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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풍요의 시대 - AI와 인류의 미래
피터 디아만디스.스티븐 코틀러 지음, 김태훈 옮김 / 비즈니스북스 / 2026년 8월
평점 :
《초풍요의 시대: AI와 인류의 미래》
피터 디아만디스 · 스티븐 코틀러
가제본으로 세 개의 장을 먼저 읽었을 때 가장 궁금했던 것은 하나였다.
‘그래서 풍요로워진 세상에서 인간은 무엇을 하며 살아가게 될까?’
완성된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오히려 이 질문이 책의 핵심에 가장 가까웠다는 생각이 든다.
《초풍요의 시대》가 그리는 미래는 꽤 대담하다. AI와 로봇이 노동을 대신하고, 의료와 교육의 접근성이 높아지며, AI·로봇공학·합성생물학·신경기술 등이 서로 결합해 지금까지 해결하기 어려웠던 문제에 도전한다.
처음에는 ‘정말 이렇게까지 될까?’라는 의심도 들었다. 하지만 책에서 설명하는 ‘풍요의 6D’를 따라가다 보면 생각이 조금 달라진다. 기술은 한동안 별다른 변화가 없는 듯 보이다가 어느 순간 기존 산업을 뒤흔들고, 비싸고 희소했던 것을 저렴하게 만들며 대중에게 확산된다. 이미 우리가 여러 차례 경험해 온 변화이기도 하다.
그래서 기술이 얼마나 발전할 것인가를 다룬 부분보다 그 이후에 대한 이야기가 더 흥미로웠다.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이 존재하고, 내가 몇 시간 동안 고민할 일을 AI가 몇 초 만에 처리할 수 있다면 인간의 경쟁력은 어디에 있을까.
AI를 실제로 활용할수록 답을 얻는 속도는 분명 빨라졌다. 하지만 답을 쉽게 얻을수록 무엇을 질문할지, 그 답을 믿어도 되는지, 얻은 정보를 어디에 사용할지는 오히려 더 온전히 인간의 몫으로 남는다.
그래서 앞으로의 격차는 단순히 ‘AI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서만 생기지는 않을 것 같다. 같은 도구를 사용하더라도 무엇을 질문할지 알고, 결과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며, 서로 다른 정보를 연결해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더욱 커질 수 있다.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간과 AI의 협업 역시 같은 맥락으로 읽혔다. 미래를 ‘인간과 AI 중 누가 이길 것인가’라는 경쟁의 구도로 바라보는 것 자체가 잘못된 질문일지도 모른다. 기계가 잘하는 일을 따라잡으려 하기보다 인간의 상상력과 맥락, 목적의식에 AI의 능력을 결합하는 쪽이 더 현실적인 미래에 가깝다.
다만 책의 낙관론을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웠다. 기술이 풍요를 가능하게 하는 것과 그 풍요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생산 비용이 낮아지고 자원이 풍부해진다고 해서 접근 권한과 부의 분배, 기술을 통제하는 힘까지 자연스럽게 평등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오래 생각하게 된 것은 ‘목적 없는 풍요’였다.
정말 노동과 물질적 결핍이 크게 줄어든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행복해질까?
결핍을 없애는 것이 곧 삶의 의미를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해야 할 일이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찾고,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갈지 결정하는 능력이 지금보다 더 중요해질 수 있다.
그래서 책을 다 읽은 뒤 ‘초풍요’라는 단어가 처음과는 조금 다르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기술이 만들어주는 물질적 풍요를 의미한다고 생각했다면, 마지막에는 그 풍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인간의 문제처럼 읽혔다.
결핍의 시대에는 ‘더 많이 갖는 것’이 목표였다면, 풍요의 시대에는 ‘그 풍요로 무엇을 할 것인가’가 더 어려운 질문이 될 것이다.
AI가 인간보다 똑똑해지는 미래보다 어쩌면 더 경계해야 할 것은 생각하고 선택하는 일까지 AI에게 맡기는 데 익숙해진 인간일지도 모른다.
기술은 인간의 능력을 계속 확장시키겠지만, 능력이 커지는 것과 더 나은 인간이 되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결국 이 책을 읽고 얻은 답은 역설적으로 기술에 관한 것이 아니었다.
미래의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AI보다 더 많은 것을 아는 능력이 아니라,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스스로 정하고 질문하며 판단하는 능력에 가까울 것이다.
그래서 《초풍요의 시대》는 단순히 미래 기술을 예측하는 책이라기보다, 그 기술을 손에 넣은 인간이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책으로 기억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