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즈번드 시크릿
리안 모리아티 지음, 김소정 옮김 / 마시멜로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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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유에서인지 최근에 가족, 특히 배우자와의 갈등을 다룬 스릴러물을 연달아 읽고 있다. 길리언 플린의 <나를 찾아줘>부터 시작해서 진 한프 코렐리츠의 <진작 알았어야 할 일>, 그리고 리언 모리아티의 <허즈번드 시크릿>.  사실 <나를 찾아줘>를 필두로 이런 부류의 책들이 <나를 찾아줘>를 잇는 수작이라는 홍보 문구와 함께 국내에 소개된 탓도 없지 않은 것 같은데. 서구권에선 이런 '내 배우자의 은밀한 비밀과 배반'에 유난히 더 열광한단 말인가? 어찌보면 새로운 트렌디 소재인가? 예측해보건데, 살인마-형사 구도의 스릴러물은 식상하니까 의외의 인물들을 무대에 등장시켜 경악할 만한 일들을 벌여보자 이런 접근 아니었을까? 침대를 공유하는 사람이 스릴러물의 등장인물 같은 면모를 드러내고 내 가정에 불화를 가져오기 시작한다면? 그거 꽤 구미 당기는 소재로군. 

사실 트랜디라고 할 것도 없는 게. 영화, 드라마 많은 부분에서 부부의 스릴러는 많이 다루어져왔었다. 미국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영화 <Mr. & Mrs. Smith> 등등, 내가 몰라서 그렇지 아무튼 예전부터 많았다. 

<허즈번드 시크릿>에선 스릴러 소설에서 느낄 수 있는 반전이나 명쾌한 추리 요소들을 보기가 어렵다. 잔잔한가 하면 또 그렇지도 않다. 등장인물들이 오랜 결혼 생활을 하던 와중에 갑작스레 맞이하게 되는 일들과 거기서 느껴지는 실망, 분노, 욕지기, 권태 등등을 묘사하는 부분이 오히려 인상깊다. 오, 소설 읽는 결혼한 아내들의 속을 쿡쿡 찔러 감정 이입을 불러일으켜 내는 효과는 확실해 보인다. 남편이 나의 사촌과 바람이 난 여자, 남편이 친딸들에게 야릇한 시선을 보내는 것 같아 걱정되는 여자, 십몇년 전 딸을 살해 당한 여자 등등. 이런 불쾌한 요소들에 대처하는 아내들의 긴장감 넘치는 심리 묘사는 꽤나 흥미롭다.

단지, 분량은 상당히 길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는 걸까. 게다가 이 이야기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허즈번드와 그의 시크릿은 의외로 소설 중간에서 바로 밝혀져 버린다. 응? 그럼 남은 분량에서 대체 뭘 다루려고? 

뭘 다루냐면 아주 뻔한 우리네 인생의 가르침이다. 사필귀정, 인과응보. 죄를 지었으면 어떻게든 인생에서 벌을 받지 않겠는가 하는 자조적 해석을 하게 하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이 재미있는 건 '에필로그' 때문이다. 그런 식상한 인과응보 가르침만 준다면 이 책이 뭐가 즐거웠겠는가. 에필로그에서 작가가 인간의 인생과 운명을 서술하는 방식이 꽤나 흥미롭다. 우리 인생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린 알 수 없지만, 또 이미 일어나 버린 일이 아니었다면 인생은 또 지금과 다른 방향으로 갈 수 있었다는 점을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점이 재미있다. 게다가 그 개념을 인간이 자신의 인생에 대해 품고 있는 죄책감, 회의감, 애착 같은 것들이 오해와 착각 때문에 고착되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서술 방식이 매우 흥미롭다.

그러니 '에필로그'가 없었다면 이 책은 그럭저럭 하다못해 지루한 소설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긴장감 유발하는 소재들 때문에 꽤 무거운 마음이 되어가며 책을 읽었다만, 끝에 남는 것은 의외로 홀가분한 기분이다. 인생사 고민하면 뭐하니, 역시 감정 보다는 이성과 정보이지, 하는 매우 개인적인 고찰을 해보게 했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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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하인드 도어
B. A. 패리스 지음, 이수영 옮김 / 모모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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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란 막연히 결혼생활이 영원히 행복하리라는 꿈같은 희망을 품는 데에 약간의 망설임을 갖고 있다. 세월이 흘러 사람도 마음도 점차 변해가는 법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변화가 결혼식 당일에 일어나버린다면 그 배신감과 당혹감에 사람은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그 일례를 보여주는 것이 소설 <비하인드 도어>이다. 성공적 커리어, 배우 같은 외모, 심지어 자상하고 이타적인 성격을 가진 예비신랑 '잭'. 그가 결혼 첫날밤 본성을 드러내고, 예비신부였던 아내는 자신이 완전 사기 결혼을 하게 됐단 것을 깨닫게 된다. 

싸이코패스를 다루는 심리 스릴러 소설로서, 공포와 불안, 냉혹함 등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남편 이 보여주는 매니악한 취향들은 꽤 경악스럽고 자극적이다. 그 심리적 공포에 대응하는 아내 그레이스의 모습은 당혹, 공포, 불안의 소용돌이인데. 무기력하고 멍청하며 답답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 여자를 보고 있자면 '이게 공포 소설인가, 스릴러인가, 반격은 언제 일어날런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걱정마시라. 이 여자의 생존본능이 그녀를 어떻게 바꾸어가는지 쏠쏠한 재미를 지켜볼 수 있으며, 심지어 잭조차 그레이스의 진화를 즐기는 한편 당혹스러워하기도 하니까. 게다가 잭이 붙잡고 있던 그레이스의 아킬레스건이라 할 수 있는 약점이 오히려 그레이스를 회생시킬 수 있는 역량을 갖고 있을 수 있다면? 그레이스는 외칠 것이다. '복수는 나의 것.'

내가 믿었던 사람이 돌변하여 완전 딴사람의 모습을 보여주는 통에 혼란스러웠던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흥미진진할 수 있겠다. 싸이코패스의 '천재성'과 '반사회성'에 관심을 갖는 사람에게도 흥미로울 수 있겠다. 색채와 관련된 시각적 공포를 즐기는 사람들에게도 인상적일 수 있겠다. 아쉬운 점은 그레이스는 진화하는 데 비해 빌런이라 할 수 있는 잭은 초반의 돌변 말고는 큰 역량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점을 들 수 있겠다. 책의 분량이 그리 길지 않아 가볍게 읽을 수 있지만, 그런 만큼 '엄청난 것!' 을 기대했다간 실망할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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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작 알았어야 할 일
진 한프 코렐리츠 지음, 김선형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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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결혼은 행복한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모든 사람을 속이고 남 위에 군림하기 좋아하는 싸이코패스였음을, 남편이 사람을 살인하고 사라진 후에 차츰 추리해 나가는 이야기다. 어찌 그렇게 심리치료사인 그레이스가 눈이 멀 수 있는지. 모든 여자들에게 “우린 현명했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기 전에 알았어야 합니다.” 하고 충고하던 여자가, 꼴 좋게도 어떻게 이 모든 걸 모를 수 있었는지! 하고 비웃게 되는 것이 이 책의 관전 포인트. 그럼에도 주인공은 '그래도 살아가야지' 하는 의지를 태우는 것 외엔 선택할 것이 없는데, 그걸 보는 독자가 바랄 수 있는 것은 '내겐 이런 일이 안 생기면 좋겠다, 내 남편도 의심해봐야하나!' 하는 일종의 공포와 불안감 정도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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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어야 하는 밤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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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음의 주제들과 관련되거나 혹은 관련된 장면을 일부 보여주는 일련의 작품들을 다양하게 접해왔다. 
죽이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죽이고 살인 청부를 할 수 있는 살생부가 있다면? - 애니메이션 <지옥소녀>, <데스노트>. 
단 하루, 사람이 서로를 살해해도 되는 무법지대가 허락된다면? - 영화 <퍼지>. 
죽어야 하는 누군가가 온라인에 생중계 될 수 있다면? - 영화 <트랜스포머>. 
<내가 죽어야 하는 밤>은 이러한 상상의 요소들을 모두 조합한 소설이다. 독일 스릴러 소설 <눈알사냥꾼>의 저자 제바스티안 피체크가 쓴 책이다. 

주인공은 어느 날 딸의 사고, 입원 소식을 듣고. 사고의 이유를 추적하다가 '8N8' 이라고 하는 온라인 단체에 다다른다. 이 8N8은 일년에 단 하룻밤, 요청받은 사람들 중 제비를 뽑아 살해 당할 희생자를 고르고 이 희생자를 사냥하는 사람에게 막대한 포상금을 주는 국가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단체이다. 이 얼토당토한 단체에 접속하여 자신의 이름이 등록돼 있으며, 심지어 희생자로 뽑혔다는 것을 알게 된 주인공. 이제 주인공은 또 다른 희생자와 팀을 꾸려 지정시간이 끝날때까지 생존하고 8N8의 흑막을 찾아내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이야기나 등장인물의 분위기는 <눈알사냥꾼>에서 느껴지는 것들과 거의 비슷한데, 아마 그게 피체크 개인 특유의 묘사력일 것이다. <내가 죽어야 하는 밤>과 <눈알사냥꾼>은 히피와 마초가 콤비를 이루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흑막을 찾아나가는 구조의 측면에서큰 차이가 없다.

이 소설이 갖고 있는 묘미로 나는 세가지를 뽑겠다. 무법지대에 대중이 보이는 폭력성과 광기를 어떻게 묘사하고 연구주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살해당할 위험에 쳐했을 때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드라마틱한' 선택은 무엇인가? 등장인물이 한정된 소설 속에서 과연 흑막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여기에 대해선 아래에 스포일러와 함께 덧붙이겠다. 

소설을 다 읽고나면 이 책이 사실 대단할 것도 없는 요소와 기법들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만. 문학작품으로서의 기똥참은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이 책을 추천해야 한다면 무엇때문일까? 아마 온라인 게임이나 사냥 등 무언가의 활동을 통해 인간 본성의 폭력성을 숨겨야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탈출구를 제공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 아닐까. 그 뿐이다. 



-스포일러-
무법지대에 대중이 보이는 폭력성과 광기를 어떻게 묘사하고 연구주제로 삼을 수 있을 것인가?: 실제로 서브 주인공 아레추(또 하나의 제비뽑기 희생자)는 대중의 광기를 연구하기 위해 8N8 프로젝트를 가상으로 만들고 인터넷에 마치 '사실'인 것 처럼 유포했다. 대중의 광기를 연구주제로 삼는다라는 것을 소설의 주제로 삼는 게 독특하다면 독특하다. 

 자신이 살해당할 위험에 쳐했을 때 개인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드라마틱한' 선택은 무엇인가?: 죽은 척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기법은 그리 새롭지도 않다. 주인공 벤은 자신이 죽었다고 위장함으로써 대중의 광기에서 벗어나고, 사건을 꾸민 흑막의 악수로부터도 벗어나기를 꾀한다. 사실 주인공이 자살했다는 부분은 독자에게도 '진짜'인 것 처럼 서술되다가, 소설 맨 뒤에 가서 그가 이름을 바꾸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반전요소로 드러난다. 

등장인물이 한정된 소설 속에서 과연 흑막은 어떻게 등장할 것인가?: 이중인격의 활용은 새로운 인물을 등장시키지 않고도 흑막이 소설 속에 계속 등장하고 있도록 만든다. 서브 주인공 아레추 라는 여자가 바로 8N8을 만들어낸 흑막 '오즈'의 이중인격이다. 아레추는 오즈의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고, 오즈는 아레추를 알고 있다. 아레추는 실험을 구상하였고, 오즈는 실제로 컴퓨터 기술을 통해 이를 인터넷에 실현화시킨다. 아레추는 자신을 죽이려 하는 게 오즈라는 타인이라고 착각하지만, 실은 그 오즈는 자기 자신이다. 살인의 밤이 종료되고 난 후에 보호시설에 들어간 아레추는 여전히 오즈가 자신임을 알지 못하고, 이를 본 벤은 약간의 씁쓸함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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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있는 시간의 힘 - 기대를 현실로 바꾸는 혼자 있는 시간의 힘
사이토 다카시 지음, 장은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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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었을 때 충분히 저자에게 공감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은 똑같은 상황에 놓여져 보는 것이다. '혼자있는 시간'이 갖는 의미와 생산성을 고찰한 이 책은 마치 '유배지'에 다녀온 선비가 회상록을 만든 것과 같은 느낌이다. 이 이야기에 공감하기 위해서는 우리도 유배지에 가봐야한다. 그리고 그 유배 생활을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저자 사이토 다카시가 초반에 주장하는 내용 중 크게 공감한 것은 '의미없이 몰려다니며 시간을 죽이지 말라'는 메세지이다. 나 개인적으로도 'network'의 중요성 이란 명목으로 많은 사회 이벤트에 참여했지만 내 적성에 맞지도 않았고 의미도 없었던 때가 많았다. 그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일들이 가져다 줄 가치가 내게는 훨씬 더 크게 느껴졌다. 

몰려다니는 것을 떠나 아무튼 사회에서 고립된다는 것은 사람을 두렵게 한다. 유배 생활이 선비에게 내려지는 형벌로서 기능하는 것은 이러한 불안감이 자극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유배'는 그것을 당하는 사람이 유배 자체를 고통스러운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 이상 형벌로서 기능하지 않는다. 개인이 혼자 있는 시간은 폭발적인 에너지와 가능성을 갖는다. 

오버씽킹과 사색의 경계선을 구분할 수 있다면 혼자 있는 시간은 감수성과 교양을 키울 수 있는 생산적인 시간이 된다. 저자는 이러한 사색의 장점을 강조하고 사색이 부정적 에너지를 생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몸의 건강과 명상 등의 중요성도 강조한다. 

저자의 철학관 중에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누구나 특정한 시기와 조건에 놓여야만 느끼고 배울 수 있는 감정과 깨달음이 있다는 것이다. 홀로 있는 시간을 허투로 보내선 안되는 것이 그 이유이다. 많은 경험은 인생을 풍부하게 한다. 또한 내가 생각을 달리하게 된 것 중 하나는 저자가 말한 것 처럼 죽음은 삶의 한 과정일 뿐이지 도착점이 아니란 것이었다.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고 해서 허무주의에 빠져 매 시간을 허투로 보낼 것이 아니라, 한정된 생명이기에 더 알차고 풍부하게 태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때가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때란 것이다. 허무주의는 나에게 늘 따라다니는 부정적 에너지였다. 나는 답을 찾아 많이 자문을 했었다. 여전히 죽음을 하나의 과정으로만 인정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만 누군가가 그런 깨달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면 또 마음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 처럼 느껴진다. 

사실 기대하지 않고 읽은 책이었다. 책의 편집 형태도 내가 좋아하는 류가 아니었다. 하지만 기대 이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공감했다. 본문의 내용을 적어놓고 때때로 들여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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