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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할 걸 그랬어
김소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4월
평점 :
책을 읽는 내내 내 눈을 의심했다. 책이 분명 속지가 흰색인데, 읽다보면 핑크색으로 보이는 것이다. 자세히 살펴보니 책의 전체 내지가 윗 부분은 흰색이고 아래쪽은 연한 핑크색감으로 처리되어 있었다. 중간 부분은 약간 그라데이션 되어 보이는 느낌이다. 읽으며 좋은 향기가 날 것 같은 책은 처음이다. 책 표지를 가리지는 않았는데 핑크 핑크한 게 여자분이 고급스레 골랐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 책의 저자가 전 MBC아나운서이자, 오상진씨 남편의 아내, 그리고 지금은 책방 주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녹록치만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어떻게 그 과정 속에서 책방을 선택하게 된 것인지 용기와 결정력이 대단했다.
책의 처음은 아나운서로 일하고 있을 때 느꼈던 일들과 감정들이다. 8개월 동안 책상에서 아무 역할도 없이 책만 읽어야 하는 시간들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겠다는 생각뿐이였다. MBC파업과 여러 가지 일들로 시작된 고민의 시간들 속에서 그녀는 사직서를 내고 혼자, 아니 둘의 여행을 떠난다. 일본으로 가서 책방을 둘러보기 시작하는데 어휘에 자신이 없어서 일본어를 잘 하는 남편과 함께 떠났다. 책 속에서 남편에 대한 꽁냥꽁냥한 기분들이 고스란히 전해져 나와 신혼 분위기를 냈고 서로 잘 만났다 싶었다. 남편에 대한 내용을 표현하지 않으려고 한 것 같지만 구석구석 묻어나 있다. 일본의 책방들을 보며 역시 독서하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많은 나라라는 것을 느꼈다. 특히 긴자역과 교바시역 사이에 있는 5평쯤 되는 작은 책방. 온통 흰색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기다란 테이블 하나. 그 위에 똑같은 책 수십 권이 놓여 있는게 신기했다. 일주일간 단 한권의 책을 여러권 판매하고 있었다. 책방주인의 고집이 묻어나고, 한 종의 책만 팔아도 장사가 될거라고 믿으며 판매하는 이들이 신기했다. 모리오카 서점. 책을 사려고 사람들이 보는 시간이 길수록 책을 반드시 구입한다는 상관관계는 없다. 그에 착안해서 서점을 운영하는 모리오카 서점이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과연 한국에서도 이런 곳이 있다면 가게 월세라도 낼 수 있을까. 걱정부터 된다. 서점 여행을 하며 빼먹을 수 없는 먹는 여행도 함께였다. 어쩌면 맛집만 갔을까, 싶을 정도로 먹고 싶은 음식들이 가득한 곳만 다녔다. 책방 자체에서 음식을 판매하는 곳도 있었다. 음식을 흘리면 어떻게 하나, 음식 냄새가 배면 어떻게 하나 싶지만 그런 점들도 생각하면서 음식과 책방의 콜라보를 이끈 책방의 운영방법이 보기 좋았다.
책의 중반부에 이르면 ‘당인리 책 발전소’라는 책방을 내기까지의 과정이 들어있었다. 어떠한 컨셉으로 책방은 운영할지, 독립책방, 동네책방으로 운영할지, 고민한 흔적들이 묻어났다. 내가 가장 동감했던 부분은 이 부분이다.
“만약 하루키 소설을 정성껏 읽은 사람이 소설 속의 이야기를 진열대에 펼쳐놓는다면 어떨까. 등장인물을 분석하고, 그들의 행동과 말투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만한 심리학 서적을 함께 두는 것이다. 소설의 주요 모티프가 실제 역사적 상황과 배경을 바탕으로 한다면 관련 지식을 보충할 수 있는 책을 놓을 수 있다. 혹은 책의 배경인 지역과 문화를 직접 경험하게 해줄 여행 상품을 판매할 수도 있다.”
내가 만약 책방을 운영한다면, 그리고 돈에 상관없이 내가 놓고 싶은대로 책을 놓는다면 나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놓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마스다미리의 차의 시간을 읽었다면 마스다 미리가 마셔보았던 차를 조금 판매하거나, 케이크를 조금씩 판매하면 어떨까, 마스다미리가 필사 해 놓은 글을 진열해놓거나, 차를 마셨던 배경이 되었던 카페들 사진을 전시해도 좋을 것 같다. 마스다미리가 그린 그림을 책갈피로 만들고, 그녀의 프로필을 조금 크게 확대해서 작가를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 생각만 해도 너무 들뜬다. 여행책을 소개했다면 여행에 좋은 필수품들을 진열하거나, 여행지를 다녀왔던 티켓이나 영수증을 놓아도 좋을 것 같다. 이 책의 작가인 김소영님도 이러한 생각을 하며 마인드맵을 해봤다는 것에서, 책방에 책을 하나하나 진열할때에도 얼마나 많은 구상을 했을지 상상이 된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사람들이 오랜 시간을 들여 자신의 생각을 두툼한 책으로 엮고, 또 시간을 들여 길고 긴 글을 정성껏 읽었으면 좋겠다.” 나 또한 책방들도 책방주인의 특성과 컨셉에 맞게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났으면 좋겠다. 그러한 책들이 운영이 원활히 될만큼 경제적으로도 책방이 벌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책 읽는 인구도 좀 늘었으면 좋겠고.
<진작 할 걸 그랬어> 저자인 김소영님이 책방을 만드는 것에 이어 책과 관련된 글을 내게 되어 무척이나 반갑다. 셀럽인 분들이 책방을 차리니까 당연히 책방이 인기 있을 수 밖에 없겠구나 생각했는데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노고가 숨어져 있었는지 몰랐다. 당인리 책 발전소 책방지기가 추천한 책 100권이 수록되어 있다. 눈 여겨 보게 되었다. 책에서 결국 좋아하는 일을 찾은 김소영 저자를 축하하며 나도 늦기전에 무언가 하기 위해 노력하고 싶어졌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