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수수께끼 > 금동반가사유상.....백제것인가? 신라것인가?

금동반가사유상....그 힘없는 미소를 머금은 금동반가사유상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합니다. 이런 반가사유상은 비슷한것이 우리 나라의 국립박물관에 2개, 그리고 일본의 국보 1호로 지정된 일본 고류지(廣隆寺)에 있는 목조반가사유상 등 현재까지 알려진것은 모두 3개 입니다. 그런데 3개의 반가사유상이 모두 제각각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먼저 유사한 형태이면서도 결코 같은것이 아니라는 점이며, 두번째는 3개 모두의 정확한 출처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문제는 양식적 특성으로도 유사한 형태의 불상이 나타나지 않는 관계로 다른 불상과 비견하여 결정하기 어려운 입장으로 문헌이나 출처를 근거로 하여 어느시대의 조성물인가를 판단해야 하지만 그 마저도 일관성이 없어 지금은 그저 삼국시대의 반가사유상이라고 명기하여 이 불상의 출처로 인한 갑론을박을 애써 피하고자 하고 있습니다.



 

 

 

 

 

 

 

 

 

 

 

 

 

 

 위의 사진은 국립박물관에 보관중인 국보 제 78호(좌)와 국보 제 83호(우)로 지정된 <미륵보살반가사유상>입니다. 좌측 불상의 높이는 83.2cm,우측 불상은 93.5cm로 우측 불상이 10cm가량 높이가 높습니다. 이 두개의 비슷한 반가사유상을 자세히 눈여겨 보신다면 똑같은것 같으면서도 매우 다름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이야기는 이 두 불상의 미술사학적 고찰과 아울러 출처에 관한 문헌과 관계자의 증언, 그리고 일본 국보 1호로 지정된 목조반가사유상에 관하여 각각의 특성을 설명하므로써 어느 시대의 불상으로 판단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의 나름대로의 기준을 설정하실 수 있도록 해 보겠습니다.

 과연 백제의 불상인가? 또는 관계자들의 증언에 의하여 신라불상으로 봐야 하는가? 일본의 불상을 일본인들은 비조시대의 불상으로 바득바득 우기고 있는데 과연 그들이 주장하듯 정말 일본 불상일까?  아니라면 우리의 두 개의 불상과 매우 비슷한 양식이어서 우리것인데 일본으로 건너갔던가, 또는 적어도 일본으로 건너간 우리 나라 사람이 제작한 것인가? 에 대한 고찰을 해 보는것도 바람직할것 같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우리와 일본 사이에 문화교류의 커다란 쟁점이 되고 있는 실정으로 아직도 결판이 나지 않은 상태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각각의 불상이 갖는 미적 감상기준은 어디에 있는가를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웃옷을 입은 단정한 불상과 웃옷도 훌러덩 벗어버린 불상....과연 이 불상은 어느시대의 불상일까요?  앞으로 2차례에 걸쳐서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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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수수께끼 > 알라딘 서재에 남긴글...모두 백업을 받아야 합니다.

 이번 제 서재가 사라지는 경우를 당하고나서 정말로 후회하는것은 제 서재에 관한 내용을 별도로 저장을 해 두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벌써 몇 시간을 이곳 저곳 뒤지고 다닙니다만, 어디에고 제가 잃어버린 자료들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알라딘에서 말하는대로 알라딘의 DB어디에고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가 봅니다. main서버이기에 너무 믿었던 이유가 백업을 해 두지 않은 이유의 하나이기는 했지만, 설마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었기에 막상 닥치고나니 별도로 백업을 해 두지 않은것이 뒤늦은 후회를 가져오는군요....

 백업 방법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 서재에 올린 자료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다면 자칫 복구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알라딘측에서도 최선을 다 하고 있는것으로 알고 있지만, 만약 다시 복구가 되지 않는다면 귀중한 자료는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번의 황당한 사태를 겪으면서....다른 알라디너에게 일어나지 않고 그나마 제게 이런 사태가 일어난것을 우선은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간략하게 전반적인 상황을 정리해보면

1. 알라딘 접속시 등록되지 않은 계정으로 나오면서 알라딘에 접근할수가 없었으며

2. 제 이메일을 확인하니 등록이 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3. 알라딘에 전화로 연락을 하니 바로 답변이 왔는데, 탈퇴회원으로 되어 있어 알라딘 접속이 불가능하니 재가입을 해 줄것을 요구하였고

4. 재가입후 확인결과 리뷰와 페이퍼는 다시 복구가 되었고, 그동안 계정에 입금되어 있던 알라딘의 각종 선물은 되살아나 있었습니다.

5. 그러나 보관함, 소장함, 마이리스트는 모두 빈 바구니였으며, 특히 제 서재를 찾아주시던 님들의 즐겨찾기에서도 사라져 버렸으며, 덩달아 님들의 서재에 남겼던 모든 글들도 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 알라딘측은 설령 탈퇴를 해도 자료는 DB에 다 남아 있는데 전혀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하는군요

5. 제 서재에는 그 동안 제 서재를 즐겨찾았던 분들의 수를 나타내는 숫자와 기타 알라딘에서의 각종 포인트가 다 사라졌고, 방문자 숫자 또한 모두 사라지고 새롭게 시작이 되었습니다.

 부탁을 드려야할 사항은 반드시 백업을 받아두실것과 더불어 그 동안 제 서재를 즐겨찾기 해 주신 님들께서 다시 한번 즐겨찾는 서재로 클릭을 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저도 여러분의 서재를 다시 즐겨찾는 서재로 설정하여 여러분의 리뷰와 페이퍼가 제 창에 뜨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유야 어떠하든 알라딘의 서재에서 이런 사태가 발생한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이번 사태를 단순한 일로 넘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또 다른 알라디너의 서재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사라지고 주옥같은 자료들이 사라진다면 이것은 돌이킬 수 없는 안타까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번 사태를 거울삼아 알라딘측에서도 다시 한번 알라딘의 정보보안 체계나 system을 정비하여 알라디너들의 자료를 보호하는데 최선을 다해 주실것을 부탁드립니다.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를 인지하신 알라디너께 걱정을 끼쳐드린점에 대하여 죄송함과 아울러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고맙습니다...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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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수수께끼 > 우리 나라 최초의 잡지 <少年> 창간호 표지


소년 창간호의 표지입니다.

스캐너를 사용하여 사진을 올립니다. 몇 군데 이 책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서 가장 적절한 곳에 기증을 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물론 무상기증이지요 ^^~

  내용도 모두 스캐닝을 하여 올리면 좋겠지만 우선은 그렇게 되면 책을 한번은 접어야 하기에 그냥 표지만 올립니다.

 "철썩~ 처얼썩~"으로 시작되는 최남선의 "海에게서 소년에게" 라는 시가 있는것이 목차에 보입니다. 특이한것은 이 시를 지은 저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것인데, 우리는 최남선의 시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눈에 거슬리는것은 "황태자 전하와 이등 태사"라는 제목의 사진인데 속의 사진 설명이 "일본에 御遊學 하옵시난 我황태자전하와 太師 伊藤博文公" 이라는 문구인데 우리 황태자의 스승이 이등박문이라는 사실을 소년 창간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한일합방 이후의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하는 사진이라 하겠습니다. 나중에 이 사진이 있는 면만 스캐닝 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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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수수께끼 > 이등박문은 우리 황태자의 스승이었다....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는데 왜? 지금까지 이런 내용이 공개적으로 거론이 되지 않았었는지 ....

나중에 조선총독부의 총독까지 오른 이등박문이 일본에 유학중인 우리 황태자의 스승이었다는 사실은 정말로 충격을 가져다 주기에 충분하였습니다.

내선일체를 위하여 일본에 볼모의 형식으로 유학을 갔던 우리 황태자의 모습은 비록 어린 황태자였지만 늠름한 모습으로 촬영에 임했던것 같습니다.

 <소년> 창간호의 맨 앞을 장식하고 있는 이 사진이 주는 의미는 육당 최남선이 우리 나라 최초의 잡지를 발간하면서 우리의 독립을 추구하는 권두언을 쓴것을 보면 결코 친일파는 아니었던것 같고, 이 사진을 게제한것은 황태자가 볼모로 유학을 갔으니 정신 차리자는 의미인것 같습니다.

                                                               <如        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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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수수께끼 > 우리 나라 최초의 잡지 <少年> 창간호 표지


소년 창간호의 표지입니다.

스캐너를 사용하여 사진을 올립니다. 몇 군데 이 책을 필요로 하는 곳이 있어서 가장 적절한 곳에 기증을 하려고 하는 중입니다. 물론 무상기증이지요 ^^~

  내용도 모두 스캐닝을 하여 올리면 좋겠지만 우선은 그렇게 되면 책을 한번은 접어야 하기에 그냥 표지만 올립니다.

 "철썩~ 처얼썩~"으로 시작되는 최남선의 "海에게서 소년에게" 라는 시가 있는것이 목차에 보입니다. 특이한것은 이 시를 지은 저자의 이름이 나오지 않는것인데, 우리는 최남선의 시로 배웠습니다.

 그런데 눈에 거슬리는것은 "황태자 전하와 이등 태사"라는 제목의 사진인데 속의 사진 설명이 "일본에 御遊學 하옵시난 我황태자전하와 太師 伊藤博文公" 이라는 문구인데 우리 황태자의 스승이 이등박문이라는 사실을 소년 창간호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한일합방 이후의 당시의 상황을 잘 설명하는 사진이라 하겠습니다. 나중에 이 사진이 있는 면만 스캐닝 해서 다시 올리겠습니다.

                                                                                           <如          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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