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 2단계 문지아이들 8
수지 모건스턴 지음, 김예령 옮김, 미레유 달랑세 그림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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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봄꽃들의 잔치가 잠잠해지면서 그늘이 시원하게 느껴지는 때가 왔습니다. 어른들도 나들이에 설레고 즐거운데 어린이들은 오죽할까요? 땀이 쏟아지든 옷이 더럽혀지든 콩콩 뛰어다닐 수만 있다면 신나게 용수철처럼 튀어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그게 어디 쉬운가요? 날마다 숙제는 그칠 줄을 모르지요, 학교에서 선생님 눈치 보랴 집에서는 부모님 눈치 보랴. 놀아도 노는 게 아닙니다. 요즘 어린이들, 특히 도시의 어린이들이 불안감 없이 완전히 자유롭게 놀 수 있을까요? 
  <잔소리 해방의 날>(온누리)의 푸쉘은 어느 날 부모님의 잔소리에 불만을 쏟아 놓으며 하루 동안만 자신의 일에 아무런 간섭도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한 마디로 '잔소리 해방의 날'을 지정한 것이지요. 푸쉘의 부모님은 놀랍게도 선선히 허락할 뿐만 아니라 푸쉘이 무엇을 하든지 진짜로 그냥 내버려 두었습니다. 하루 동안의 자유가 주어지자 푸쉘은 그동안 귀찮아했던 일들에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종일 이를 닦지 않고 딸기잼을 실컷 먹는 등 작은 일은 물론이고요. 학교를 조퇴하기도 하고 처음 보는 노숙자를 집에 데리고 와서 파티를 했습니다. 더구나 공원에서 텐트를 치고 야영을 하는 위험천만한 일까지 저질렀습니다.
  그런데 너무나 신나고 즐거워야 할 야영은 뜻밖에도 싱겁게 끝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의 보호 없이 어두움과 낯선 동물과 사람들 사이에서 자신을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를 깨달았던 것이지요.
  <조커, 학교 가기 싫을 때 쓰는 카드 >(문학과지성사)에서는 아이들이 보다 영리한 방법으로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새로 온 위베르 노엘 선생님 덕분이었지요. 위베르 노엘 선생님이 선물이라며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것은 한 묶음씩의 조커 카드였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지각하고 싶을 때 쓰는 조커, 숙제한 것을 잃어버릴 때 쓰는 조커, 떠들고 싶을 때 쓰는 조커, 벌을 받고 싶지 않을 때 쓰는 조커 등 위기가 올 때마다 내밀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낼 수 있는 조커들이었지요.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요? 조커 카드 때문에 오히려 즐거움을 찾은 아이들이 학교 가는 것을 너무나 행복하게 여기게 될 줄이야…….
  그러나 아이들과 노엘 선생님의 이런 행복한 수업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앵카르나시옹 교장 선생님이었지요. 노엘 선생님이 조커를 통해 아이들과 가까워지고, 아이들이 조커를 가지고 더욱 자유와 여유를 느끼게 될수록 교장 선생님의 노여움은 커졌습니다. 결국 노엘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의 지시로 학교를 떠나게 됩니다. 이 때 아이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노엘 선생님에게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을 때 쓰는 카드'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아이들은 이제 삐딱하게 굴거나 떼를 쓰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조커를 만들어 줄만큼 마음의 여유를 얻은 것입니다.
  두 작품에는 공통적인 성격의 사람들이 나옵니다. 먼저 자유롭고 싶어하는 아이들이지요. 온 세상 아이들은 이 점에서 모두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들뿐만이 아니지요. 아이들에게 자유를 허락해 주는 어른들이 나옵니다. 푸쉘의 부모님과 노엘 선생님입니다. 이 분들은 주인공이나 다름없습니다. 스스로 결정하거나 행동하기에 어리고 불안한 아이들이었지만, 이 분들이 믿고 자유를 주었으니까요. 솔직히 푸쉘의 부모님은 아이들에게서 상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학교에도 가지 않고 위험한 일을 거리낌없이 하는 푸쉘을 그냥 지켜봐 주었던 분들이니까요. (물론 공원에서 야영을 한다니까 걱정이 돼서 몰래 따라가기는 했습니다.) 노엘 선생님은 어떻고요? 교장 선생님의 어떤 눈총에도 꿋꿋하게 아이들의 조커를 받아 준 분입니다.
  노엘 선생님의 말이 옳습니다. 아이들에게 준 자유는 어디까지나 선물이지요. 어른들도 마찬가지이긴 한데, 자유는 365일 항상 누릴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자유라는 말도 사라지게 될 겁니다. 자유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 하고 싶지만 참아야 하는 일들을 비로소 할 수 있게 풀어 주는 열쇠인데, 만약 늘 자유롭다면 그것 또한 재미없는 규칙이 아닐까요? 늘 자유롭다는 것은 더 이상 하고 싶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1년 내내 똑같은 자유라면 한번 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그런 자유는 모든 것을 아이들이 책임져야 하는 무서운 규칙을 뜻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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