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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의 임무
할 클레멘트 지음, 안정희 옮김 / 아작 / 2016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번 주말도 하드 SF 한 권으로 달렸다.
1. 높은 진입 장벽
: 한 50여페이지까지 읽을 때는, 때려 칠까 하는 고민을 잠시 했었다.
뭔 소린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덮었다가 목차 맨 끝에 저자의 해설이 있길래 그걸 읽고서야 어느 정도 이해를 했다.
알고보니 이 작품의 무대인 외계 행성의 설정이 독특했던 것이 주 이유였다.
그래서 다시 읽기 시작하여 결국 완독할 수 있었다.
2. 송편 모양의 행성.
: 원작에서는 팬 케이크 모양이라고 하는데, 설명을 읽다보면 주욱 늘린 송편 모양으로 이해하는 게 더 쉽다.
그런 모양이면 행성 중심부는 지구 중력의 700배.. 한마디로 모두가 짜부가 되는 곳이다.
당연히 거기에 사는 생명체는.. 항상 오체투지를 하고 지내야 한다. 직립 생물은 존재 불가.
즉.. 2차원의 세계다.
반면에, 행성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중력이 급감하여 인간도 우주복만 잘 갖추면 어느 정도 지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지구인과 만나는 지적 생명체는 30-40cm 정도의 작은 랍스터다..(-_-;)..
중력이 강하니 길이가 긴 생명체는 있을 수가 없다.
3.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고 바로 그 랍스터다.
직업은 선장. 배(여기서는 뗏목. 나중에 어엿한 범선 내지는 글라이더가 된다)를 몰고 행성 여기 저기를 다니며 무역을 하는 장삿꾼이다.
장사 수완이 좋은 만큼 매우매우 똑똑하다. 그리고 부하들도 똑똑하다.
4. 사건의 발단은: 지구에서 보낸 무인 탐사 로켓이 각종 장비와 정보를 실은 채로 그 행성에 조난된다. 이를 찾으러 온 지구인들과 랍스터들이 조우하고, 지구인들은 랍스터들에게 그 로켓의 인양을 부탁하게 된다. 랍스터 선장이 워낙 영리해서 지구인 언어를 금방 습득하고 의사 소통이 된 것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행성의 과학수준이 어마어마한 것은 아니다. 그냥.. 지구로 따지면 18세기 수준?
5. 중반부 부터는 본격 수색에 나서게 되는데, 지구인들은 여타 사정으로 직접 나서지 못하고 공중에 떠서 모니터 및 무선 연락을 랍스터들과 하게 된다.
즉, 후반부에서 본격 활약하는 주인공은 랍스터 선장과 그 부하들이다.
6. 그런데, 이 가재들이 진짜 신통방통하다. 온갖 고초와 모험을 겪는데 꿋꿋이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 진짜 똑똑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진입 장벽이 높았던 전반부에 비해 모험으로 가득찬 후반부는 페이지가 그냥 죽죽 넘어간다.
7. 진짜 이 가재들은 산전, 수전, 심지어는 진짜 공중전(설마 이것도 겪을 줄은 예상 못했다)까지 겪는다.
그런데, 이들 각종 모험들을 겪으면서 놀라울 정도로 학습을 해 나가며 지적으로 차곡차곡 업그레이드 된다.
8. 결국 로켓을 찾고 최종 작업을 하는 시점에서 랍스터 선장은 그동안 숨겨왔던 내심을 드러내며 지구인들과 최종 거래를 시작한다.
그것이 최종장 바로 전인 19장에서 랍스터 선장의 긴 대사로 나오는데, 그 대목이 진짜 대단하다.
장삿꾼이라 이윤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지적인 욕구와 장차 자기들 후손을 위한 과학지식의 전수를 논하는 대목 말이다.
사실 이 기나긴 대사는 실제로 고등학교 선생님인 저자가 대중들에게 과학 지식의 숙지와 전수의 중요성에 대해 힘주어 말해주고 싶었던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나니 SF 판 서유기를 읽은 느낌이다.
이런 작품이 1954년에 나왔다니 놀라울 뿐이다.
초반 50여페이지의 진입장벽이 문제인데, 일단 책 말미에 저자가 이 작품의 설정에 대해 직접 쓴 설명문을 숙지하고나서 읽기 시작하길 권한다.
저자의 상상만으로 팬케이크 행성을 만들고, 탄탄한 물리 및 천문학 지식으로 튼튼하게 만든 설정에 대해 독자들이 허점을 지적해 주길 바라고 있다.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이의 제기와 이에 이어지는 토론을 통해 뭔가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본능이 느껴진다.
인공적으로 별을 만든다면 바퀴 모양으로 뺑뺑 돌아가게 하여 원심력을 발생시켜서 중력으로 삼는다는 '링 월드'를 써서 MIT 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유도했던 래리 니븐과 궤를 같이 한다. 하드 SF 작가들은 다 이러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