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야산 스님.초롱불 노래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53
이즈미 교카 지음, 임태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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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안 되는 이즈미 교카 소설 번역본 중 하나, 고야산스님, 초롱불노래. 두 작품 중에서 고야산 스님은 이즈미 작품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작품성이 최고인 작품이다. 초롱불노래는 일본의 연극 '()'를 보는 듯 리듬감을 살린 예술적인 작품이다.

 

고야산 스님에서 주인공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스님과 한 숙소에 묵으면서 스님의 과거 이야기를 듣는다. 스님은 젊은 시절 행각승일 때에 산 속 한 집에서 하룻밤 묵는데, 그 집 여자의 농염한 아름다움에 매료된다. 다음날 집을 떠난 스님이 스님 되기를 포기하고 여성에게 돌아갈까 하던 참 어젯밤 그 집에서 마주친 노인을 마을에서 다시 만난다. 노인은 산속 집 여자가 남자를 말로 둔갑시키는 요술을 부리며, 어젯밤 그 집에 묶여 있던 말은 먼저 산에 들어간 약장수였다고 고백한다 .

 

초롱불 노래는 유랑하는 정체불명의 두 노인의 등장으로 시작된다. 두 노인은 한 여관에 들어가 게이샤 오미에를 부른다. 한 편에선 떠돌이 악사 기다하치가 우동 가게에 들어가 가게 주인과 안마사에게 과거를 고백한다. 각각의 등장인물의 대사에서 그들의 정체가 각기 밝혀지기 때문에 독자는 이들의 연관성에 대해 차차 알게 된다. 두 노인과 기다하치의 이야기가 교대로 이어지다가 클라이막스에서 기다하치와 두 노인의 장면이 합쳐지며 소름 돋는 장면을 연출한다.온치와 기다하치가 합창하는 장면에서 기다하치의 애환과 온치의 그리움 등이 합쳐져 전율을 느끼게 한다.

 

이즈미의 소설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여성상이 빠지지 않고 언급된다.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읜 탓에, 그의 작품 속 여성에게선 모성이 묻어난다. 고야산 스님에 나오는 마녀는 모성을 보여주는 한 편 남자를 말로 둔갑시키는 마성을 보여주는 것이 특징이다. 초롱불에서는 이런 마력을 보여주는 여성은 등장하지 않지만, '관음력'에 대한 묘사가 있는데, 이즈미가 '관음력'을 추구하고자 했다는 것도 유명한 사실이다.

 

이즈미는 시대에 '역행'하는 문학가였다. 메이지 유신 이후 문학계에 근대의 바람이 불어, 서양 스타일이 들어오고 자연주의가 대두할 때에. 이즈미는 도리어 일본의 옛 문화와 민간전승에 상상력을 보태어 독창적인 문학 스타일을 고수했다. 역자에 의하면 당대에 호평을 받지 못했던 이즈미 교카의 문학이 오늘 날 일본에서 두터운 팬층을 쌓게 된 건 과학, 물질만능주의에 지친 사람들이 옛 것에 대한 추억과 애정을 쫓기 때문이라 한다.

 

내용만이 아니라 문체와 기법도 흥미롭다. 두 소설 모두 이야기가 짤막한 편을 이루고 있는데, 편수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시도들이 보인다. 장면 서술에서는 먼 시선으로 줌 업해 잡아 올리는 영화적 기법이 적용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쌍따옴표로 대화체를 시작할 때 미리 괄호를 넣어 누구 대사인지 표시하기도 한다. 또 소설 속 3인칭 화자가 돌연 독자에게 말을 걸기도 한다. 문체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시기에 쓰여진 소설이라 문장 읽는 재미가 있었다.

 

이즈미의 매력은 괴담을 아름답게 만든다는 데 있다. 일본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는 이즈미 교카지만, 한국에선 아직 많은 작품을 보지 못하고 있는데. 이즈미 교카 번역서가 더 출간되어 많은 사람들이 즐길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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