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 것들
셀레스트 응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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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너희 잘못이 아냐, 아빠는 그렇게 말했지만, 리디아는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우리가, 리디아와 네스가 잘못한 게 분명했다. 두 아이가 엄마를 화나게 한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두 아이는 엄마가 원했던 아이가 아니었던 거다. 눈에 맺힌 눈물 때문에 요리책의 씨들이 뿌옇게 보였다. 리디아는 맹세했다. 엄마가 집에 돌아와서 우유를 다 먹으라고 말하면, 다 먹을 거야. 리디아는 양치질도 아무 소리 없이 잘할 거고, 의사 선생님이 주사를 놓을 때도 울지 않을 거야. 엄마가 불을 끄면 곧바로 잘 거고, 다시는 아프지 않을 거야. 엄마가 하라는 건 모두 할 거야. 엄마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할 거야.

메릴린은 리디아의 머리에 얼굴을 묻고 조용히 맹세했다. 리디아에게는 절대로 바르게 앉아라, 남편을 찾아라, 집을 지켜라, 같은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네가 할 수 없는 직업이 있다는 말은, 네가 들어갈 수 없는 세상이 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의사`라는 말을 듣고 남자만 떠오르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남은 평생 엄마보다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리디아를 격려해줄 것이다.

그리고-마지못해 그들 우주의 중심이 된-리디아 자신은, 매일같이 세상을 한데 뭉치고 있었다. 리디아는 부모의 꿈을 흡수한 채 내부에서 솟아나오려는 거부반응을 조용히 억눌렀다. 수년이 흘렀고, 존슨이, 닉슨이, 포드가 대통령이 됐다가 그만뒀다. 리디아는 가냘픈 아가씨로 자랐고 네스는 키가 커졌다. 엄마의 눈가에는 주름살이 잡혔고 아빠의 관자놀이에는 흰머리가 자랐다. 리디아는 부모가 절실하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심지어 부모가 요구하지 않을 때도 알았다. 매번 그 일은 부모의 행복을 위해 교환해야 하는 작은 거래 같았다. 그래서 여름마다 대수를 공부했고, 드레스를 입고 신입생 댄스파티에 갔고, 대학에서 생물학 강의를 들었다. 여름 내내, 월요일, 수요일, 금요일모두 말이다. 응, 하고 싶어. 하고 싶어. 하고 싶어, 라는 말을 하면서

리디아가 그 모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오직 네스 때문이었다. 매일같이, 유치원 때부터 네스는 리디아를 위해 자리를 맡아줬다. 식당에 가면 식탁 건너편에 리디아의 자리를 맡아줬고, 학교 버스를 타면 자기 옆 초록색 비닐 의자 위에 책을 올려놓았다.리디아가 먼저 도착했을 때는, 리디아가 네스의 자리를 맡았다. 네스 덕분에 모든 아이가 서로 짝을 지어 즐겁게 떠드는 모습을 보면서 혼사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됐고,주저하며 "여기 자리 비었어요?"라고 물어볼 필요도, 이미 누군가가 맡아놓은 자리라고 거절당할 필요도 없었다. 두 아이 모두 입 밖으로 꺼낸 적은 없었지만, 두 아이는 그것을 약속이라고, 이해했다. 네스는 언제나 리디아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놓을 것이다. 리디아는 언제나 누가 올 거예요. 전 혼자가 아니에요,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제 네스는 떠나려 했다.더 많은 편지가 날아오고 있었다. 며칠 내로 학교 안내 책자와 입학에 필요한 서류를 동봉해 보내드릴 예정입니다. 하지만, 잠시 동안, 리디아는 망상에 빠지도록 내버려뒀다. 우편물에서 다음에 오는 편지도 빼돌리면 돼. 그다음에 오는 것도, 그다음에 오느것도. 모두 빼돌려서 매트리스 밑에 숨겨놓으면 돼. 오빠가 찾지 못하게. 그러면 어쩔수 없이 집에 있어야 할 거야.

그해 여름부터 지금까지 네스는 여전히 뭔가가 리디아와 자신을 발목을 한데 묶고 있어서 균형을 잡을 수가 없고, 자신이 리디아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10년 동안 두 아이의 발목을 묶고 있는 그것은 조금도 느슨해지지 않았고, 이제는 발목이 쓸려서 아프기까지 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부모에 대해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던 네스는 리디아의 불행을 그대로 흡수해 말없이 동정해줬고, 가만히 어깨를 꼭 잡아줬고, 어색하게 웃어줬다. -중략- 지나치게 사랑을 받는 것이 지나치게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일임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줬다. 그리고 그 시간 내내 오직 한 가지만 생각했다. 대학에 가면... 그 뒤의 말은 한 번도 완성해본 적은 없지만, 네스의 상상 속에서 펼쳐지는 미래에서는, 네스를 묶고 있는 줄이 풀렸고, 네스는 멀리멀리 동동 떠내려갔다.

네스는 지금 리디아가 원하는 게 뭔지 알았다. 동생을 안심시키고, 자신은 곧 있힌다는 굴욕을 인정하는 것. 동생의 기분이 나아질 수 있는 말을 해주는 것. 엄마는 이겨낼 거야. 모두 괜찮아질 거야. 그때 기억하지? 하지만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을 기억하고 싶지 않았다. 내내 리디아를 봤고, 네스를 볼 때면 두 눈에 실망을 가득 담고 있던 아빠를, 언제나 리디아를 칭찬하면서, 네스는 공기로 만들어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흘긋 쳐다보기맘 하고, 늘 네스를 관통해서, 그 너머를 보던 엄마를 기억하기 싫었다. 네스는 오랫동안 기다려온 편지를 음미하고 싶었다. 떠나겠다는 다짐을 마침내 실현하게 됐다는 것을, 백지처럼 하얗고 깨끗한 상태로 네스를 기다리고 있을 세상을, 음미하고 싶었다.

하지만 한나에게 그 순간은 번뜩이는 번갯불처럼 한 가지 사실을 분명하게 알게 해줬다. 오랫동안 갈망해온 탓에 한나는 그런 일은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오랫동안 굶은 강아지가 음식 냄새를 맡으면 갑자기 콧구멍을 실룩거리는 것처럼 말이다. 한나는 잘못 알 수가 없었다. 한나는 그 즉시 그것이 무엇인지 알아차렸다. 사랑, 한쪽에선 계속 상대를 향해 날리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없는 흠모, 돌려받지 못해도 상관없이 어쨌든 계속해서 할 수밖에 없는 조심스럽고 조용한 사랑. 한나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사랑이어서 놀랍지도 않았다.

엄마, 요리책, 내가 잃어버렸어. 리디아는 그렇게 말했다. 그 말에 멜릴린은 전율했다. 딸아이의 말을 계시라고 생각했다. 우리 애는 내 마음을 아는구나. 우리 딸은 절대로 주방에 갇히지 않을 거야. 우리 딸은 더 나은 걸 원하는 거야. 그런데, 그게 거짓말이었던 거다. 메릴린은 보지 못했던 책을 펼쳤고, 엄마가 연필로 그어놓은 선을 손가락을 따라 그었고, 밤마다 메릴린이 혼자 주방에서 울며 만들었던 눈물자국을 꾹꾹 눌러 펴봤다. 그러니까 리디아는 알고 있었던 거다. 이 책이 엄마를 무거운, 아주 무거운 돌처럼 내리누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리디아는 이 책을 파괴하지 않았다. 그저 오랜 시간 동안 감추고 있었던 거다. 엄마가 절대로 보지 못하도록 이 책 위에 다른 책을 쌓고 또 쌓았던 거다.
다섯 살이었던 리디아는, 까치발을 들고 식초와 베이킹소다가 섞여 거품을 만드는 모습을 지켜봤다. 리디아는 책장에서 무거운 책을 꺼내와 들이밀면서 말했다. 엄마 또 읽어줘. 엄마 다른 책 읽어줘. 리디아는, 정말로 조심스럽게, 엄마의 심장에 청진기를 댔다. 갑자기 눈물이 메릴린의 앞을 가렸다. 리디아가 사랑한 건, 그러니까 과학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런 걸 원하지 마."
너무나도 부드러운 말투에 한나는 놀랐고. 리디아 자신도 놀랐다.
"잘 들어. 네가 할 일을 생각해. 네가 하지 않을 일이 아니라."
리디아는 목걸이를 모아 쥐었다.
"약속해. 다시는 이걸 하지 않겠다고. 앞으로 말이야."
한나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개를 끄덕였다. 리디아는 목걸이가 가르고 간 부분에 가늘게 선이 파여 피가 배어나오는 동생의 목을 엄지손가락으로 살며시 문질렀다.
"웃고 싶지 않을 땐 웃지 않는 거야. 꼭 기억해야 해."
한나는, 언니의 관심을 오롯이 받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해 반쯤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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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키
존 윈덤 지음, 정소연 옮김 / 북폴리오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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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아이가 상상친구가 생기고 그 이후 다양한 재능을 보이기 시작한다. 그 상상친구가 알고보니 외계의 지성체라는 기발한 발상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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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쇠인간 비룡소 걸작선 30
테드 휴즈 지음, 앤드류 데이비슨 그림, 서애경 옮김 / 비룡소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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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 <아이언 자이언트>의 원작이다. 작가 테드 휴즈는 실비아 플라스의 남편이고, 실비아가 자살하자 아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애니와는 주인공 아이 이름 등 몇가지 점만 비슷하고 크게 관계가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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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리피드의 날 미래의 문학 7
존 윈덤 지음, 박중서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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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용 축약복의 제목들을 생각하면 식인 식물이 나오는 괴수물로 생각할 수 있지만 트리피드의 비중은 생각만큼 크지않다. 그런 표현이 있는진 모르겠지만, 일종의 사회파SF라 해야되나? 그렇다고 지루하거나 재미없지는 않다. 500페이지가 넘는 분량이 술술 잘 넘어간다. 배리 랭퍼드의 서문은 길이가 꽤 길어서 본편을 읽기 전에 지치게 만들었다. 소설 내용소개도 있고하니 소설뒤에 넣는게 좋지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완역본의 출간을 기대도 안했는데 출간해준 출판사에 감사를 드린다.

 

 통조림 깡통 따개가 이제는 각주 까지 달아야 할 물건이라니... T 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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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은 알고 있겠지
요한나 티델 지음, 강미란 옮김 / 우리나비 / 201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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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투적이지만 나름 울림은 있다.

마리타 이모와 함께 있는 것은 참 좋다. 일반적인 속도로 걷는 누군가와 함께 걸을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목발 짚는 소리가 아닌 이모의 발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기분 좋은 일이었다. 쳐다보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좋았다. 무슨 일이 생겼던 걸까, 아 정말 안됐다 하는 눈길로 쳐다보는 사람이 없어서 참 좋았다. 사람들은 생각하겠지, 아 모녀가 쇼핑을 하는구나, 둘이 참 잘 맞나 보다, 보기 좋다. 예나는 마리타 이모의 딸일 수도 있었다. 이모는 딸이 없다, 아들만 넷이다. 예나는 이모의 딸로도 태어날 수도 있었다. 마리타 이모가 예나의 엄마일 수도 있었다.
그냥 보통의 엄마.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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