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이 틀 시간은 지난 지 오래건만 창밖은 여전히 어슴푸레합니다. 여명은 두터운 먹구름의 윤곽으로나 확인할 수 있을 뿐이고 키 큰 나무들이 가지를 이리저리 흔들어대는 걸 보니 요란한 폭풍우라도 한차례 몰아칠 기세입니다. 밤을 새운 듯 퀭한 눈을 한 여자는 탁자에 앉아 띄엄띄엄 건성으로 콧노래를 부르며 인형에서 바늘을 빼냅니다. 그건 안에 새빨간 솜을 채운 검은 고양이 인형인데, 세 개째 꼬리를 막 붙인 참입니다. 창밖의 세상을 무심하게 일별한 여자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입술을 떼고 내내 흥얼거리던 멜로디에 느릿하게 가사를 싣습니다.찐짠 찌가찌가찐짠 찐짠찐짠 하더라.단편 셋과 에세이 하나를 엮는 트리플 시리즈로 나온 장아미 작가님의 <고양이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를 읽고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침대맡 협탁 위에 놓인 고양이 표지의 책을 보았을 때 제 머릿속엔 저런 장면이 떠올랐습니다.어딘가 쓸쓸하고 외롭지만 한숨 한 번이면 그럭저럭 털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얼핏 보면 폭신하고 귀여운 인형인데 깊이 들여다보면 뜨겁고 매혹적인 빨강으로 가득합니다.일 년에 한 번 겨우 만나는 친구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나지만, 안도감이 잦아들기도 전에 찾아오는 건 그와의 이별입니다. 흥겹고 시끌벅적한 생일잔치는 주인공만 덩그라니 남겨둔 채 끝이 나기 마련입니다.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위로하던 연인들은 세상의 편견에 치명상을 입습니다.세 편의 작품은 이렇게 상반된 심상들로 독자의 마음을 뒤흔듭니다. 아름다운 문장들은 우리를 따뜻하게 포옹하지만 이내 감췄던 손톱으로 등을 긁고 파헤칩니다.그래도 괜찮습니다. 세상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게 없지만 동시에 어느 하나 때문에 세상이 뒤집히지도 않습니다. 이야기는 계속됩니다. 노쇠한 신이 생을 다한 자리에는 어린 신이 태어날 것이며, 기다림이 이어지는 한 작별은 언제까지고 미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책에 수록된 심완선님의 해설이 너무 좋아서 (특히 <능금>의 감상은 이 해설까지 읽어야 완성된다고 생각합니다) 망설여졌지만, 부족하나마 제 나름의 감상을 남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