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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새의 이름을 아는 슬픈 너 ㅣ 위픽
문보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1월
평점 :
은퇴 여행으로 포르투갈 한달살이를 떠난 경섭과 효진은 주함부르크 영사관으로부터 경섭의 이모인 고길자가 사망했다는 연락을 받는다. 길자는 22세에 고향 제주도를 떠나 독일에 정착한 인물로 자유롭고 단순하게, 원하는 대로 살아간다.
언젠가 연락이 안 되어 독일까지 찾아온 조카 부부에게 미안함이나 감동을 느끼기보다 그저 신기함과 재미로 기뻐하던 이모는 독일 자택의 욕실에서 쓰러진 지 2주만에 발견되었다는 비보로 돌아온다.
그저 각자의 것인 슬픔
소설은 이모의 사망 소식으로 시작되었지만 침울하지 않다. 단정하고 독립적인 고양이 같은 길자의 삶은 아쉬울 것도 없다는 듯 마무리된다. 마치 한 가지에 앉아 있다가 내킬 때면 가볍게 날아가 버리는 새처럼. 슬퍼하는 사람은 조카인 경섭이나 조카며느리 효진 혹은 독자인 우리일 뿐이다.
굳이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괜찮은 이야기, 있는 그대로 충분한 이야기
어쩐지 묘한 이모의 삶과 함께 끝난 소설 뒤에 수록된 〈문보영 작가 인터뷰〉를 읽으며 소설 내용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었는데, 편집자가 작가에게 던진 질문들이 큰 역할을 했다. 『일기시대』부터 시작해 작가의 에세이나 소설, 시집을 읽어왔던 나로서는 추상적인 문보영 화법이 익숙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항상 그 속에 담긴 이야기가 궁금했는데 편집자님이 구체적으로 질문을 던져 주신 덕분에 작가가 표현하고자 했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길자 씨는 왜 한국에 가고 싶었을지, 길자 씨에게도 한국은 '돌아가는' 곳이었을 지(81쪽)에 대한 대답(82쪽)이 기억에 남는다. 한국에 가고 싶다는 말은 길자가 뱉은 무수한 말 중 하나일 뿐이니 큰 무게를 지니지 않기를 바란다는 말 덕분에 길자가 어떤 인물인지 조금 더 명확해진다. 문보영 작가님의 에세이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에 나왔던 '방수 영혼'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남의 의견보다는 자신의 마음에 귀 기울였던 어떤 새의 영혼은 외부 물질을 흡수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방수 영혼을 지니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직관을 어떻게 타인에게 전달할 것인가? - P23
당시 이모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독일 사람 다 됐네, 였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경섭은 그 말이 조금 슬프게 들렸다. 이모는 제주를 떠나기 전에는 특이하고 유별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는데, 그 말이 독일 사람 다 됐네,로 대체된 것은 아닐까. - P30
그녀는 자신이 걱정되어 독일까지 날아온 조카 부부에게서 감동을 받는 사람이라기보다는 재미를 느끼는 사람이었으니까. - P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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