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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4 - 교토의 명소, 그들에겐 내력이 있고 우리에겐 사연이 있다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 가제본을 읽고 쓴 리뷰입니다.
유홍준의 일본편 답사기 마지막편이 나왔다. 규슈, 아스카 나라에 이어 교토까지, 총 4권으로 답사 여행의 마침표가 찍혔다. 개인적으로 유홍준의 답사여행기는 언제나 다음 권을 기다리게 만드는 시리즈이다.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나 문화재에 얽힌 인문학적인 설명이 곁들여진 이야기에 흥미를 느끼는 이라면 거의 모두가, 만만치 않은 두께에도 책을 덮을 수 없었던 설레임을 느꼈으리라 생각한다.
솔직히 제주도를 끝으로(후속 국내 답사기가 예정되어 있지만) 일본편 답사기가 나오자, 국내편이 늦춰진다는 약간의 서운함도 있었다. 하지만 색다른 기대감을 느낀 것도 사실이다. 일본 여행을 몇 번 하였지만 답사기에서 소개한 규슈나 아스카, 나라, 교토 등의 문화유적 지역은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책으로라도 낯선 문화와 문화재를 접할 수 있으리라는 흥분이 일었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여행을 하게 될 때 보다 깊이 있고 의미 있게 답사식 여행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 컸다.
개인적으로 역사와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은연 중 자부했지만, 유홍준의 일본 답사기를 읽으면서 일본의 역사와 인물에 대해 이토록 무지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비슷한 듯 헷갈리는 일본 지명이나 이름 등이 반복해서 나올 때는 생경함과 함께 당혹스럽기도 하였다. 국내편 보다는 확실히 읽는 속도가 떨어지고 집중을 요했다.
이번에 출간된 <교토의 명소>편은 일본의 마른 정원이 표지로 등장한다. 이전에 출간된 다른 일본편의 화려함과 화사한 색감 등과 확연히 대비되는 모습이다. 확실히 마지막편을 읽으면서는 표지의 느낌대로 차분해지고 정갈하게 일본 문화를 정리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정원으로 대표되는 일본인의 사상과 정신, 종교로서의 ‘선(禪)’이라는 테마가 돋보였다. 13세기 가마쿠라 막부에서 19세기 에도막부까지의 교토에 남겨진 사상으로서의 문화재가 어떠한 모습으로 자신들의 정신을 드러내는 지, 9곳의 절과 다도종가 2곳 그리고 정원 2곳을 소재로 풍성하게 이야기를 펼쳐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의 유홍준의 미덕 중 하나인, 각각의 절과 다도종가, 정원들을 답사하는 ‘순서’에도 역사와 배경에 따라 관람동선을 짜는 섬세함이 돋보였고, 문화재를 만나러 가는 길과 과정에 대한 조언 또한 빠뜨리지 않았다. 여행과 문화에 관심이 많은 이들치고 조용히 걸으며 주변을 조망하는 것에 매력을 느끼지 않는 이가 드물고, 이를 예리하게 간파하는 유홍준은 농담하는 듯 가볍게 소소하지만 소중한 감상을 전해주었다.
항상 감탄하는 것 중에, 그의 글솜씨도 있다. 특별히 문장가라고 손꼽지는 않아도 유홍준만이 가지고 있는 대중적인 글솜씨는 언제나 빛을 발한다. 건축과 역사 종교, 다도를 통해 일본의 역사가 흐르는 방향을 감지하며 그에 따른 사상의 변천 과정을 이렇게 맛깔나게 쉬운 말로 설명해 주는 것이, 흡사 유홍준 답사팀이 되어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이번 책도 역시나, 단순한 역사와 문화재를 나열하고 하나하나 절개해서 설명하는 것이 아닌, 일본미가 가지고 있는 패턴과 사상성을 머리속에 하나하나 집을 짓 듯 쌓아올려 주어 풍성함과 골격이 함께 저장된 느낌이었다. 극대와 극소가 공존하는 지은원, 선종과 차문화가 시작된 건인사, 왕가의 품위가 느껴지는 대각사, 몽창국사의 혼이 서린 천룡사와 방장정원, 북산문화가 태동한 상국사와 그 북산문화가 활짝 꽃핀 금각사, 엘리자베스 여왕이 방문하고 이 책의 표지가 되기도 한 용안사 석정, 동산문화를 보여주는 은각사, 철학의 길을 따라 가면 만나는 남선사, 고려불화인 수월관음도 외에도 수많은 뛰어난 회화작품을 보유하고 있는 대덕사, 어렵게 예약해서만 갈 수 있으며 서양의 건축가들이 극찬에 마지않았던 가쓰라 이궁과 수학원 이궁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만 17곳이라는 교토의 명소를, 각각의 건축에 얽힌 인물과 역사, 그리고 선종, 다도 등을 버무려 그들의 사상이 가닿는 작업은 단순한 답사 이상을 보여주었다고 생각한다.
사찰을 방문하다 보니 곳곳에 한국문화재가 심심치 않게 등장하기도 한다. 특히 불교가 융성했던 고려의 불화와 조선 초기의 회화 작품 등은 현재 우리나라에 남겨진 작품이 거의 없다보니 아쉬운 마음과 부러운 마음이 동시에 일기도 한다. 나라를 잃었고, 해방된 조국도 분단되어 어느 편도 들 수 없었던 재일조선인의 처지가 느껴졌던 고려미술관도 꼭 들려보고 싶은 장소가 되었다. 이국에서 느꼈던 고향의 사상과 문화를 지키려는 그들의 마음이 찬란한 교토의 일본 문화 속에서도 빛을 잃지 않았다는 아련함이 함께 했기 때문이다.
역시나, 다음 답사기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