 호기로운 책펼침 몇페이지 후, 절망스런 책덮음으로 맺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사전에 와서 찬찬히 보고 가져갈 책 챙기라시는데 아마도 더 보관(?)해드릴 수 없을 것같다. 모쪼록 모든 역사가 잊혀지지 않고 고스란히 새 보금자리로 이관되길 바랄뿐이다.

집에 돌아와 정리한 작은 박스안 책들.
내가 코흘리개였을 때 나온 책들도 있고 심지어 책값이 500원짜리도 있다. 물론 그때의 500원은 라면이 50원이었을때니 지금의 만원값은 했으리라. 삼중당, 학원사, 서문문고, 자이언트문고..잊혀져가지만 기억 한 구석에 남아있는 출판사들이다. 더군다나 옛날책임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세, 세, 세로쓰기 책들이다.

역시 책은 가지런히 정리되었을 때가 제일 늠름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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