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파울로 코엘료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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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술사>로 국내에서 유명세를 얻고 있던 파울로 코엘료의 신간 <불륜>이 출간되었던 2014년. 지인 중 하나가 "연금술사 때문에 영혼의 스승으로 존경할만 하다 했는데, 불륜을 소재로 책을 쓰다니 실망이에요." 라고 개인적 인상을 내게 말했던 게 기억난다. 무슨 소리야, 작가가 네 구미에 맞는 착하고 아름다운 소재로만 책을 써야 한단 거야? 지금은 이렇게 생각하지만, 당시엔 <연금술사>조차 읽어 보지도 않았던 나였기 때문에 아무 답변도 하지 않았다.

그러곤 그 후 <연금술사>를 읽을 기회가 있었고. 한참 지나, 올해 들어서야 <불륜>을 읽게 된다. 최근 가족과 부부를 소재로 한 책들을 연달아 읽는 중이라 <불륜>도 그 흐름을 타고 내 서재에 들어왔는데.

안 쓰니만 못한 책이었다고 감히 느껴본다.
1) 인생의 갈피를 못 잡고 우울증에 빠진 중년 여성의 심리증상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이 증상에 대처하는 여주인공이 너무 극적이라 촌극을 보는 것 같다.
2) 불륜, 진정한 사랑, 권태기, 부부생활, 가족의 의미.... 이런 것들을 아우르고 쓴 글이 이렇게 식상할 수가 있나.


유부녀이자 커리어우먼으로 나름대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고 인정하는 여주인공. 그러나 그런 상태에 들어서면 고개를 드는 인생의 허망함과 권태감이 그녀로 하여금 '불륜'에 영혼을 불사르게 하는데, 그녀의 불륜 상대가 지적하는 것 처럼 그녀는 마치 '십대 상태'에 정신이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여주인공은 십대 때 잠시 썸을 탔던 남자와 만나 불륜을 저지르지만, 그 남자에게 계속 거부를 당하자 복수를 꾀한다. 

"나는 새로 태어났다저절로는 내게 오지 않을 상대를 얻기 위해 애쓰고 있다유부남인 그는 잘못된 작은 행동 하나가 자신의 경력을망칠 거라고 믿고 있다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집중해야 할까그의 결혼을 망가뜨리는 것에그는 알지 못하게."
 
"나를 거부하는 남자에게 그런 문자들을 보내는 것은 시간과 돈의 낭비다나는 더이상 그의 행복에 관심이 없다사실 그가 정말로 불행했으면 한다나는 나의 가장 멋진 부분을 내주었는데 그는 내게 결혼생활 상담을 받아보라고 했다." 

"자신이  모든 일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될  있다고 생각했을까그것은 내가  자신에 대해서 품고 있는 의문이자내가지금 겪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기도 하다."


여주인공을 괴롭히는 이런 의문들 자체가 어리다기 보다, 그런 것들에 정신이 휩쓸려 분노와 격정을 보이는 모습이 어려 보인다고 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 분노 때문에 마치 흥미진진한 스릴러물이 진행될 것만 같이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신은 가질 수 없는 내연남을 가진 그 아내의 경력을 말살 시켜 버리려는 것.

그러나 스릴러 느낌은 중간에 절단 당하고 만다. 여주인공이 내연남과 우연히 부부동반 식사를 하다가 내연남의 아내가 자신들을 의심하고 있단 것을 깨닫고 복수 계획이 중단된 것이다. 여자의 내연남을 향한 분노는 줄어들지 않는다. 이제는 저 혼자 진화심리학적 이론까지 생각하며 자신을 처참히 바라본다. 

"남자들이 외도를 하는 것은 그들의 유전자에 새겨진 특성이다. 여자의 경우는 자존감이 부족해서일 것이다. 게다가 여자는 자신의 몸뿐 아니라 결국은 마음 한구석까지 내주고 만다. 진정한 범죄다."

이 여자의 이런 생각과 캐릭터성은 그녀를 어리숙하고 순진한 십대 소녀처럼 느끼게 한다. 이런 여자가 주인공으로서 이루어낼 성장이 과연 하나의 소설로 탄생할 만큼 의미있는 것일까. 아니면 나야말로 프라이드만 높아서 소설 등장인물들을 까고 내리기만 바쁜 독자인가.

크게 상심한 여주인공은 돌팔이 주술사를 찾아가 자기의 우울증 상태를 해결 해보고자 하는데. 이 주술사의 입을 통해 옮겨진 '남자가 여자보다 더 불륜을 잘 저지르는가', '왜 여자는 그럼 덜 저지르는가' 하는 (논란이 있을) 주제에 대한 일견은 더더욱 식상하다. 주술사가 자기 합리화를 한다.
 
"결론은 남자나 여자나 바람피우고 싶은 욕구는 똑같다는 거였어요단지 여자들이 자제를  잘한다 뿐이지정서적 개입 없이 오직 성적 충동을 해소하기 위해 남자들이 행하는 짧은 접촉은종의 보존과 확산을 가능하게 했어요똑똑한 여자라면 그걸로 남자들을 탓하면  됩니다남자들도 그러지 않으려고 노력하지만 생물학적으로 저항이 힘든 존재들입니다내가 너무 이론적으로 얘기하고 있나요종에 대한 남자들의 책무는 길어봐야 십일 분간 지속되는 반면 여자들에게는 아이 하나가 최소한 아홉 달의 임신 기간을 의미해요돌보고 먹이고거미나 뱀을 비롯한 위험에서 보호하는 일은 차치하고 말이죠그래서 여자들의 본능은 다르게 발전했습니다애정과 자제력이  중요하게  거죠." 

주술사가 말하는 것의 (학술적) 진위 여부를 떠나서, 이런 '누구라도 할 수 있을 법한 주장', 또는 '데이트 지침서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주장'을 소설 안에서 '불륜의 의미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논하려 사용하고 있다는 게 실망스러웠다.




그 부부 동반 식사로 인해 남편은 주인공의 외도사실을 알게 되고 말지만, 남편은 다그치지 않고 모르는 척 넘어가며 오히려 자신의 무한한 사랑을 아내에게 표현해준다. 이에 여자는 갑자기 마치 큰것을 깨달은 듯 정신을 차린다.

"십대였다면 당신과 함께할  있었을 모든 것을 꿈꾸며 지냈어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절망의 한계에 도달했다는 더는 내려갈 곳이 없다는  깨달았지.그래서 위를 쳐다보았더니 누군가 내게 손을 내밀고 있는 거야바로 남편이었어그이도 알고 있었던  분명해하지만 사랑이  강했던 거야 정직하게 모든 것을 말하고 마음의 짐을 덜고 싶었는데그럴 필요가 없었어그이는 내가 삶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든 항상  곁에 있어주리라는  알게 해주었고그래서  짐도 가벼워졌어." 

"열렬히 사랑하는 남자를 얻기 위해 내가 어디까지   있었는지 그가  필요는 없다 열정은 아직도 남아 있지만 불꽃은 날이 갈수록 약해진다그리고 언젠가는 완전히 꺼질 것이다이별은 모두 고통스러운   구석구석 고통이 느껴진다우리가 단둘이 만나는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별은 모두 고통스러운 법? 이게 문학 작품인가, 인터넷 삼류 팬픽인가. 일부러 캐릭터성을 이렇게 촌극 같이 부각시킨 건가? 

"야코프를 침대로 끌어들이겠다는 꿈을 성사시키고 나자구름 위로 떠올랐다가 다시 현실로 추락한 느낌이다나는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저 한순간의 매혹당장이라도 사라질 감정임을 깨달은 것이다또한  감정을 유지해야겠다는 생각도 전혀 없다모험도일탈의 쾌락도새로운 성적 경험과 즐거움도 이미 모두 누렸기 때문이다그리고  모든 것에 대해   뉘우침도 없다반듯하게 살아온   세월 끝에 마땅히 받을 만한 선물을 스스로에게 주고 있는 것뿐이다."
 
마땅하게 받을 선물이라고? 그 외도를 시작하고 내연남의 진심을 얻지 못해 나락에 빠져 울고 불고 우울증을 앓던 때를 잊었나, 이젠 뉘우침이 없고, 외도를 선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 여자, 짜증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네. 

이 상태가 되고 나서 여자는 이제 자기 인생, 결혼 생활도 돌아본다. 이 여자가 결혼을 바라보는 방식 또한 진저리 날만큼 '흔하디 흔한' 감상이다. 
"정말로 전염성이 있는 것은 두려움이다. 생의 마지막까지 함께할 누군가를 찾지 못하게   같은 끊임없는 두려움.  두려움을 이유로 우리는 무슨 일이든 저지를  있어서, 부적당한 사람을 받아들이고는  사람이야말로 하느님이 우리 삶에 보내준 유일한 사람이라고 믿어버린다." 독자의 공감은 얻을 수 있겠지. 근데 문학작품으로서의 가치는 못 찾겠다.
  
아내와 나름 (재시작) 여행을 떠나, 인터라켄에서 남편이 다음과 같이 술에 취해 자조적으로 자기 인생을 돌아 보는 장면이 그나마 이 소설에서 얻을 메세지를 보여준다. 불륜을 정당화 하자는 것도 아니고 그런 일이 인생에 생기지 않으리란 것도 아니다만. 다음과 같은 기혼자의 자조는 적어도 '가족'을 만든다는 것이 개인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생각해 볼 계기를 미리 제공하지 않는가? 

 여행을 시작한  잘못이야내일 돌아가고 싶어의도는 좋았지우리가  처음 사랑하던 그때로 다시 돌아가보고 싶었어하지만 그게 가능할까턱없는 소리이제 우린 나이가 들었잖아예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압박 속에서 살고 있어가족을 위해 돈을 벌어야 하고교육의료식생활 등을 책임져야 주말을 재미있게 보내려고 애쓰는 것도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런거잖아밖에 나가기 싫은 생각이 들면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있는 건가 생각하게 되고하지만 아이들은 어쩔 거야애들은 뭔가 다른 것을 원하잖아집안에 처박혀 컴퓨터나 붙들고 있으라고 놔둘 수는 없어그러기엔 아이들이 너무 어려그래서 억지로라도 데리고 나가고우리 부모가 우리와 했던 것들우리 조부모가 우리 부모와 했던 것들을 그대로 하는 거야. ‘평범한’ 삶이지우리는 정서적으로 끈끈한 가족이야우리  하나가 도움이 필요하면 나머지  사람이 무엇이든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엔딩에서 여자는 남편의 부추김에 충동적으로 패러글라이딩을 하는데. 겁먹었던 것도 잠시, 하늘에 뜨자 대자연의 무한한 웅장함에 가슴이 무너져내린다. 여기서 느낄 법한 감정은 원래도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이지만서도 그걸 받아들이는 여자의 언어와 몸짓은 얼마나 식상하고 유치한지..... 그리고 그 패러글라이딩을 헌 껍질을 벗고 새로 태어나게 하는 의식적 장치로 만들고 있는 식상한 소설 구도에 실망한다...  다 읽고나서 이렇게까지 좋은 점을 되짚어 보기 어려운 작품이 있었던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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