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계동 아이들 사계절 아동문고 52
노경실 지음, 김호민 그림 / 사계절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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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웃사촌'이란 말을 아시나요?
  지금처럼 고층 아파트가 동네마다 들어서기 전에는, 집들이 옹기종기 붙어 있었습니다. 요즘은 경비원 아저씨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 앞까지 가는 세상이지만, 그 전에는 집을 나오면 길, 길을 따라 총총 걸어가면 ○○네 집, 또 걸어가면 □□네 집 이랬지요. '∼아파트 몇 동 몇 호'가 아니라 '쌀집 골목에서 세 번째 빨간 대문 집'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이웃사촌은 멀리 떨어져 사는 친척들보다도 가깝게 지내는 이웃을 말합니다. 이웃끼리 얼마나 의좋게 살았으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요? 장독대에 널어놓은 빨래나 담을 타고 들려 오는 두런두런 말소리만으로도 그 집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훤히 꿰뚫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지금도 이웃 간에 사이 좋게 지내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웃사촌이란 말은 뭐니뭐니해도 집집마다 지붕이 있고 조각 땅에서 어깨동무하듯 나란히 대문을 활짝 열어 놓고 지내던 시절에 잘 어울리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아마도 사람들 마음이 집의 모양을 닮는가 봅니다.
  <상계동 아이들>(사계절)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기 전 판자촌이었던 상계동 풍경을 그대로 보여 줍니다. 부자도 없고 문제 없는 집도 없습니다. 병든 기옥이 엄마, 말썽만 피우는 광철이, 어릴 적부터 글도 익히지 못한 채 중학교에 다니는 형일이, 엄마 아빠 언니까지 시각 장애를 갖고 있는 은주네, 무당을 하면서 걸핏하면 매를 휘두르는 깐돌이 엄마 등등. 모두가 주인공이면서 단 한 사람도 걱정거리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상계동 아이들>을 읽고 가슴이 따뜻해지기는 해도 화가 나거나 답답해지지 않는 것은, 이 책이 이웃사촌 이야기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깐돌이는 아이들이 형일이를 놀리면 나서서 맞섭니다. 동네에서 이기적이며 잔인하다고 소문 난 종칠이 할머니는 종칠이 때문에 다친 형일이에게 병원비를 대 주지요. 무뚝뚝한 줄만 알았던 깐돌이 엄마는 종칠이 할머니와 싸우고 나서 깐돌이에게 잘해 주게 됩니다. 누군가 어려운 일을 당하면 평소에 시큰둥했던 사람들까지 한 마디씩 거들며 도움의 손길을 보냅니다. 그 도움이 문제를 직접 해결해 주거나 듣기 좋은 말로 다가가지는 않습니다. 작고 소박하며 투박하고 어색하기만 합니다. 그런데 때깔 좋은 말이나 물건보다 훨씬 더 서로에게 힘이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상계동 아이들>처럼 다 같이 가난했던 날의 한 동네 이야기는 아니지만, 집 주인과 우정이나 사랑을 나누게 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벌렁코 하영이>(사계절)의 초등학교 1학년 하영이는 아빠 병원비 때문에 이사간 집 주인이 애들을 싫어하는 할머니라서 즐겁지가 않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2층에 살고 있는 집 주인 할머니가 잃어버렸던 딸을 그리워하며 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동네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할머니가 고양이를 잡아먹고 고양이 울음소리를 낸다고 했지요. 고양이처럼 아웅다웅하던 집 주인 할머니는 하영이와 정이 들어서 친할머니처럼 잘해 줍니다. 예전에는 이처럼 세 들어 사는 사람들이 집 주인과 한집에서 살며 다투기도 하고 억울한 일도 당하고 또는 한가족처럼 지내기도 했답니다.
  얼마 전 어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 '소음 때문에 주민들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으니, 각 가정의 자녀들이 실내에서 뛰어 놀지 못하도록 주의해 주십시오.'라는 글이 붙어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느 아파트나 이런 글이 한 번도 붙지 않은 적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아이들은 뛰어 놀지 않으면 안 되니까요. 아이들은 뛰어 놀아야 건강하게 클 수 있으니까요. 눈치 보느라고 아이들을 밖으로 내보내야 하고, 집안에서 발뒤꿈치를 들고 다녀야 한다니 아파트는 아이들에게 영 재미없는 곳임에 틀림없습니다.
  이왕 소음 이야기가 나왔으니 <우당탕탕, 할머니 귀가 커졌어요>(비룡소)를 빼 놓을 수가 없군요. 위층에 아이들이 새로 이사오자 아래층 할머니는 툭하면 시끄럽다고 올라옵니다. 하는 수 없이 아이들은 살금살금 기어다니고 말할 때에도 귓속말로 작게 속삭입니다. 그러자 아래층 할머니는 웬일인지 귀를 쫑긋 세우고 위층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려고 애쓰다가 '못 들어서 생기는 병'에 걸려 귀가 커지게 됩니다. 결국 의사의 처방대로 위층 가족들은 큰 소리로 이야기하고 즐겁게 웃을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아래층 할머니 귀도 예전처럼 되돌아오지요. 황당한 이야기이지만, 위층 아이들과 아래층 할머니를 통해 이웃 간에 가져야 할 예의와 배려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웃사촌이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아파트, 컴퓨터, 의심 같은 것들이 더욱 부채질하고 있지요. 그러나 모두가 나와 같다고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웃사촌은 금세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아직 이웃은 여전히 많고도 많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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