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에 바침


나는 아직 무사히 쓸쓸하고
내 쓸쓸함도 무사하다네.

하루가 얼마나 짤막한지
알지 못했다면
단 하룬들
참지 못했으리.

배를 타려 하네.
섬.
깊은 독서 끝에
처박혀지는.

나는 아직 무사히 쓸쓸하고,
왜냐하면 그게 그거인 나날,
 그러나 비유는 다채롭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를 전개하다

이수명


한 마리의 새 뒤에 수백 마리의 새들이 있다. 수백
마리의 새들을 뚫고 나는 나아간다. 그들을 침범하지
않는다. 새들이 들끓고 있다.

나를 옮긴다. 돌을 옮긴다. 새들이 돌 속으로 들어
가고 돌을 빠져나간다. 새의 반대 방향으로 돌을 옮
긴다. 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ㅡ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이수명

날이 차갑다. 날이 또렷하다. 날에서 상한 냄새가
난다. 리듬이 끝났다. 너는 볕을 쬐려 한다. 볕을 조
금만 더 쬐려 한다. 둥근 등받이 의자에 너를 걸쳐놓
는다. 날이 차갑다. 두 개의 날이 섞이지 않는다. 두
개의 날이 어떤 날이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느 날 너
는 날을 침범한 것이다. 날과 날의 영역을 범한 것이
다. 다시 날이 차갑다. 너는 볕을 쬐려 한다. 울퉁불
퉁한 볕을 향해 몸을 기울인다.


ㅡp.4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 해가 나를

황인숙


한 꼬마가 아이스케키를 쭉쭉 빨면서
땡볕 속을 걸어온다
두 뺨이 햇볕을 쭉쭉 빨아먹는다
팔과 종아리가 햇볕을 쭉쭉 빨아먹는다
송사리떼처럼 햇볕을 쪼아먹으려 솟구치는 피톨들
살갗이 탱탱하다
전엔 나도 햇볕을
쭉쭉 빨아먹었지
단내로 터질 듯한 햇볕을

지금은 해가 나를 빨아먹네

ㅡp.8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진짜 공부는 정답이 없는 것들에 대해서 한없이 궁리하는 것, 즉 내 앞에 있는대상세계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p.5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