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 다시 읽고 싶은 명작 2
엔도 슈사쿠 지음, 김윤성 옮김 / 바오로딸(성바오로딸) / 2009년 1월
평점 :
품절


'다시 읽고 싶은 명작'



'당신의 기도하는 얼굴을 기도드릴 때 마다 생각하고, 당신이 축복하고 있는 얼굴을 고독할 때 떠올리고, 당신이 십자가를 지신 때의 얼굴을 붙잡힌 날에 되새기고, 그리고 그 얼굴은 정의 영혼 속에 깊이 새겨져,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가장 고귀한 것이 되어 저의 마음속에 살아 있습니다. 그것을 이제 저는 이 발로 밟으려고 합니다.'-p295~296


작년 이 책을 읽을 때는 처음부터 무겁게 짓눌리는 마음으로 끝까지.. 그런 마음으로 힘들게 읽어야만 했었다.

'침묵'
배교자인 기치지로의 침묵과 로드리고 신부가 찾았던 페레이라 신부의 나타나지 않은 그 침묵과 최종적으로는 하느님의 침묵까지..
기쁨과 환희와 희망을 이야기하는 책을 읽는 것 과는 매우 다르고 힘든 책읽기였다.

우리는 배교자는 이야기하지 않으려 한다.
순교자의 삶을 내 놓고 그들을 닮아가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는 생각에 감히 배교자는 말조차도 꺼리고 말고 죄인으로 단죄하며 내치기만을 한다.

배교자..
기억조차도 하지 않으려 하는 배교자.
순교자가 다 이룬 사람이라면 배교자는 멀리 해야 할 사람들일까? 배교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그들의 아픔에 귀 기울이고 눈 돌리는 작가의 섬세한 마음을 읽으며 과연 다 이룬 사람 하느님께 가까이 간 사람들을 우리의 잣대로 이렇게 이분법으로 갈라 놓을 수가 있는가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책이 바로 엔도슈사크의 '침묵'이다.

예수님의 얼굴이 그려진 성화판을 쉽게 밟아야만 했던, 그러면서도 눈물 흘리며 신부의 주변을 떠돌면서 결코 떠나지 않는, 기치지로의 모습을 보며 배반했기에 믿음을 버린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수가 있다.
그 한 순간 예수님의 얼굴을 밟았어도 마음안에 불타오르는 예수님의 사랑을 내치지 못하고 끌어안고 오열하며 죄를 고백하는 기치지로.
배교자라는 오명으로 살지만 예수님을 끝까지 죽을 때까지 순교자들보다도 더욱 사랑하며 살다간 배교자.

피흘리며 죽어간 순교자의 삶만이 예수님이 바라는 삶이었을까?
두 번째 읽으면서 나의 시선은 배교자인 기치지로를 바라 본다.
또 다른 읽기다.

이것을 '또 다른 이웃 사랑'으로 부르고 있다.
이웃,친구,벗,그리고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양들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삶을 배교자의 삶으로 살아간 또 다른 이웃사랑.


'배교자'를 단죄치 않는 예수님..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우리가 그들을 죄인으로 몰아가고 있다.
기치지로가 죽음으로 갈때까지 변방을 떠돌며,가슴을 치며,후회의 삶으로 고스란히 남은 생을 살아가는 것은 얼마나 큰 형벌인가?
본인 스스로가 그런 삶을 살아가며 자책하고 있으니 그의 삶을 예수님은 얼마나 가엾이 여기실 것인가?

스승이었던 페레이라의 배교를 믿지 않고 그를 찾아 일본으로 왔지만, 그대로 페레이라 스승이 걸었던 배교의 길을 걷는 로드리고 신부..

로드리고 신부는 그렇게 페레이아신부의 족적을 따라가며 예수님이 걸었던 고통의 길을 하나 하나 체험한다.
그 길에는 기치지로가 어느땐 유다처럼 그를 팔아 넘기기도하고,
수호천사가 되기도 한다.
기치지로를 경멸했던 시선은 기치지로를 점차 알게 되면서 예수님의 연민으로 바뀌면서 배교자 기치지로라기 보다 약한 심성의 어린양으로, 돌아온 아들의 비유속 그 회개한 아들로 받아들여 진다.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고 그러면서 모두를 이해 할 수 있게 되는 작은 기적이 기치지로라는 배교자를 통해 이루어진다.

배교자인 기치지로가 폭풍이 몰아치는 뱃머리에서 매달리며 기도한다. 고통의 순간에 ..성모마리아를 찾고 그런 그를 바라보는 로드리고 신부는 그와 똑같은 신앙이라는 것을 부인 해 보기까지 하면서, 그를 철저히 단절시키기도 한다.
우리의 모습도 이러하다.
같은 공동체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내 믿음은, 나의 주님은 저들과 같지 않다며 편가르기를 하고 있지 않은가?

로드리고 신부는 가끔씩 기치지로를 의심하며 믿지 않았음을 스스로 알게될 때, '주님께서는 자기의 운명을 언제든지, 어떠한 사람에게든지 맡기셨습니다. 그것은 그분이 인간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라며 사제로서 잃은 양을 품지 못하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기도 한다.

-그것은 하느님의 침묵입니다.
박해가 일어나 오늘까지 20년, 이 땅에 많은 신자들의 신음소리가 가득차고, 신부의 붉은 피가 흐르고, 교회의 탑이 무너져 가는데도, 하느님은 자기에게 바쳐진 너무나도 참혹한 희생을 앞에 두고도 여전히 침묵만 지키고 계십니다.- p94

모키치와 이치조의 순교.
그들을 삼킨 바다의 침묵..
그리고 하느님의 침묵..

어서 가자, 어서 가자.
천국의 궁전으로..

성가를 부르며 죽어간 그들을 보며
책을 읽지 못하고 또 덮고 또 덮고..
처음 이 책을 읽으며 나 또한 시선을 피하고 무거운 침묵이 나를 짓누르는 듯 했다. 하느님의 침묵 때문에? 어찌 할 수 없는 내 침묵..책읽기를 멈추게 하고 그속에서 빠져 나와 외면하는 나의 회피와 나의 침묵 이 죄스런..


자신이 경멸했던 기치지로처럼 겁먹고, 하느님이 안계시다는 상상까지 하게 되는 로드리고 신부.
가장 큰 죄가 하느님에 대한 절망감이란 것을 알면서도 하느님의 침묵앞에서는 그도 기치지로가 된다.

기치지로는 그의 체취로, 모닥불 흔적으로, 심지어 그의 그다운 표시 배설물까지 그렇게 침묵하지 않고 행동으로, 로드리고 신부에게 길을 알려 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이렇게 하느님의 침묵과 대조되는 배교자의 드러냄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기치지로는 또 말한다.
" 저는 그들처럼 강해질 수가 없는 걸 어찌합니까? 성화를 밟은 자에겐 또 그런대로 할 말이 있단 말입니다. 성화를 제가 좋아서 밟은 줄 아십니까?성화를 밟은 이 발은 아프고 쓰립니다.정말 못견디게 아프답니다. 저를 이렇게 약골로 태어나게 해놓고서 강한 자 훙내를 내라고 하느님께선 말씀하십니다." -p200

마치 유다처럼 로드리고 신부를 팔아넘긴 기치지로를 위해 고해성사는 의무로 해 주어도, 그를 위해 기도 할 수 없었던, 로드리고 신부는 유다를 위해 기도를 하고 용서를 한 예수님의 사랑을 떠올린다.
예수님은 유다 뿐 아니라 가파르나움의 하혈병 앓는 여인.그리고 사람들에게 돌로 얻어 맞는 창녀처럼 아름답지 않는 존재들 까지도 사랑하였음을 깨닫는다.

-매력 있는 것, 아름다운 것에 마음이 끌린다면 그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다. 빛이 바래 누더기가 다 된 인간과 인생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다.-p204

눈 앞에서 피흘리며 죽어가는 순교자
애꾸눈 농부는 하느님을 위해, 하느님 때문에, 죽어가는 데도 모른 척 하시는 하느님의 침묵에는 '견딜수가 없다'며 망연자실 하는 로드리고 신부..
그는 사람들을 위해 죽으려고 이 나라에 왔는데 사실은 이 나라 신자들이 자기를 위해 차례차례 죽어가는 것을 보는 것은 이미 무서운 형벌이 된다.

가르페신부처럼 그대로 바닷물속으로 순교자들과 함께 뛰어들어 순교를 하는게 차라리 덜 아프고 덜 힘든게 아닌가?

이제 그는 철저하게 배교자로 낙인 찍힌 페레이라 신부를 만난다.

배교자인 기치지로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본 순교자를, 그리고 침묵하고 있는 하느님을 지켜보면서 페레이라신부의 배교의 과정을 본인도 그대로 체험하게 된다.

하느님의 침묵에 다른길로 갈 수 밖에 없었던 페레이라 신부의 길을 알 수 있게끔..그런데 그길은 예수님이 가신 길..십자가 길이었다. 고통의 길을

가신 그 분의 여정을 그대로 가고 있다.

"뭐라고 말씀을 해 주십시오. 만약 저를 가엾이 여기신다면 뭐라고 말씀을 해주십시오." -p247

결국 페레이라의 침묵앞에 오열하는 로드리고 신부. 페레이라신부를 통해 '순교'에 대한 재 해석을 하며 다른 아픔을 알아간다. 당신을 모른다고 세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나를 사랑하느냐?'는 지극한 물음으로 회복하시어 감싸 안으셨던 예수님의 사랑. 죽음을 주러 오는 종교가 아니라 도움을 주는 배교자로 살아가고 있다는 페레이라를 예수님은 또 나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으로 감싸 안으실 것이다.

-침묵을 지키고는 있지만 다정한 눈으로 자기를 지켜보고 있다. 마치 그 얼굴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대가 괴로워하고 있을 때 나도 곁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끝까지 나는 그대 곁에 있겠다. -p278

그리스도는 배교했을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시키시더라도..

기치지로처럼..그가 혐오했던 기치지로처럼 그길을 로드리고 신부는 가고 있다.
밟아도 좋다. 밟아도 괜찮다.
너희들에게 짓밟히기 위해 나는 존재하고 있다.

예수님의 사랑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을 넘어서 있다.
우리는 배교자 순교자로 사랑을 나누지만 그분은 오히려 자신을 밟은 배교자의 아픈 발을 더 걱정하신다.
그들이 평생 주홍글씨처럼 가슴에 박히고 살 배교자의 삶을 더 안타까워 하신다.

처음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무거웠던 것은, 내가 더 기치지로일 수 밖에 없는 데 순교자의 삶을 강요하는 내안의 정직한 내가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번 두 번째 책읽기는 기치지로의 시선으로 변방을 떠돌면서도 가까이 다가가려는 나를 바라볼 수 있어서 불편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기치지로처럼 죄를 짓고 나서도 바로 바로 참회하며 고백을 하며 솔직하게 다가가는 신앙인의 모습..

주님, 제가 어느때고 주님을 떠나도 주님께선 침묵으로도 사랑해 주시고 저를 이끄시어 가까이 다가가게 하소서..
늘 함께 하시는 나의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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