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는 잊지 말아요 - 기억을 잃어가는 엄마와 함께한 딸의 기록
하윤재 지음 / 판미동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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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겉표지도 참 예쁘다 생각했다.
출장길 KTX에서 몇 시간을 보내야 하기에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이 책을 골랐다.  겉표지가 약해보여 자칫 출장길에 책이 상할까싶어 겉표지를 벗겼다. 그때 순간 흠찍 슬픔이 와닿았다. 이책을 읽기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표지에서부터 벌써 슬퍼지기 시작했다. 엄마와 딸이 마주보는 사진..  작가의 어린시절의 모습이었다.
글을 쓰는 지금도 가슴이 먹먹한 것은 아무리 책을 의연한 자세로 읽겠다 마음먹었다해도 쉽게 막을 수 없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효도라는 게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어렴풋이 부모님이 베풀어 주신 모든 것에 십분의 일이라도 돌려드리는 게 맞는 게 아닐까 생각할 뿐이다.

"엄마 고마웠고 감사했어요." 식의 인사는 과거형이고, "엄마 사랑해." 식의 인사는 현재형이라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그날이 마지막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찾은 마지막 인사말은 바로 이것이다."
"엄마,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자"

마지막 인사말을 고르고 보니 그때쯤이면 엄마는 당신의 의지로는 인사를 못할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의 컨디션이 가장 좋았던 어느날 커피를 들고 바짝 다가앉았다. 엄마는 의미심장한 눈빛이 부담스러운지 "와 이카노? 답답하구로!" 하며 옆으로 비켜앉았다. 나는 다시 다가앉으며 운을 뗐다.
"엄마, 엄마가 생각하기에 우리는 참 좋은 인연인 것 같지?"
엄마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
"그걸 말이라고 하나?"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러니깐 우리 다음 세상에서도 다시 꼭 만나자"
나는 엄마에게 손가락을 내밀었다. 엄마는 내 눈치를 살필뿐 답이 없었다.
"왜? 만나기 싫어?"
"만나지 말자"
"왜? 나 만나기 싫어? 아까는 좋은 인연이라며 "
엄마는 서운해하는 나를 물끄러미 보다가 입을 열었다.
"나야 꼭 만나고 싶지. 근데 여시도 이리 니한테 짐이 되는데. 고마, 니는 다음에 더 좋은 부모 만나서 편하게 살아라."

'당신이 준 것은 하나도 생각하지 않고 어떻게 받은 것만 이렇게 생각할까? 어쩌면 사람이 이럴 수 있지? 엄마도 사람인데....'


방황할 때나 암흑 속에 있을 때 어머니께서 들려주는 지혜로운 이야기. 언제나 섭리에 역행치 마라. 모두에게 대답이 강요된 세상.  이 세상을 사는 상심한 사람들에게도 언제가 해결책은 오리니. 혹시 헤어지더라도 다시 만날 기회는 필연코 다시 오리니. 순리를 벗어나 서둘지 마라. 칠흑 같은 밤이라도 한 줄기 불빛만은 밝을 때까지 비추리니, 렛 잇 비.

노래가 끝날 때쯤 슬픔의 눈물은 기쁨과 감사의 눈물로 바뀌어 있었다. 한 편의 무성영화 주인공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엄마의 마음을 읽었기 때문이다. 엄마는 나의 간절한 꿈을 알고 있었다. 내게 아직 기회가 오지 않았다는 것을. 엄마는 내가 좌절하지 않도록 기회의 자리를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엄마를 촬영하는 동안 나는 알 수 있었다. 그 동영상이 내 인생 영화가 될 것이라고. 가끔씩 엄마가 그립거나 마음을 다스리고 싶을 때 그 영상을 꺼내본다.
나는 엄마와 나의 이야기가 해피엔딩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책을 다 읽고 먹먹한 가슴을 한동안 어쩌지 못했다. 이 책은 슬프게 쓰여진 책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감동스러운 이야기, 작가의 깨달음 등이 주를 이룬다. 그러나 읽는 내내  작가의 어머니와 같은 사투리를 쓰시는 몇년전 돌아가신 시어머님 얼굴이 오버랩되고, 우리 엄마가 계속 떠올랐고, 이어서 내 딸이 생각나는 순간 슬픔을 주체할 수 가 없게 되었다.
하루 출장길에 단숨에 읽어버린 이 책이 내 인생에 어떤 변화를 몰고올지 모르겠다. 읽는 내내 반성도 했다가 미래에 대한 다짐도 했다가 복잡미묘한 감정에 휩싸여있었기 때문이다.
'엄마'라는 말 자체에 담긴 애뜻함도 있겠고, 알면서도 표현하거나 굳이 챙겨서 느끼려고 하지 않은 미안함과 고마움에 대한 다양한 생각들이 몰려왔다.
지금도 우리 아이들을 재우고 출장길에 조심히 돌아오라고 따뜻하게 전화주시는 우리 엄마..
자꾸 눈시울이 붉어져 다음 세상에서 또 만나자는 작가의 말을 읽을때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또르르 흘르고 말았다.
슬퍼지길 각오하며 읽은 이 책은 슬픔 그 이상의 감동이 있었다. 실제 얘기여서 더 와닿았던 것일까? 엄마만 생각하면 늘 애뜻하고 보고있어도 그리운 존재이지만 정작 잘 챙기지는 못하고 받기만 하는 것 같다.
우리 딸이 가끔 울면서 하는 말이다.
"엄마 보고있어도 보고싶어."
몇년째 이어지는 나의 편지에는 늘 고맙고 감사하다. 사랑한다. 이 다음에 효도하겠다...  라고 쓰여진다. "이 다음에" 는 언제일까 퍼뜩 날카롭게 나를 찌른다. 다음이 아니라 지금부터 더 늦기전에 효도하리라 다짐해본다.

이런 감동과 깊은 깨달음을 안겨준 작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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