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 목소리 - 어느 나무의 회상록
카롤 잘베르그 지음, 하정희 옮김 / 파란시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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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 발작적으로 반항심이 이는 것을 느낀다. 나를 살아있게 만들고 꼼짝 못하게 가두고 있는 이 땅에 대해서, 나 스스로 나서서 거절하거나 행동하지도 못하고 하물며 증인을 나서지도 않았음에도 내 앞을 차례차례 지나가는 살아있는 것들을 목격하게 만드는 이 공간에 대해서. p48

하지만 내일은 어떨까? 만약 인간들이 다시 일어난다면,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 그들의 종말이 아니라며, 그들은 파멸에서 무엇을 살려낼까? 정복으로 점철된 그들의 과거에서 남은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혼란에서 무엇을 구해낼까?
그리고 그들이 만약 자신들의 역사를 잊어버린다면, 자신들이 업신여기던 짐승들과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미래도 없고 꿈도 없이 살아가야 하는 이런 존재가 되도록 이끈 그 모든 것을 잊어버린다면, 여전히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틀림없이 그럴 것이다. 비록 쓰러지고, 비록 빈자리가 나를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 해도, 내가 여전히 나무인 것처럼. 나는 이제까지 살아온 내 모습 그대로 현재도 앞으로도 끝까지 살아갈 것이다.
비록 당장의 배부름과 잠자리, 그리고 다가올 새벽을 무사히 넘기는 것에 급급해야 할 정도로 무력해졌을지언정, 인간들은 영원히 일어서고, 넘어지고, 다시 일어나고, 또 다시 넘어지는 그런 피조물로 남으리라. p147~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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