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 인 헤븐
가와이 간지 지음, 이규원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데블 인 헤븐』은 『데드맨』과 『드래곤 플라이』의 작가, 가와이 간지의 장편 소설이다. 2030년 미래, 기요스라고 하는 도쿄 카지노 특구라는 가상의 장소를 배경으로 벌어지는 거대 음모와 살인사건을 다루는 이야기다. 느와르 또는 하드보일드 형사소설의 형식을 그대로 따라가면서 기업의 음모와 사회적 문제를 같이 다루는 사회 형사소설이라고도 볼 수 있다. 


처음 이야기는 '바카라'라고 하는 카지노 카드 게임을 하는 금발과 푸른눈을 가진 남자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남자는 담담하면서 도발적인 태도로 카드게임에 임하는데, 이내 봉변을 당하고 만다. 무대는 바뀌어 2030년의 기요스에 새로 부임한 형사, 스와 고스케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스와는 도쿄 도내에서 발생한 의문의 추락사 현장에서 천사가 그려진 카드를 줍고 음흉한 기요스 안에 무언가가 있다고 감지한다. 세번째로 이야기는 또 다른 형사, 진자이 아키라의 이야기로 넘어간다. 진자이의 시대는 기요스 특구가 생겨나기 훨씬 이전을 배경으로 하는데, 기요스 탄생과 관련된 문제를 캐다가 동료 여형사를 잃고 만다. 과거의 진자이와 미래의 스와가 한 시간대에서 만나는 순간, 기요스에서 발생하는 노인 연쇄 살인사건의 주모자의 정체가 명확해진다. 


특이하게도 이야기는 이제 그 '주모자'의 시선으로 넘어간다. 이것은 『데드맨』이나 『드래곤 플라이』에서도 사용된 서술 방식이다. 저자 가와이는 형사, 범죄자 등 여럿의 시선을 번갈아 가며 서술한다. 그 안에 너무 많은 '드라마(사연)'이 들어있다. 각 인물이 안고 있는 개인적인 고독과 우울함은 모두 '빠칭코 도박 만연', '노인 소외 문제' 등과 같은 사회적 문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고, '휴머니즘'을 느끼게 하는 부분도 없지 않아 있지만. 인물 성향은 너무나도 전형적이어서 진부하게까지 느껴진다. 『드래곤 플라이』에서 느꼈던 것도 이런 감정과 비슷했다. 이 책에 쏟아지는 찬사에 내가 일부 공감할 수 없는 것은, 하드보일드가 내 취향이 아니라는 '취향의 문제'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주모자'가 드러나고, 그가 결말을 향해 달려가는 상태, 그리고 그 최후의 드라마 속에서 구시대적인 '자폭 정신'을 느꼈다는 점에서 낮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드래곤 플라이』를 썼을 때와 마찬가지로 가와이는 정말 많은 배경지식을 조사해서 책 안에 집어넣었다. 인물에게 캐릭터성을 부여하기 위한 조사도 정말 많이 했다. 주인공들이 특정한 차 모델과 총 모델 사용만을 선호한다는 설정. 이전 작품들과 같은 이런 설정은 미국 형사 소설의 영향을 어설프게 받기라도 한 건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감상. 소재는 거대했다. 카지노 도시의 연쇄 살인 사건과 거대 음모. 하지만 결말은, 상황 묘사가 조잡하고 캐릭터 부각을 너무 시킨 탓에 다소 싱겁게 끝난 느낌이다. 이 모든 엔터테인먼트를 담아내기엔 책 분량이 너무 짧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크리피
마에카와 유타카 지음, 이선희 옮김 / 창해 / 2016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강풀이 그린 이웃을 소재로 한 스릴러 만화가 히트치면서 이웃이 누군지도 모르는 무관심에서 비롯되는 현대 사회의 공포가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마에카와 유타카의 「크리피」도 비슷하게 이웃을 소재로 하고 있다. 또 「검은집」을 통해 유명해진 사이코패스도 소재로 삼고 있다.  「크리피」는 온라인서점에서 호러소설로 분류되고 있는 걸로 기억한다.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라는 책 속 대사에서는 호러스러운 요소를 직접적으로 느끼기가 어려웠지만, 책을 읽으면서 진짜로 소름끼치는 기분이 들곤 했다. 

범죄소설인 이 책이 크게 머리를 굴릴 필요 없이 편하게 읽혀졌던 건 이미 범인이 누구인지 알려져 있는 이야기 구조 때문이라고 해야겠다. 범인이 누군지 숨겨놓고 여러 트릭과 힌트를 제공하는 본격 추리소설을 읽다가 「크리피」를 읽으면 의외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걸 경험한다. 주인공 다카쿠라는 46세의 범죄심리학 교수이다. 어느 날 그를 찾아온 고교 시절 동급생 '노가미'라는 형사는 수년 전 일가족 실종 사건에 대한 다카쿠라의 의견을 듣고 싶다고 한다. 한편 다카쿠라의 옆집에 사는 남자는 니시노라는 남자인데 다카쿠라는 그의 사이코패스적인 면모를 목격하고 공포를 느끼게 된다. 그러곤 노가미가 말한 사건과 옆집 남자 니시노 사이에 접점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는데... 결정적으로 니시노의 딸인 미오가 다카쿠라의 아내에게 "그 사람은 우리 아빠가 아니에요" 라고 하더니 한 밤 중 다카쿠라 집에 피신을 온 사건으로 인해 니시노의 범행이 표면에 드러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다카쿠라의 직업이 범죄심리학 교수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연출이나 과장된 캐릭터성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역시 이전에 읽은 작품인 「드래곤플라이」나 「모든 것이 F가 된다」의 영향 때문인가. 주인공 남자가 드러내는 '탐정의 면모'가 너무 과장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었는데. 다카쿠라는 그렇지 않았다. 
사건을 대하는 자세만이 아니라 그의 일상생활이나 인간을 대하는 모습에서 자연스럽게 캐릭터성이 나타났다. 무모하기도 하고 어설프기도 하여 인간적인 실수를 하기도 하고 그로 인해 주변 사람들의 생명이 위협을 받기도 하는데, 그런 점이 더욱 더 현실적인 캐릭터로 다가온다. 사건 후 10년이 지나 신중하게 생각하고 이성적으로 사건의 모순을 깨닫고 사건의 진상을 유추해나가는 과정은 부드러우면서도 암시하는 듯한 문체를 통해 독자에게도 자연스럽게 다가왔다. 자기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지 못하는 다카쿠라가 던지는 의문점들이 차차 맞추어지기 때문에 다카쿠라의 시선을 따라가는 데 거부감이 없었다. 재미있는 건 그가 제자 여대생에게 남모를 애정을 품는 것도  사회파 범죄소설의 소소한 재미인가 했더니 사건 한 맥락과 연결되기 위한 복선이었다. 어느 것도 버릴 것이 없이 꼼꼼하게 사용되고 있는 소설이었다고나 할까.

소설의 초반부는 니시노라는 사이코패스 범죄자의 냉혹하고 잔인한 면모를 엽기적인 범죄 사건들을 통해 보여준다. 이어서는 아내를 해치고 미오를 납치한 채 사라진 니시노가 잡히길 기대하다가, 일련의 사건들이 연결됨으로 인해 다카쿠라가 니시노의 행방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모든 것이 점차 수면으로 떠올라 밝혀지게 될 때에는 다카쿠라의 인간성과 함께 사건 피해자들의 복잡한 심정이 리얼하게 묘사된다. 사건은 비극적이었고 상처가 남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갈지에 대한 군상을 보여주고 있는 인상깊은 소설이었다. 다카쿠라의 대사를 이용하자면 "슬프고도 애절한 감정이 온몸으로 밀려왔다" 라고 할 수 있는 엔딩이었다. 

참고로. 영화 「크리피」의 줄거리를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는데. 소설하고 배경은 비슷하지만 스토리는 상당히 각색된 듯 하다. 하나의 스토리 라인으로 담아내기엔 소설 속의 컨텐츠가 너무 많다. 아마 영화를 보면 익살스러울 정도인 연출력 때문에 실망하고 말겠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래곤플라이 데드맨 시리즈
가와이 간지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전작 『데드맨』에 등장했던 가부라기 조사단의 4인방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주인공 가부라기 형사는 『데드맨』의 사건 이후로 팀웍을 확인한 가부라기는 이번 엽기 살인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다른 세 명의 조력을 구하고자 정식 요청한다. 가부라기는 육감이라는 게 강하여 사건에서 지나치기 쉬운 부분들에 주목하며, 이성보다는 감정적으로 사건을 대하지만 뛰어난 발상 덕분에 진상을 파헤치는 능력이 있다. 가부라기의 동기 마사키는 건들건들하면서도 열혈적인 성격이 특징이다. 과학경찰연구소의 사와다는 해부학에 대한 지식도 훌륭하지만 사건의 모순점과 이치를 꿰뚫는 데에 탁월할 재능이 있다. 가부라기의 후배인 히메오 순경은 경찰 마니아이며 젊은 혈기로 인해 욱하는 경향이 있으며, 어디서 미리 백과사전이라도 읽고 왔나 싶을 정도로 쓸데없는 지식들에 능하다. 


『드래곤플라이』에선 내장이 모두 제거된 채 불에 탄 시체가 발견되어 가부라기 팀이 이를 추적한다. 이들은 시체 옆에 있던 잠자리 목걸이의 제작소가 있는 군마현까지 이동하고, 여기서 시체의 신원이 가와즈 유스케라는 남자라는 걸 알게 된다. 가와즈의 관계인을 조사하는 와중에, 댐 건설 관계자 및 마을 촌장 사이에 비리가 있음을 현지 경찰로부터 듣게 된다. 군마현의 히류 촌이 히류댐 건설로 인해 수몰될 위기에 있다. 이들은 이제 살인 피해자의 지인 중 이즈미라는 여자를 찾아가고, 그 여자의 부모가 20년 전 집에서 강도에게 의문의 살인을 당했단 사실을 알게 된 후, 20년 전 사건과 가와즈 살인 사이에 연결성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비리를 갖고 있는 마을 촌장이다만 그는 범행을 부인하고. 해외 도주 계획을 짠다. 이제 촌장이 도망가기 전에 가부라기들은 사건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 


 

『드래곤플라이』는 너무 올소독스(orthodox)하다. 사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상징적 대상이 지명과 연결되어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점. 네 명의 캐릭터들이 팀웍을 보여주는 영웅적인 구조. 지나치게 엽기적인 살해 장면. 이런 올소독스한 구성요소 때문에 드래곤플라이 초반부는 지루하게 느껴졌다. 데드맨에서, 짧은 분량임에도 치밀한 캐릭터성을 드러내어 극찬을 받았고 차기작으로까지 이어졌는데. 그래서 '시리즈물'로서의 성향이 지나치게 강해졌다. 이 소설에서 '캐릭터성'을 빼면 남은 것들은 많지 않아지게 된다. 


등장인물이 많은 만큼 장면과 행동에 대한 시각적 설명이 지겹게 많아지는 것이 왜 이렇게 불편하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상대적으로 제한적인 자연, 경광에 대한 묘사 때문에 오히려 인물의 행동에 대한 묘사가 도드라지고 유치하게 느껴진 것 같다. '마사키'의 거칠고 자유분방한 스타일이 가장 거북스러웠던 건,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라고 해야할 것 같다.


전작에 더해, 이번엔 새로 등장한 다타리라는 별명의 사이키 경정을 매력적인 엘리트 캐릭터로 부각시키려고 하는 노력이 다분히 보여 유치했다. 늘 주인공 4인방과 대립하며 인정이 없고 엘리트 주의에 빠진 인물로 보이지만 실은 뒤에서 이들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라고 하는 전개. 지극히 드라마틱하다. 그리고 살인사건과 거대 건축기업의 비리를 둘러싼 피해자들의 서글픈 이야기가 굉장히 부각되고 있다. 주인공 4인방을 제외한 모두에게 열린 힌트가 피해자 내면의 시점에서 전부 제공되는 독특한 구조를 띠고 있다.  이런 면은 전작 『데드맨』에서도 그러했다. 피해자와 범인 시점의 글이 중간중간 들어가고. 사건을 바라보는 주인공들의 정의롭고 순수한 감정도 (손이 오그라들게) 계속 묘사되고 있었다. 『드래곤플라이』는 오락성으로 단단히 무장했고, 시리즈물의 매력을 갖추는 데 성공했다. 대신에 뭔가 뜨뜻미지근한 추리이야기가 남고 말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걸작선 - 러브크래프트 전집 특별판 러브크래프트 전집
클라크 애슈턴 스미스 지음, 정진영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러브 크래프트를 간신히 알거니와 그의 작품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동료라고 할 수 있는 클라크 애슈턴의 걸작선을 구입한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작용했다. 클라크의 걸작선이 러브 크래프트의 작품들보다 가독성이 좋다는 어느 독자의 평. 그리고 어쨌든 이 책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출간된 클라크 걸작선이라 기념이 될 거라는 점.  

책은 아베르와뉴 연작, 하이퍼보리아 연작, 조티크 연작, 포세이도스/지카프/화성 연작, SF & 호러 작품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조티크 연작 일부까지만 읽고 중간을 뭉텅 뛰어넘어 SF & 호러로 넘어간 건 순전히 취향의 문제 때문이었다.  

마법사 얘기나 고딕호러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아베르와뉴 연작이나 하이퍼보리아 연작도 지루하고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지나지 않았다. 같은 허무맹랑함에도 구미를 당기는 이야기가 있는데, 
내게 그건 '납득할 수준을 유지하면서도 설명되지 않는 호러'다. 어떤 그로테스크하고 잔인한 상황이 구사된다고 해도 그 배경에 '흑마법'이 있다면 호러와 미스터리는 다 설명되어 버리고 만다. 덕분에 무섭지도 않게 다가온다. 더군다나 아베르와뉴 연작의 일부 작품, 특히나 <일로르뉴의 거인>에서는 인물의 성격이나 감정은 '흑마법'이 행하는 위대한 주술을 묘사하는 데 가려져 도드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인가 명작 《프랑켄슈타인》을 읽으면서 느낀 지루한 감정보다도 더 지루한 감정이 느껴졌는데. 그래도 읽는 와중에 이로운 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노곤한 상태에서 스르르 잠에 빠질 수 있었다는 점이랄까.  그리고 분명 이 휴식은 애디슨이 안락의자에서 낮잠을 자는 동안 아이디어를 끄집어 냈던 것 처럼, 내게 도움이 되었어야만 했는데. 


러브 크래프트와 마찬가지로 괴상한 형상을 한 고대신들이 있는 세계를 상상해내고 방대한 서사시를 만들어냈다는 건 그냥 감탄하고 넘어갈 일일 뿐이었다. 북유럽 신화를 배경으로 한 많은 판타지 소설들에서 보기 힘든 그로테스크한 요소를 마법 이야기와 버무린 것도 의미있어 보인다. 그리고 그 많은 작품들이 겨우 몇 년 사이에 정력적으로 쓰여졌다는 점을 보면 두 가지 생각을 하게 된다. 천재였거나 비운의 열망가였거나. 혹은 둘 다.   
 
SF & 호러 연작 부분에 가서 보다 더 깊게 집중할 수 있었다. 불길이 이는 마법의 성이나 지상낙원 같으면서도 신비로운 마법 세계에 대한 묘사가 주를 이루는 게 아니라 다소 평범한 일상 생활 속의 기이함에 대해 논하기 시작했기 때문인 것 같다. 마멉이 등장하기는 했지만 화자의 입장에서 보면 앞 이야기들과 달리 '숭배해야 할 것'이 아니라  '긴가민가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기 때문에 도리어 몰입할 수 있었다. 
내가 '호러'라는 장르만 보고 클라크의 걸작선에서 기대했던 것이 너무 한정적이고 뻔한 현대식의 이야기에 지나치지 않았던 게 문제인 것 같다. 반대로 얘기하면 《클라크 애슈턴 걸작선》은 기대했던 것 보다 더 풍부하고 다양한 맥락의 상상력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여타 영상매체나 소설 작품들이 없었다면 《클라크 애슈턴 걸작선》을 읽는 동안 재미는 더 줄어들지 않았을까 싶다. 낯선 땅을 여행하는 젊은이들을 덮친 식인 식물이 등장하는 영화 《The Ruins》 는 <지하 무덤에서 나온 씨앗>을 읽는 데에 실감나는 상상력을 더해줬다. 영화 《프랑켄슈타인》의 흑백 이미지는 <일로르뉴의 거인>의 음산한 배경을 상상하게 하고. 《나니아 연대기》나 《겨울왕국》의 빙하는 <빙마>의 장면을 떠올리는 데 도움을 줬다.  <마법사의 귀환>은 영화 《도플갱어》나 아야츠지 유키토의 《재생》에 영감을 줬을지도 모르겠다. <지하 무덤에서 나온 씨앗>이 보여주는 플롯의 형태는 이토 준지의 《혈옥수》와도 비슷한데. 그쯤 생각했을 때 《클라크 애슈턴 걸작선》을 읽으면서 느낀 그 특유의 종결법을 인식하게 됐다. 
고군분투에도 불구하고 비극은 모든 것의 종말로 끝이 나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해가 떠오르는 식의 결말. 알지 못하는 불가사의한 일들이 어디에서나 언제서나 진행되고는, 우리에게 인식되지도 못하게 없어지고 만다는 가능성의 제시라고 (멋대로 해석) 해도 될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블러드차일드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마 류츠신의 《삼체》를 검색하면서 《블러드 차일드》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흑인 여성작가의 굴지의 작품으로 《블러드 차일드》가 소개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막상 읽어보진 못한채로 시간이 흘러갔었는데. 지난 주, 광화문 교보문고의 매대에서 이 책을 발견하고, 역시 무시하지 못할 소설이었구나 하고 다시 보게 되었다.  옥타비아가 흑인 여성 작가로서 갖는 아이덴티티나 그녀의 성공이 문학 세계에서 갖는 의미 등을 설명하기 위해 시간을 할애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그녀가 《블러드 차일드》 서문에서 이야기한 것 처럼 내 감상을 이야기하는 걸로 정리하려고 한다.  

 

내 친구가 SF 곤충 호러 영화 중 미믹(Mimic)을 강력 추천할 때 나는 벌레가 나오는 호러보다 더 호러스러운 것은 없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옥타비아가 자신은 딱히 SF작가인 것은 아니라고 하니, 〈블러드 차일드〉도 SF가 아니라고 해보자. 그리고 그녀가 주장하는 종족을 넘어선 사랑이야기라는 생각도 제쳐 놓고 보자면, 〈블러드 차일드〉는 내게는 호러 소설이나 마찬가지다. 시커멓고 거대한 벌레가 문명과 먹이사슬 최고 단계를 가로채고는 새로운 생존(생산) 라인을 개척해 인간을 이용하는 세상은 디스토피아나 다름없다. 호러 게임 스콘(Scorn)의 영상 속의 외계 괴생명체를 보면서 느끼는 혐오감과 비슷한 감정이 연상되었다. 〈블러드 차일드〉에는 다리가 여럿 달리고 키가 3m는 되는 곤충이 인간 가족을 사육(알을 먹인다)하는 틀릭이라는 종족의 트가토이라는 곤충이 나온다. 간(Gan)은 트가토이의 공간에서 함께 사는 인간이며, 형, 누나,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간은 태어날 때부터 트가토이에게 바쳐지도록 선택된 인간이다. 간은 언젠가 자기가 주어진 사명을 다 해야 할 것을 알고 있다. 어느 날, 이들의 집에 느닷없이 찾아온 한 남자는 거의 죽기 직전의 상태이다. 트가토이가 그 남자를 처리하는 과정을 보면서 간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이 어떤 것인지 그 실체를 처음으로 깨닫고 혐오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남자는 출산 중이었다. 자신의 파트너 틀릭이 몸 속에 깐 알의 유충들이 태어나려 하는 순간이었다. 트가토이의 처치가 늦었다면 유충들이 남자의 몸을 먹어치웠을 것이다. 이 벌레 놈들이 영리한 이유는 위험 부담이 높은 출산은 인간 남자가 주로 하게 하고, 인간 여자는 숙주인 남자 인간을 낳도록 길들이는 방식을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의 누나가 트가토이의 아이를 낳고 싶어 한다는 점을 보면 이러한 새로운 시스템이 진행된지도 꽤 되었을 걸로 생각하게 된다. 반면 간은 자신의 사명에 대해 교육을 받아왔음에도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한다. 분명 간이 소년이라는 점, 간이 결심을 하게 되기까지의 갈등이 그려진다는 점에서, 옥타비아의 말 처럼 〈블러드 차일드〉는 성장 소설이다. 형체 없는 여러 의문과 질문들을 생각나게 하는 새로운 환경을 설정한 것도 대단한데, 그 안에서 성장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두번째 이야기는 〈저녁과 아침의 밤〉이다. 이 이야기에선 자기 신체를 훼손하는 질병인 DGD 유전병을 갖는 사람들이 나온다. DGD 보유자들은 일반인보다 수명이 짧지만 보다 천재적인 능력들을 지니고 있다. 아스퍼거 증후군(자폐증상이 있는 사람에게서 천재적인 능력이 발현되는 증후군)에서 자폐 증상 대신 자기는 물론 남의 몸까지 찢는 증상이 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질환자들이 반사회적 증상을 갖고 있어서 사회에서 특별한 감시를 받고 격리되어야 하는 세상이 있다면 〈저녁과 아침의 밤〉과 같은 이야기가 되겠지. 이 이야기에서 DGD 보유자들은 나름대로 사회에 적응하고 소명을 다하며, 생존권과 부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 그 방식이 DGD 환자들로 하여금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자유를 빼앗기는 과정이 된다고 해도, 그것만 빼놓고 보자면 마치 축복인 것 처럼. 〈블러드 차일드〉와 마찬가지로 이 소설에서도 DGD 보유자가 자신의 사명(외부로 부터 강요된)을 깨닫고 선택의 기로에 선 모습을 볼 수 있다. 주인공의 선택이 결말 뒤로 남겨지게 되는 것만 빼고는. 주인공 린이 결국 자기 몸에서 나오는 신경 안정 페로몬을 이용해 DGD 환자들을 안정시키고 그들이 천재적 능력을 발휘해 사회에 기여하는 다양한 물품들을 창조해내도록 컨트롤하게 될 것임을 예상하게 된다. 나한테는 이 모든 게 어쩔 수 없이 '적응'해야만 하고 그걸 '좋은 것'으로 여기게 되어야만 하는 상황들로 다가온다. 여기에 어떤 도덕적인 질문들을 던져야 할지, 어떤 게 더 나은 사회의 모습인지에 대해 생각해 볼 상상력이 없다.  

 

그런 의미에선 〈특사〉가 좀 더 발전된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느껴진다. '새로운 변화'에 마주한 인간이 던지게 되는 저항감이 〈특사〉에서 나타난다. 〈특사〉에는 식물의 형태를 지닌 외계인의 침공에 지고 만 인류가 나온다. 처음 식물 외계인에게 납치되어 실험을 당한 인간들 중 일부가 이제 식물의 언어를 번역하고 인간들에게 전달하는 통역사들로 활동한다. 식물 외계인은 지하 광물을 캐내어 인간의 경제 세계에 침투했고, 이제 인간들의 '고용주'의 위치에 올라섰다. 먹고 살기 위해 식물에게 고용을 요구해야 하는 후보자 6명이 주인공인 통역사 노아에게 항의한다. 당신은 그 식물들이 당신에게 한 짓이 있는데도 그들을 위해서 노예 같이 일을 하는 것이냐고. 지극히 본능적인 감정에 충실한 저항감인데, 노아가 답한다. 잊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통역이고, 자신은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후보자들은 이 별을 침략한 자들의 노예가 되는 것이 억울하다고 항의하지만, 이미 노아는 인류가 패배했음을 알고 있다. 이 여자도 마찬가지로 '적응'해야만 했던 거다. 〈특사〉가 좀 더 발전된 이야기를 보여준다고 했는데 이건 후보자들이 어떤 더 높은 차원의 도덕절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후보자들의 질문은 정중지와 식의 이기적인 질문들이다. 노아를 데려다가 심문한 FBI 들의 모습은 오히려 더 잔인하고 치명적이다. 《삼체》에서 나왔던 '우주 사회학'의 관점을 적용해서 보자면, 노아와 같이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난 사람이 오히려 미래 우주 문명 속에서 살아남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까운 친척〉은 오랫동안 헤어진 채 살았던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기 위해 친척들과 다시 만난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자는 외삼촌과 대화하며 어머니와의 일을 이야기한다. 여자는 외삼촌에게 실은 당신이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안다고 고백한다. 이내 외삼촌은 여자에게 어머니가 왜 딸을 멀리했어야 했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끝난다. 어머니는 딸을 보면 자신이 부끄럽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딸을 가까이 할 수 없었다. 우울한 분위기 속에서 담담히 대화하는 두 사람의 말투 때문에 왠지 침착한 기분이 되는 이야기였다. 

 

〈말과 소리〉는 인간들끼리 구분을 짓고 폭력을 행사하는 이야기다. 권태와 자포자기한 상태가 만연한 사회의 이야기다. 어느 날 돌연 사람들은 언어, 말을 잃어버렸다. 어느 날 갑자기 인간의 어떤 기능이 상실된다면 인간은 야생동물 사회 속으로 한 발자국 물러서는 것일까. 그런 질문을 던지게 되는 이야기였다. 공공 버스 안에서 유혈 낭자한 폭력이 발생하고, 버스 뒷좌석에서 남녀는 시선을 아랑곳 않고 성교를 한다. 이 혼란스러운 사회의 모습은 《눈 먼 자들의 도시》에서 보여지는 것과 비슷하다. 말 못하는 사람들은 언어를 사용하는 고등 인간들에게 공포를 느꼈고, 그들을 죽이고 있다. 주인공 여자는 사실 교사였고, 아직도 말을 할 줄 안다는 것을 숨기고 있다. 여자는 길 거리 폭력 현장에서 아버지가 살해된 두 소년소녀 고아를 발견한다. 아이들이 말을 할 줄 안다는 걸 알게 된 여자는 가던 길을 멈추고 그들을 거두기로 한다. "나에게는 말을 해도 돼" 라고 하면서. 옥타비아는 실제로 어느 날 버스를 탔을 때 싸움 장면을 목격 했고, 그 때 본 것을 토대로 소설을 썼다고 했다. 일상 체험을 토대로 이런 문제적(?) 작품을 써낸 것을 보고 그녀의 필력을 알아차리게 된다.  

 

〈넘어감〉은 퇴폐한 생활 속에서 나쁜 남자의 유혹에 거듭 넘어가고 마는 여자의 이야기다. 술 냄새 자욱하고 답답한 이야기다. 가난한 여성들의 답답한 삶을 그려내고자 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마사의 책〉은 옥타비아가 생각하는 천국에 대한 이야기다. 어느 날 신은 작가 마사를 불러내 신의 능력을 부여받아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피할 수 없는 임무였다. 마사와 신의 대화 속에서 천국이란 게 뭔가 하는 자문 자답이 이어진다. 결국 마사는 인간이 자멸의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폭력성을 잠재워 줄 꿈을 꾸게 하는 게 좋겠다고 말하고, 신은 그렇게 하라고 한다. 사실 마사와 신의 대화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죄악 같은 걸 떠나서 더 인상 깊었던 것은 마지막 장면이었다. 마사는 신에게 자신이 여기 왔었다는 걸 잊게 해달라고 한다. 자신에게 막중한 임무가 있었단 것, 어쩌면 인간들에게 큰 해를 입히게 될 결정을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무섭다고 한다. 그래서 신은 마사가 다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 의식을 되찾으면 기억이 없어지게 한다. 마사가 정신을 차리고 꿈에서 깨어나는 순간 자신이 무엇을 그토록 잊고 싶어했는지 잊어버렸다고 말한다. 이 대목이 제일 무섭다. 우리가 깨어나면서 잊어버린 꿈 내용 중에 어떤 것들이 있는 건지도 무섭고. 어쩌면 태어나기 전, 의식이 있기 전, 마지막 기억이 있기 전에 어떤 경험이 있었는지도 생각해보면 무섭다. 옥타비아가 <저녁과 아침의 밤>의 후기에서 남긴 질문 그대로, "대체 우리는 무엇인가? 정말로, 무엇이란 말인가?".  

 

모든 SF들은 미지의 환경과 시스템을 그려놓는다.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마주한 인간들의 허둥지둥하는 모습 속에는 성장도 있고 호러도 있고 우정이나 희망도 있고 어떨 땐 해결되지 않는 비참함도 있다. 《삼체》에선 아직도 외계 문명과 맞설 인간에게 희망이 있다는 게 보여졌고.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에서는 생명 복제 기술을 악용하는 인간들에게서 비참함이 보인 것 같다. 《멋진 신세계》 는 말할 것도 없이 장엄하게 기계문명에 맞선다. 《블러드 차일드》에서는 비애나 호러, 성장들이 느껴진다. 많은 SF작품들이 각각 개성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는 게 즐겁다. 어쩌면 미스터리와 호러 작품을 지나 SF로 입문하게 된 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