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덩덩 새선비 네버랜드 우리 옛이야기 20
이상권 그림, 엄혜숙 글 / 시공주니어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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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숙제해야 할 시간에 밖에 나가서 놀았다고 혼을 내는 어머니를 보며 엉뚱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분명 나를 낳은 어머니가 아니다, 나를 괴롭히러 온 구렁이 늑대 호랑이 뭐 이런 짐승일 거다, 밤만 되면 원래대로 돌아가 옆집 개를 잡아먹을 거다……. 워낙 공상에 빠져 살았던 시절이었지만, 밤에 둔갑하기는커녕 나를 꼭 안아 주고 뽀뽀해 주던 어머니를 둔갑한 짐승으로 여겼다니, 너무하지요?
  조금 비겁하기는 하지만 옛이야기와 그 책임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렁이 각시>와 <미녀와 야수> 같은 이야기책을 보면 앞을 다투듯 변신한 주인공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사람들은 이전 세상에서는 동물이었다가 어찌어찌하여 인간 세상에 다시 태어난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리고 또 어찌어찌하면 죽어서 동물이든 식물이든 별이든 바람이든 다시 태어나는 것이고, 또 그러다가 계속해서 무엇으로든 다시 태어나는 것이라고 상상의 날개를 펼쳤었지요. 그렇게 생각하다가 내린 결론은, '착하게 잘 살자!'였습니다. 그러니 또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책상머리에 앉았겠지요?
  <구렁덩덩 새 선비>(시공주니어)의 주인공은 구렁이입니다. 구렁이는 우리 옛이야기 속의 단골 손님이지요. 자식이 없어 외로워하던 할머니가 난데없이 아기를 낳았는데 사람이 아니라 구렁이였던 것이지요. 할머니는 망측스러워서 구렁이를 뒤꼍에 두고 삿갓으로 덮어 놓았습니다. 모두가 징그럽다고 침을 뱉었을 때 이웃집 셋째 딸만이 '구렁덩덩 새 선비'라고 하며 삿갓으로 덮어 주었습니다. 그 때문인지 구렁이는 셋째 딸에게 장가를 가겠다고 떼를 썼고, 마음씨 고운 셋째 딸은 구렁이에게 시집을 갔습니다. 혼례를 올리던 날,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구렁이가 허물을 벗고 멋진 사람으로 변신을 한 것이지요. 그러나 언니들이 질투에 눈이 어두워, 구렁덩덩 새 선비가 셋째 딸에게 맡긴 허물을 태워 버리는 바람에, 구렁덩덩 새 선비는 멀리 떠나 버렸습니다. 다행히도 셋째 딸은 온갖 고생 끝에 구렁덩덩 새 선비를 만나 그 동안의 오해를 풀고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
  옛이야기에 단골로 등장하는 것 가운데 단연 으뜸은 여우입니다. 요즘은 뜸해졌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여름이면 미녀로 둔갑한 꼬리 아홉 달린 여우나 백 년 천 년 묵은 여우가 사람을 홀리고 해치며 TV 드라마를 휩쓸고 다녔습니다.
  <여우누이>(사계절)도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아들 셋을 둔 부자가 딸을 갖고 싶어 비는 모습을 늙은 여우가 몰래 숨어서 지켜보았습니다. 부자가 딸을 얻게 되자 괴이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밤마다 소나 말이 한 마리씩 죽었던 것입니다. 부자는 세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아보라고 명령했습니다.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은 잠을 자느라 지켜보지 못했지만, 셋째 아들은 가축들을 잡아먹는 게 누구인지 목격했습니다. 바로 누이동생이었습니다.(출판사에 따라 첫째·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의 입장이 바뀌어 전해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딸을 싸고돌던 부자가 셋째 아들을 내쫓아 버렸습니다. 셋째 아들은 착한 마음 덕분에 신통한 색시와 혼인했고, 병 세 개를 받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런데 여우누이가 그 사이에 식구들을 다 잡아먹었고 셋째 아들마저 잡아먹으려 달려들었습니다. 결국 병 세 개의 힘으로 셋째 아들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지만, 늙은 여우가 둔갑한 누이동생 때문에 가족들을 잃었지요.
  그렇다면 이런 변신 이야기는 우리나라에만 있을까요? 물론 다른 나라에도 아주 많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옛날이야기에서만 즐겨 나오는 게 아닙니다. 네덜란드의 <개구리 선생님의 비밀>(푸른나무)은 학교를 무대로 선생님들의 변신 이야기를 펼칩니다. 프란스 선생님은 조상으로부터 개구리가 되었다가 사람으로 되돌아오는 유전을 물려받았습니다. 개구리 생각만 하면 갑자기 개구리로 변하고, 파리를 잡아먹으면 사람으로 돌아왔던 것이지요. 마침 그 학교에는 프란스 선생님과 아이들을 몹시 싫어하고 못살게 구는 교장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알고 보니 교장선생님은 개구리를 잡아먹어야 사람으로 되돌아가는 황새였지요. 그렇다면 프란스 선생님이? 그렇지요. 교장선생님과 프란스 선생님은 원수였습니다. 아이들은 개구리로 변한 프란스 선생님이 황새로 변한 교장선생님에게 잡아먹힐까 봐 파리를 잡고 동물협회에 황새를 보내버리는 등,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이 동화를 읽으면 벌레를 함부로 잡고 말 못하는 짐승을 괴롭히던 일이 양심을 콕콕 찌르게 됩니다.
  사람으로 또는 다른 동물로 변신하는 것은 앙심을 품어서이기도 하고 은혜를 갚기 위해서이기도 하는 등 이유도 여러 가지입니다. 중요한 것은 다 읽고 나면 뭔가 끊임없이 호기심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것입니다. 변신 이야기가 주변의 사물을 주의 깊게 살펴보도록 부추기는 것이지요. 꿈속에서처럼 하늘을 날고, 물 속을 헤엄치며, 으르렁거리기도 하는 것은 사람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거꾸로 새들이나 물고기나 호랑이도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각자의 위치에서 다른 생명을 존중해 주는 것이 변신 이야기의 마무리가 아닌지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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