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는 소설 창비교육 테마 소설 시리즈
정지아 외 지음, 이제창 외 엮음 / 창비교육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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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 서포터즈로 활동하면서 좋은 작품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창비 테마소설 시리즈는 여러 작가들이 동일한 한가지 주제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보여주기 때문에 다채로운 문학적 즐거움이 있다.

각 테마별로 전달하는 메시지는 삶의 다양성을 확인할 수 있어 인생의 속도를 늦추고 세상을 풍요롭게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다음 시리즈는 어떤 주제를 가지고 어떤 이야기를 전해줄지 기대가 된다.


이번에 소개할 책『방황하는 소설』 은 '창비교육 테마소설 시리즈'의 열한 번째 작품으로 '방황'이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7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를 통해 알려진 '정지아'를 비롯하여 『밝은 밤』의 '최은영' ,『대도시의 사랑법』 의 '박상영' 등 역량 있는 작가들이 그들만의 방황을 그려낸다.


​『방황하는 소설』에 수록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 정지아 · 존재의 증명 /

/ 박상영 · 요즘 애들 /

/ 정소현 · 엔터 샌드맨 /

/ 김금희 · 월계동 옥주 /

/ 김지연 · 먼바다 쪽으로 /

/ 박민정 · 세실, 주희 /

/ 최은영 · 파종 /

7편의 소설 속에는 갑자기 발생한 기억상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청년들의 애환, 트라우마, 인간관계와 상실의 아픔 등 여러 세대를 아우르는 각기 다른 고민과 방황이 담겨있다.

『 존재의 증명 / 정지아 』


취향이 사람의 품격을 결정한다.

취향이 곧 사람의 본질인 것이다.기억은 사라져도 취향은 사라지지 않는다.

(중략)

그는 여전히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몰라도 상관없었다.

이 집의 공간을 채운 것들이 곧 그였다.

방황하는 소설 <존재의 증명> p.37

갑자기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남자.

주머니 속 지갑과 핸드폰, 심지어 지문으로도 남자의 존재를 증명할 수 없었다.

결국 주변 CCTV를 통해 남자의 발자취를 찾아가는데...

모든 기억이 사라져 버린 순간조차 나만의 고유한 취향은 문신처럼 내 몸 깊숙이 각인되어 있어 시시때때로 나란 존재를 드러낸다.

이름, 나이, 학벌, 직업 등 내게 달린 꼬리표들을 모두 벗겨냈을 때 나를 증명해 줄 수 있는 것이 과연 무엇일까?

『요즘 애들 / 박상영』


나도 모르게 누구에게도 공감받을 수 없을 종류의 눈물이 차오르는 날도 있었다.

나는 내 눈물의 방향을 정할 수 없어 가끔은 화가 났고 대개는 고독했다.

방황하는 소설 <요즘 애들> p88.

한 잡지사의 수습사원이었던 김남준과 황은채는 매거진 C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러나 그들의 사수인 배서정은 사사건건 트집을 잡으며 인간적인 모멸감을 주고 회사에서는 정직원 전환을 미끼로 그들의 열정은 착취한다.

매거진 C의 정직원이 되지 못한 김남준과 황은채는 8년 후 우연한 기회에 다시 마주하게 되고 배서정처럼 '요즘 애들'을 운운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놀라며 각성한다.


『엔터 샌드맨 / 정소현』


지수는 늘 무언가를 열심히 했지만 이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했다.이 세계는 자신이 꾸는 악몽의 세계이므로, 곧 깨어나 은하를 만날 거라는 생각을 여전히 하고 있다고 지훈에게 고백했다.

방황하는 소설 <엔터 샌드맨> p.112

폭발사고로 건물이 무너지면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지만 사고 현장에서 죽은 친구의 기억에 갇혀 사는 지수의 이야기 '엔터 샌드맨'

『월계동 옥주 / 김금희』


옥주는 여행하면서 많은 것들을 애도했다.

이제 식구들이 월계동에 다 같이 모일 날은 없고 자신의 스무 살 시절과 관련된 많은 이들도 떠나 버렸다는 것을.

잃어버린 사람들을 다른 사람으로 채울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비로소 상실은 견딜 만해졌다.

방황하는 소설 <월계동 옥주> p.158

관계 안에서 흔들리는 청춘의 방황을 그린 '월계동 옥주'


『 먼바다 쪽으로 / 김지연 』


종희는 현태가 낫지 않으리라는 것을 인정했다.

돌아보면 꾸준히 나빠지는 선택을 해 온 것 같았다.

방황하는 소설 <먼바다 쪽으로> p.112

누군가 자신을 죽일 거라는 망상에 갇힌 남자와 그런 남자로 인해 점점 지쳐가는 여자의 이야기 '먼바다 쪽으로'

『세실, 주희 / 박민정』


나도 너처럼,주희가 여행 내내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이었다.

J처럼 무람없이 외국 사람들과 어울려 보고 싶었고, 그들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체험해 보고 싶었다.

그 끝이 고작 포르노 영상이 되리라고는 주희는 예상하지 못했다.

방황하는 소설 <세실, 주희> p.224

주희는 한국에 온 일본인 세실과 함께 명동거리를 걷다가 우연히 일본군 성 노예제 피해자들을 위한 집회를 목격한다.

세실에게 소녀상의 진실에 대해 아무말도 해줄수 없던 주희는 그때 그림자처럼 자신의 마음에 남아있던 J와의 일을 떠올린다.

『 파종 / 최은영』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져도, 그 몸이 잿가루가 된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그 사람이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리라는 그 낙관이 부러웠다.

(중략)

오빠. 믿지는 않지만 그런 게 있다면······ 영혼이라는 게 있다면 여기 더는 머무르지 마.

그냥, 다 잊고 멀리 가 버려. 이쪽으로는 눈길도 돌리지마. 그녀는 울며 생각했다.

방황하는 소설 <파종> p.244~245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던 사람의 부재

그리고 그걸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모녀의 갈등과 화해의 과정을 그린 '파종'



7편이 단편 모두가 가볍지 않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에 홀린 듯 몰두하며 읽어 내려갔다.

방황과 고민이 나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 경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방황의 시간도 언젠가는 끝이 온다.

삶의 여정에서 어려움과 고난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라 성장과 배움의 기회가 되고 그런 과정을 통해 지금의 '나'가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싶다.

오늘도 삶의 방향을 찾아 방황하는 당신을 응원하며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방황하는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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