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장파트리크 망셰트 지음, 박나리 옮김 / 은행나무 / 202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나이정도 되면.. 느와르 장르를 이야기할때 홍콩영화 영웅본색이나 철협쌍웅, 무간도를 가장 먼저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느와르라는 장르에 빠져들면서 대부나 택시드라이버,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루트가 아니라할지라도 대부분 한번 느와르라는 장르를 알게 되면 그 매력에 푹 빠지게 되는데요. 느와르는 하나의 장르라고 단정지어 말할 수 없는 것이 영국의 고딕,추리문학이 프랑스에서 유행하면서 프랑스어로 이를 로망 누아르(검은소설) 라고 프랑스 평론가들이 부른데서 기원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엄연히 말하면 하드보일드의 하위 개념으로 볼 수 있는데요. 하드보일드의 비정하고 냉혹함을 가득 담은 폭력적인 스토리에 감정을 배재한 냉혹한 어투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는 점이 매우 흡사합니다. 통상적인 도덕적 관념을 초월하기 때문에 더 잔혹하게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웨스트코스트 블루스]는 프랑스 누아르의 혁신, 범죄문학의 대가인 장파트리크 망셰트의 최고 걸작이라고 일컫는 작품입니다. 도입부터 등장인물에 대해 백과사전처럼 감정을 배제하고 세세하게 설명하지만 중간중간 인물의 섬뜩한 밑낯을 보여주면서 평범한 인물설명일 수도 있는 부분을 소름끼치게 만드는데요. 주인공인 조르주가 그림으로 그린듯한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다면 다른 주인공이자 죽임을 당하는 자 또한 판에 박은 듯한 악인입니다. 소설 속에서 조르주의 삶은 완벽하게 괜찮은 상류층의 삶으로 그려지지만 그의 삶이 마냥 완벽하지만은 않다는 뉘앙스를 살짝 살짝 풍기는데요. 사고가 난 사람을 도와주고도 그 자리에서 자취를 감춘 것, 가족동반 모임에서의 불안한 모습,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돌아온 후에 보인 그의 행적들은 문명사회에서 법의 안전망 안에서 살았던 사람이라고 보기에는 아이러니했습니다. 잠잠한 그의 삶에 돌멩이를 던진 건 알론소였지만 돌멩이를 맞고 피를 흘리면서도 병원이나 경찰서에 가지 않은건 그의 선택이므로 사실 조르주 또한 피해자라고 하기도 애매한 일입니다. 하지만 그를 보면서 폭력에 폭력으로 대응하는 건 인간의 본능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폭력적이고 잔인한 묘사들에 놀랐지만 가장 놀랐던 것 중의 하나는 제르포가 친구인 리에타르를 만나서 대화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정말 우리 주변에 있을만한 이웃인 리에타르와 조르주의 일상적인 대화, 그리고 웨스트코스트 블루스 음악과 거기에 끼어든 권총. 리에타르의 과거도 놀라웠지만 평범한 이야기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권총을 건네주는 모습이.. 총기를 허용하지 않는 나라에 살고 있어서 그런지 놀라웠습니다. 웨스트코스트 블루스를 함께 듣고 둘이 헤어지면서 [당신의 젊음은 사라졌고 당신의 사랑 또한 그러하다]라는 가사를 흥얼거리는 조르쥬는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길을 왔다는 걸 자신도 모르게 눈치채고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이전의 지위와 가족이 있는 보통의 삶으로 돌아갈 수는 있지만 이제 젊고 사랑이 넘치던 열정이 넘치는 순수한 사람이 아니라 벗겨낼 수 없는 때가 묻은 사람이란걸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