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 권하는 사회 -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자기탐구 인문학 3
브레네 브라운 지음, 서현정 옮김 / 가나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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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여성 심리에 관한 책들이 여성 스트레스의 원인 중 하나로 낮은 자존감을 탓하며 그 책임을 개인에게 돌리는 경향이 있다면, 이 책은 수치심에 더 큰 초점을 맞춘다. 실제로는 낮은 자존감을 기질적으로 갖고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가해지는 압박과 기대감들이 여성 개인에게 수치심을 느끼게 하여 심리적 장애로 이어지게 한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천여명여의 여성들을 상담한 임상 경험을 바탕으로 이 책을 썼다. 초반에는 수치심이란 무엇인가를 다루며 후반에서는 이런 수치심 권하는 사회에서 자신감을 잃지 않고 당당하게 사는 나름의 비결을 논의한다.

저자에 의하면 흔히 수치심과 죄책감이 혼동되는데, 이 둘은 명백히 다른 감정이라 한다. 죄책감은 자신이 행한 행동에 초점을 두지만 수치심은 자기 자신에게 초점을 둔다. 또 수치심은 사회의 모순된 기대와 연관이 있다.

때때로 수치심을 느끼면 위기의식을 느껴 공격적인 태도를 보일 수 있게 된다. 대체로 많은 여성들이 자기 신념, 가치관의 비교나 평가를 위해 다른 여성에 대해 비판적인 태도를 보이는 경우가 많다. 예컨대 다른 여성의 육아, 불륜, 중독 문제에 대해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러한 원치않는 정체성을 강요당하고 비판 받는 것에 의해 분노와 수치심이 유발된다는 것이다.

이럴 때 내가 행동을 어떻게 바꾸더라도 남들이 나에 대해 갖는 생각은 절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것도 도움이 된다. 그들은 그저 비판의 내용만 바꿀 뿐, 비판을 멈추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에 수치심을 느끼는 것은 매우 승산없는 싸움이다.

저자는 수치심에서 회복하는 탄력성은 다음의 네 가지 방법을 통해 기를 수 있다고 한다: 1. 자신의 수치심 기전 파악하기, 2. 비판적 인식, 3. 도움주기, 4. 수치심 말하기. 수치심을 느꼈을 때 극복하기 위해선 타인에게 공감하고, 공감을 요청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즉, 수치심은 말로 표현해야 고충이 사라진다. 수치심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것을 건강히 표현할 수는 있다. 타인에게 수치심을 말하고 그들이 내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하길 바라는지 요청한다.

한편으로는 스스로에게 지나친 정체성을 강조 하는 것으로 인해 수치심이 유발되기도 한다. 이럴 때 왜 나는 스스로에게 어떤 특정 모습을 강요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왜 스스로 고정관념을 만들고 거기서 벗어나면 수치심이 촉발되는지 제3자의 입장에 선 것 처럼 관찰하는 것이다. 완벽증후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자신에게 주어진 고정관념이 올바른 것인지 비판적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좋다. 늘 완벽해야 한다면 그것은 늘 실패할 것이라는 반증이다. 실패 역시 성장의 과정으로 생각하면 좀 더 편안할 수 있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읽게 된 도서로, 굉장히 빨리 읽혔고, 지금은 장터에 내놓았다 (TM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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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떠나버려
아녜스 르디그 지음, 장소미 옮김 / 푸른숲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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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로미오는 사고로 큰 부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하여 절망적인 자신의 모습을 마주한다. 

그런 그에게 그래도 살아야 한다는 용기와 희망을 주는 성심성의껏 간호해주는 간호사 줄리엣이다. 

로미오는 자식 같이 돌봐 온 십대 동생 바네사의 임신 중절 수술까지 도와준 줄리엣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러나 로미오는 곧 재활 치료를 위해 다른 병원으로 옮겨가게 되고 둘은 편지로 연락하게 된다. 

이 무렵 줄리엣의 인생은 암울하다. 세상 비열하고 사악하기 그지 없는 남편에게 인격 모독 당하고 살면서도 시험관 아기를 가지려고 절망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미련할 정도로 그에게 꼼짝 못하다가 결국은 어렵게 가진 아이 조차도 자연 유산하고 줄리엣은 어린 시절의 고향으로 무작정 떠난다.

그리고 계속 줄리엣과 인연을 유지 하여, 병원에서 줄리엣을 봐주던 로미오는 줄리엣이 사라진 것을 알고 그녀를 찾아 떠난다.

바네사의 도움을 통해 로미오는 자신이 줄리엣을 사랑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미련하다고 하기엔 정말 경박한 표현이겠지만 읽는 내내 답답함과 괴로움을 자아내는 줄리엣의 모습에 고구마 몇십개는 먹은 듯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남편이 사악하고 폭력적이니 아내가 무력해지는 것은 거의 최면과도 같이 이루어지는 것이지만. 그렇게 되도록 몇번이고 인격 모독을 당하는데도 정신 차리고 자기 인생을 지켜내지 못한 줄리엣. 그 줄리엣이 드디어 각성(?)하고 그 악마에게서 벗어나기로 하는 데 까지 겪어야 했던 일이 '자연유산'인 것 처럼 소설을 묘사하고 있다. 줄리엣의 할머니나 로미오 조차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엔 다 의미가 있다' 이러면서 자연유산을 겪고 드디어 빠져나오게 된 줄리엣에게 안도감을 표시한다. 

이 무렵 내 머릿 속엔 계속 오래전부터 내 친구가 해오던 말이 떠올랐다. 

"지인지조."

지 인생 지가 조진다고..............

스릴러 와이프물 (소설 <나를 찾아줘> 같은)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이런 고구마를 읽으니 답답한 감도 있었지만. 

출판사 측에서는 '힐링 스토리'라고 하는 듯 하다. 아마 작가의 작품들이 힐링 계열인 듯 하다.

이전부터 느낀 건, 정말 나는 '힐링물'을 싫어한다는 점. 

우여곡절 끝에 결국 줄리엣과 로미오는 만나게 되고. 줄리엣은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온다.

바네사는 줄리엣의 간호사 동료인 연상남 기욤과 사귀고 있다. 소설 전체가 로미오, 줄리엣, 바네사 시점의 이야기로 진행이 되는데. 이 십대 바네사의 연애관이나 인생관을 서술하면서 줄리엣과는 달라질 인생을 연상 시키는 듯도 하다. 전체적인 흐름에서 보자면 바네사의 이야기는로미오에게 '자상한 오빠' 역할을 입혀 준다는 것 정도 말고는 있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다. 

안타깝게도 다 읽고 나서 큰 감동이나 여운, 충격.. 그 어느 것도 느끼지 못할.. 뻔했는데 끝에 울컥한 부분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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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디 러브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공경희 옮김 / 포레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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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몰에서 쇼핑을 마치고 나온 후 주차장에서 돌연 괴한에게 습격을 받고, 흐려져 가는 눈 앞에서 6살 아이가 납치 당하는 걸 막지 못한 주인공. 유괴범 대디러브는 납치한 아이 로비에게 '기드온'이란 이름을 지어주고 폭력과 애정을 번갈아 주는 '새아빠'가 된다. 기드온은 물리적 정신적 공포 속에서 자라나 매우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주인공의 남편은 성공한 방송인이었는데, 아이를 잃은 자책에 안팎으로 시달리는 아내를 보살펴야 한다.

스릴러적 요소는 강하지 않다. 경찰이나 부모가 유괴범을 추격하는 장면이나 혹은 아이의 탈출 작전이 면밀하게 그려지는 스토리가 아니다. 이야기는 네 인물의 가치관과 정신상태, 행동 양식을 묘사한다. 이 책의 흥미로운 특징들은 다음과 같다.

1. 유괴범은 대범하게 행동한다.

유괴범 대디러브는 아이를 감금해놓고 아무도 보지 못하게 하지 않는다. 그는 아이를 세뇌시키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모가 도주하여 나에게 위탁된 새아들'이라고 뻔뻔히 말하고 다닌다. 이 유괴범이 남들에게는 '설교자'라는 매우 대변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알려져 있는 것이 흥미롭다. 대디러브는 이런 이중생활을 통해 사람을 속이고 경찰을 기만하는 자신에게 우월감을 느낀다.

2. 아이의 심리 상태는 중반부 이후 묘사된다.

아이가 유괴된지 얼마 안되었을 때, 이 아이는 원초적 공포는 느낄지언정 논리적으로 자기의 상황을 사고하지 못한다. 대디러브가 아이를 초등학교에 보내고 나서 사회활동이 시작되고 지능이 성장함게 되는 때, 비로소 이때부터 아이의 심리 상태가 전지적 시점으로 묘사된다. 6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유괴범에게 학대를 당해왔으면서도 '버려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다는 모순적인 심리 상태가 독자에게 충격적으로 다가올 것이다.

3. 빼앗긴 시간은 돌아오는 걸까 의문을 갖게 된다.

학대로 인해 지적, 사회적 성장이 더딘 아이는 이후에 심리 치료를 통해 어느 수준까지 회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과연 아이는 이 엄청난 트라우마를 이기고 자기 인생을 사는 에너지를 가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 우리가 유괴라는 소재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도록 여운이 남는 작품이다.

4. 어른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유괴만이 아니라 어른들로부터 학대를 받은 아이를 둘러싼 수사와 치료는 어떤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걸까. 즉, 그 과정에서 부모, 주변 어른들로 부터 요구되는 것들은 어떤 것인가. 아이에게 가해질 정신적 부담을 없애고 원활히 과정을 진행시키기 위한 전문가들의 지식은 어떤 것들인가. 각종 범죄 사건 속 피해자들을 대하는 공권력의 적절치 않은 처리 과정들을 매체에서 심심치 않게 접할 때 마다 열불나는 유족 및 관계자들의 상황은 언젠가 우리 각자의 것이 되지 않으리란 보장도 없다. 이런 사후 처리 과정에 국민 심신건강이 걸려 있는 것일진데. 그런 점에서 이 책이 단순 공포 소설이 아니라 시사하는 바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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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
피터 스완슨 지음, 노진선 옮김 / 푸른숲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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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미국에서 가장 까다로운 서평그룹의 극찬>을 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지는 이유는 도대체가 요새의 책들은 다 하나같이 같은 스토리라인, 캐릭터성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요새의 책들은 '강한 여자' 캐릭터를 강조한다. 그리고 그 여성들에게서 보여지는 모습은 '구세대에 대한 반란', '억압된 자아의 표출'을 암시하고 있다는 것이라 느껴진다. 이건 시대상의 반영이기도 하겠다. 과거 70-80년대 문학작품과 영화 속에서 여자 캐릭터는 살인마에게 저항도 못 하고 비명 지르며 도망치다 비명횡사 하는 이미지로 그려져왔는데, 요새의 이야기 속에선 '남자보다 더 현명하고 촉이 좋아 비상한 생존 능력을 보이며, 심지어는 스스로가 살인마가 될 수도 있는' 강한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 내가 '또 이 구도로군' 하고 생각한 한가지는 여자가 적극적으로 외도를 펼치며 가책을 느끼지 않는단 점이다. 파울로 코엘료의 <불륜>이 그랬다. 중년의 여주인공이 결혼 생활의 권태감을 자기 인생의 허무함으로 연결 시켰고 '여자로서의 매력'을 실감하게 하는 외도에 빠져들었었다. <나를 찾아줘>에서는 행복한 결혼 생활을 위해 자기 본연의 모습을 숨기고 현모양처의 삶을 살아 온 여주인공이 남편의 외도를 발견하고 싸이코패스적 본성을 드러낸다. <죽여 마땅한 사람들>에서도 '난 이 남자와 평생 함께 살 수 없단 것을 깨달았다' 하고 남편에게 권태감을 느낀 여자가 나온다. 이전의 작품들 중에도 <마담 보바리> 같이 여성 심리의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던 작품은 있었다만 그 수가 적어 '명작'들 중에서도 '독특한 주제'로 여겨진다. 반면에 최근의 <나를 찾아줘>, <허즈번드 시크릿> 등등은 다 어떠한가. 이젠 이것들이 모여 하나의 장르가 되어도 좋을 것만 같다. 그렇게 되면 더더욱 새로운 것을 시도하기도, 주목을 받기도, 영감을 주기도 만만치 않아질테지만, 이미 그 현상이 진행중이라고 본다. 

아무튼 그래서 이 책이 여타 다른 유사한 작품들과 다른 점은 대체 무언가. 싸이코패스, 부부관계, 외도, 살인, 형사추리, 기만, 비밀 등등이 이 책의 소재라면. 열린 결말이 신선한가 하면 그것도 이전 스릴러 소설들이 반전 스토리를 주무기로 사용했던 것에 비해 새로운 트렌드라고 하겠지만, 이젠 또 너무 많은 소설들에서 보이는 수법이다. 내게 이 소설이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남주인공과 여주인공이 우연히 비행기에서 만나 이상한 방향으로 이야기가 전개된 점이다. 바로, 여주인공이 비상식적인 아이디어를 은근하면서도 거부하기 어려운 형태로 제안하여 남자가 그것을 자책없이 받아들이게 했다는 점이다. "(바람 핀) 아내를 죽이고 싶어요?"  그리고 남자가 대화를 하며 '그래, 죽이고 싶을 만큼 배신감 느꼈지. 하지만 그게 가당한 일인가? 아니 잠깐, 그것들은 죽어 마땅하지 않은가?' 하고 느끼는 것에서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얼마나 된다고? 다른 사람조차도 자연스럽게 살인 계획을 세우도록 만든 싸이코패스 여주인공이 인상적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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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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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로 국내에서 유명세를 얻고 있던 파울로 코엘료의 신간 <불륜>이 출간되었던 2014년. 지인 중 하나가 "연금술사 때문에 영혼의 스승으로 존경할만 하다 했는데, 불륜을 소재로 책을 쓰다니 실망이에요." 라고 개인적 인상을 내게 말했던 게 기억난다. 무슨 소리야, 작가가 네 구미에 맞는 착하고 아름다운 소재로만 책을 써야 한단 거야?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당시엔 <연금술사>조차 읽어 보지도 않았던 나였기 때문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그러곤 그 후 <연금술사>를 읽을 기회가 있었고. 한참 지나, 올해 들어서야 <불륜>을 읽게 된다. 최근 가족과 부부를 소재로 한 책들을 연달아 읽는 중이라 <불륜>도 그 흐름을 타고 내 서재에 들어왔는데.

안 쓰니만 못한 책이었다고 감히 느껴본다.
1) 인생의 갈피를 못 잡고 우울증에 빠진 중년 여성의 심리증상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 증상에 대처하는 여주인공이 너무 극적이라 촌극을 보는 것 같다.
2) 불륜, 진정한 사랑, 권태기, 부부생활, 가족의 의미.... 이런 것들을 아우르고 쓴 글이 이렇게 식상할 수가 있나.


유부녀이자 커리어우먼으로 나름대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인정하는 여주인공. 그러나 그런 상태에 들어서면 고개를 드는 인생의 허망함과 권태감이 그녀로 하여금 '불륜'에 영혼을 불사르게 하는데, 그녀의 불륜 상대가 지적하는 것 처럼 그녀는 마치 '십대 상태'에 정신이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여주인공은 십대 때 잠시 썸을 탔던 남자와 만나 불륜을 저지르지만, 그 남자에게 계속 거부를 당하자 복수를 꾀한다. 

"나는 새로 태어났다저절로는 내게 오지 않을 상대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유부남인 그는 잘못된 작은 행동 하나가 자신의 경력을망칠 거라고 믿고 있다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그의 결혼을 망가뜨리는 것에그는 알지 못하게."
 
"나를 거부하는 남자에게 그런 문자들을 보내는 것은 시간과 돈의 낭비다나는 더이상 그의 행복에 관심이 없다사실 그가 정말로 불행했으면 한다나는 나의 가장 멋진 부분을 내주었는데 그는 내게 결혼생활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자신이  모든 일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있다고 생각했을까그것은 내가  자신에 대해서 품고 있는 의문이자내가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이런 의문들 자체가 어리다기 보다, 그런 것들에 정신이 휩쓸려 분노와 격정을 보이는 모습이 어려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 분노 때문에 마치 흥미진진한 스릴러물이 진행될 것만 같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신은 가질 수 없는 내연남을 가진 그 아내의 경력을 말살 시켜 버리려는 것.

그러나 스릴러 느낌은 중간에 절단 당하고 만다. 여주인공이 내연남과 우연히 부부동반 식사를 하다가 내연남의 아내가 자신들을 의심하고 있단 것을 깨닫고 복수 계획이 중단된 것이다. 여자의 내연남을 향한 분노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제는 저 혼자 진화심리학적 이론까지 생각하며 자신을 처참히 바라본다. 

"남자들이 외도를 하는 것은 그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특성이다. 여자의 경우는 자존감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게다가 여자는 자신의 몸뿐 아니라 결국은 마음 한구석까지 내주고 만다. 진정한 범죄다."

이 여자의 이런 생각과 캐릭터성은 그녀를 어리숙하고 순진한 십대 소녀처럼 느끼게 한다. 이런 여자가 주인공으로서 이루어낼 성장이 과연 하나의 소설로 탄생할 만큼 의미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야말로 프라이드만 높아서 소설 등장인물들을 까고 내리기만 바쁜 독자인가.

크게 상심한 여주인공은 돌팔이 주술사를 찾아가 자기의 우울증 상태를 해결 해보고자 하는데. 이 주술사의 입을 통해 옮겨진 '남자가 여자보다 더 불륜을 잘 저지르는가', '왜 여자는 그럼 덜 저지르는가' 하는 (논란이 있을) 주제에 대한 일견은 더더욱 식상하다. 주술사가 자기 합리화를 한다.
 
"결론은 남자나 여자나 바람피우고 싶은 욕구는 똑같다는 거였어요단지 여자들이 자제를  잘한다 뿐이지정서적 개입 없이 오직 성적 충동을 해소하기 위해 남자들이 행하는 짧은 접촉은종의 보존과 확산을 가능하게 했어요똑똑한 여자라면 그걸로 남자들을 탓하면  됩니다남자들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저항이 힘든 존재들입니다내가 너무 이론적으로 얘기하고 있나요종에 대한 남자들의 책무는 길어봐야 십일 분간 지속되는 반면 여자들에게는 아이 하나가 최소한 아홉 달의 임신 기간을 의미해요돌보고 먹이고거미나 뱀을 비롯한 위험에서 보호하는 일은 차치하고 말이죠그래서 여자들의 본능은 다르게 발전했습니다애정과 자제력이  중요하게  거죠." 

주술사가 말하는 것의 (학술적)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이런 '누구라도 할 수 있을 법한 주장', 또는 '데이트 지침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주장'을 소설 안에서 '불륜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논하려 사용하고 있다는 게 실망스러웠다.




그 부부 동반 식사로 인해 남편은 주인공의 외도사실을 알게 되고 말지만, 남편은 다그치지 않고 모르는 척 넘어가며 오히려 자신의 무한한 사랑을 아내에게 표현해준다. 이에 여자는 갑자기 마치 큰것을 깨달은 듯 정신을 차린다.

"십대였다면 당신과 함께할  있었을 모든 것을 꿈꾸며 지냈어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절망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더는 내려갈 곳이 없다는  깨달았지.그래서 위를 쳐다보았더니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고 있는 거야바로 남편이었어그이도 알고 있었던  분명해하지만 사랑이  강했던 거야 정직하게 모든 것을 말하고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는데그럴 필요가 없었어그이는 내가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항상  곁에 있어주리라는  알게 해주었고그래서  짐도 가벼워졌어."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를 얻기 위해 내가 어디까지   있었는지 그가  필요는 없다 열정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불꽃은 날이 갈수록 약해진다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꺼질 것이다이별은 모두 고통스러운   구석구석 고통이 느껴진다우리가 단둘이 만나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별은 모두 고통스러운 법? 이게 문학 작품인가, 인터넷 삼류 팬픽인가. 일부러 캐릭터성을 이렇게 촌극 같이 부각시킨 건가? 

"야코프를 침대로 끌어들이겠다는 꿈을 성사시키고 나자구름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현실로 추락한 느낌이다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저 한순간의 매혹당장이라도 사라질 감정임을 깨달은 것이다또한  감정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다모험도일탈의 쾌락도새로운 성적 경험과 즐거움도 이미 모두 누렸기 때문이다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뉘우침도 없다반듯하게 살아온   세월 끝에 마땅히 받을 만한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는 것뿐이다."
 
마땅하게 받을 선물이라고? 그 외도를 시작하고 내연남의 진심을 얻지 못해 나락에 빠져 울고 불고 우울증을 앓던 때를 잊었나, 이젠 뉘우침이 없고, 외도를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 여자, 짜증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네. 

이 상태가 되고 나서 여자는 이제 자기 인생, 결혼 생활도 돌아본다. 이 여자가 결혼을 바라보는 방식 또한 진저리 날만큼 '흔하디 흔한' 감상이다. 
"정말로 전염성이 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누군가를 찾지 못하게   같은 끊임없는 두려움.  두려움을 이유로 우리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있어서, 부적당한 사람을 받아들이고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이 우리 삶에 보내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어버린다." 독자의 공감은 얻을 수 있겠지. 근데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못 찾겠다.
  
아내와 나름 (재시작) 여행을 떠나, 인터라켄에서 남편이 다음과 같이 술에 취해 자조적으로 자기 인생을 돌아 보는 장면이 그나마 이 소설에서 얻을 메세지를 보여준다. 불륜을 정당화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이 인생에 생기지 않으리란 것도 아니다만. 다음과 같은 기혼자의 자조는 적어도 '가족'을 만든다는 것이 개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각해 볼 계기를 미리 제공하지 않는가? 

 여행을 시작한  잘못이야내일 돌아가고 싶어의도는 좋았지우리가  처음 사랑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보고 싶었어하지만 그게 가능할까턱없는 소리이제 우린 나이가 들었잖아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압박 속에서 살고 있어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교육의료식생활 등을 책임져야 주말을 재미있게 보내려고 애쓰는 것도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런거잖아밖에 나가기 싫은 생각이 들면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생각하게 되고하지만 아이들은 어쩔 거야애들은 뭔가 다른 것을 원하잖아집안에 처박혀 컴퓨터나 붙들고 있으라고 놔둘 수는 없어그러기엔 아이들이 너무 어려그래서 억지로라도 데리고 나가고우리 부모가 우리와 했던 것들우리 조부모가 우리 부모와 했던 것들을 그대로 하는 거야. ‘평범한’ 삶이지우리는 정서적으로 끈끈한 가족이야우리  하나가 도움이 필요하면 나머지  사람이 무엇이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엔딩에서 여자는 남편의 부추김에 충동적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데. 겁먹었던 것도 잠시, 하늘에 뜨자 대자연의 무한한 웅장함에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여기서 느낄 법한 감정은 원래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지만서도 그걸 받아들이는 여자의 언어와 몸짓은 얼마나 식상하고 유치한지..... 그리고 그 패러글라이딩을 헌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나게 하는 의식적 장치로 만들고 있는 식상한 소설 구도에 실망한다...  다 읽고나서 이렇게까지 좋은 점을 되짚어 보기 어려운 작품이 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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