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오길 교수의 산들에도 뭇 생명이…
권오길 지음 / 지성사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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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서를 내기 시작하면서 내 롤 모델로 삼고 있는 권오길 교수님의 최신작.

책 전반에 걸쳐서 여전히 대단한 필력이시다. 어디서 그렇게 모으셨는지, 상황과 주제에 따라 전문 용어뿐 아니라 예쁜 우리 말을 적절하게 구사하신다. 생물들을 기술하시면서 능청스럽게 드시는 비유들 하며, 슬쩍 슬쩍 인생의 진리를 행간에 숨겨 놓으시는 것 하며.. 

우화등선의 경지에 이르른 백발의 무림 고수를 대하는 느낌이다.

서문을 읽어보면 앞으로 책을 더 낼 날이 얼마 안 남았다며 초연하게 토로하시는 대목에서 괜히 마음이 아프다.

아닌게 아니라, 매 해 내시는 책들의 두께가 조금씩 얇아져가고 있는 것도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권오길 교수님, 일면식도 없지만 존경하고 흠모합니다.

오래오래 건강하게, 그리고 왕성하게 '원숭이들도 술술 읽을 수 있는' 좋은 책들 내 주세요.


이 책에서 배운 토막 지식들 몇 개:

*돌베어 (Dolbear)의 법칙

: 귀뚜라미가 14초동안 우는 횟수 더하기 40 하면 정확하게 그때의 화씨 온도가 나온다. 


*나비와 나방의 확실한 감별법

: 나비는 예쁘고 나방은 못 생기고가 아님. 나비는 앉을 때 날개를 살포시 접는 반면, 나방은 앉을 때 날개를 큰 대자로 좌악 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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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최종전쟁론 - 만주국을 세운 이시와라 간지의 망상이론
이시와라 간지 지음, 선정우 옮김, 홍성완 보론 / 길찾기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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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고 공명정대한 생각을 가지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 본성이 그렇게 생겨 먹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도의 차이는 있어도 누구나 어느 한 쪽에 기울어진 생각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이런 생각을 표출하게 되면 분명히 반박이 들어오고, 갈등이 생겨서 싸움이 일어난다.  그런 과정을 통해 자신이 처음에 품었던 생각의 초안은 점점 다듬어져서 오류가 줄어들고 객관성을 가지게 된다. 이게 소위 말하는 peer review 다.  Peer review 를 받지 않은 초안 그대로의 치우친 생각을 편견이라 부르며, 그것이 나름 체계를 갖추면 망상이 된다. 문제는 그 정도가 지나친 이가 peer review 라는 도전을 받지 않고(아예 차단하고) 추종자들을 거느리며 권력까지 갖게 되면 발생한다. 이쯤되면 그는 나쁜 놈 맞다. 왜냐하면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망상과 신념하에 사람 죽이는 것쯤 눈 하나 깜빡 안하고 해치우니까. 파시즘이 전형적인 예이다.  이시와라 간지는 도죠 히데키에게 반대했다는 이유만으로 용서될 수 있는 이가 아니다. 전쟁을 나라와 나라의 교류로만 보는 편협된 사고 방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만주사변에서 목숨을 잃었는가.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오독한 결과가 이렇게 무서운 파국을 몰고 왔다. 결국 미국과 일본이 세계 맹주를 두고 결승전을 한다는 중2병적인 망상을 설파했다는 점에서, 태평양 전쟁을 반대했을 뿐 근본적으로는 일본 군국주의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 책은 그의 잘 짜여진 망상을 감상해 보고, 오늘날 일본 우익들, 심지어는 우리나라 우익들이 왜 저런 식으로 사고를 하는지 원점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읽을 가치가 있다.

그리고, 강의록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재미있다.  원래 망상이란 것은 그 내용만을 즐겨보면 꽤 재미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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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보다 일기 - 서민 교수의 매일 30분, 글 쓰는 힘 밥보다
서민 지음 / 책밥상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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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rey J McDonnell 교수는 2016년도 싸이언스지 (Science 2016; 353(6300): 718) 에 'The 1-hour workday')라는 짧은 에세이를 하나 게재하였는데, 요약하자면 - 자기는 평소에 (특히 아침 일찍) 1시간을 비워놓고 매일매일 부지런히 무언가를 쓰곤 했으며, 그것이 활발하게 논문들을 쓰는 데 큰 힘이 되었다고 한다. 스티븐 킹은 노령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는 작가다.  그는 매일 규칙적인 생활로 자기 관리가 철저한데, 특히 오전에는 어떤 내용이건 좋으니 10페이지 정도의 글을 무조건 쓰곤 한다.  그래서 작품을 어쩌다 한 번 내놓는 작가들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비판한다.  사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라서 그의 매일 글 쓰기를 비록 10쪽은 아니라도 조금이나마 실천하려 애쓰고는 있다.  이번에 서민 교수의 '밥보다 일기'는 어쩌면 스티븐 킹 식의 글쓰기 자기 계발/관리와도 일맥상통한다.  생각해보니 이들은 다 이렇게 공통점이 있다.  아리랑 타령이라도 좋으니 무조건 매일매일 손 끝의 감각과 두뇌 회전을 유지하는 것이 이렇게 중요하다.  나는 펜과 종이보다는 주로 블로그나 SNS 에 주절주절 쓰고는 있는데, 이 책에서도 블로그 일기의 장점에 대하여 공감가는 권유를 하고 있어서 반가웠다.  역시 필력 함양은 꾸준히 해야 한다는 점에서 체력 훈련과 똑같다.


McDonnell 교수의 The 1-hour workday 전문: 

http://science.sciencemag.org/content/353/6300/718.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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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그러나 위험한 진단 - 미스터리 병마와 싸우는 의료현장과 진단의 모든 것
리사 샌더스 지음, 장성준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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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중후반, 그러니까 내가 레지던트 하던 시기였다.
1. 지금은 은퇴하신 Nephrologist 방 교수님께서 나와 회진을 도시던 중에 어느 만성 신부전 환자를 청진하다가 "아.. 지금 응급으로 혈액투석 돌리게!" 하고 말씀하셨다. 
"네?"
"들어 보게. pericardial friction rub 이 들리지 않는가?"
.. 아무리 애를 써도 내 귀에는 심장 청진음 외에는 들리지 않았다..[-_-;]
라운드 돌면서 friction rub 도 놓치고 뭐했느냐고 시니어들이 날 갈궜다만.. 
씨바.. 지들도 못 들었으면서..
2. 역시 지금 은퇴 생활을 즐기시는 cardiologist 최교수님께서 나와 회진을 도시던 중, 어느 환자의 심음을 청진하시더니, "음.. 지금 빨리 심초음파로 확인해 봅시다." 라고 하시네.
"네?"
"들어보세요. tumor plop 이 들리죠? 이게 바로 전형적인 심장점액종양입니다."
...안 들렸다.
그리고 심초음파 응급으로 해 보니 어머나!!! 정말 심장점액종양이었다.
3. 지금 하늘나라에서 안식을 취하시는 pulmonologist 변 교수님께서는 CT 나 기타 첨단 장비들을 별로 선호하지 않으셨다.
그냥 당신이 physical examination 을 하시고(청진기는 안 갖고 다니시며, 회진 때는 꼭 전공의들에게 빌려서 쓰셨다), 영상은 plain chest X-ray 만으로 충분히 진단을 내렸다.
그것도 정확하게. 심지어는 흉부 엑스선 사진을 보면서 세균 명까지도 종종 맞히셨다.
그래서 별명이 '변도사'였다.

확실히 21세기 이전의 내 이전세대 선배님들은 신체검진 내지 병력 청취, 그리고 추리 기술 면에서 우리 세대보다 몇 갑자는 더 고강한 내공을 가지고 계셨다.
그러나, 세대는 바뀌고, 기술은 발달해서, 위에 상술한 이러한 '전설'들은 더 이상 나오기 어렵다. 
아마 요즘 젊은 의사들은 위에 소개한 옛 이야기들을 뻥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책의 주제는 한마디로 진료에 있어서의 'Back to the basic' 이다.
아무리 첨단 장비를 동원해도, 진료라는 것은 결국 인간이 하는 것이기 때문에, 
가장 기본적인 병력청취와 deduction 능력, 그리고 신체 검사 능력에 소홀하면 안된다는 너무나 당연한 교훈을 주고 있다.

그러나.. 항상 유념해야 할 것은..
진료라는 것, 보다 범위를 좁혀서 진단을 한다는 것의 궁극적 목적은 결국은 환자를 이롭게 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첨단 기술을 사용하건, 아니면 옛 무림고수 같은 선배들을 모범 삼아 멋있게 맨손으로 진단을 하건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정확하게 잡아내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basic 한 것을 소홀히 해서는 안되겠지만, 
그 basic 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basic 이기때문에
detail 한 면에서는 첨단 기술을 이용한 진단의 정확도 보다는 반드시 열등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이 책을 읽고나서 첨단 기술이 악이고 basic skill 이 선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갖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요한다.

내가 항상 의대생이나 전공의들에게 강조하는 말이 있다.
"진단에 있어서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 한다."
신체 검사 기량이 전설적인 선배 의사들보다 딸려서 쪽팔려 하지 마라.
궁극적으로는 환자의 질병 원인을 정확하게 잡아내는 것이 목표이므로,
그 과정이 현란한 내공을 발휘하면서 멋있게 잡아내야 한다는 낭만과 착각에 얽매이지 말 것이며,
내가 기량이 모자란다면 '그래, 씨바. 나 개인기 모자란다. 어쩌라고? 하지만 첨단 기술이 있어! 그걸 이용할 거야!' 하는 배포를 가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질환의 진실에 바싹 다가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같이 벌어 정승처럼..

이 책은 의료인들이 읽으면서 다시금 기본을 다잡는 목적으로는 매우 훌륭한 책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낭만을 위해 정확도를 희생하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라고 말하면서도.. tumor plop 과 pericardial friction rub 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내시던 선배제현분들의 기량을 아직도 따라잡지 못하는 나 자신을 생각하면 여전히 열등감에 시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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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력의 임무
할 클레멘트 지음, 안정희 옮김 / 아작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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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도 하드 SF 한 권으로 달렸다.

1. 높은 진입 장벽
: 한 50여페이지까지 읽을 때는, 때려 칠까 하는 고민을 잠시 했었다.
뭔 소린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단 덮었다가 목차 맨 끝에 저자의 해설이 있길래 그걸 읽고서야 어느 정도 이해를 했다. 
알고보니 이 작품의 무대인 외계 행성의 설정이 독특했던 것이 주 이유였다.
그래서 다시 읽기 시작하여 결국 완독할 수 있었다.

2. 송편 모양의 행성.
: 원작에서는 팬 케이크 모양이라고 하는데, 설명을 읽다보면 주욱 늘린 송편 모양으로 이해하는 게 더 쉽다. 
그런 모양이면 행성 중심부는 지구 중력의 700배.. 한마디로 모두가 짜부가 되는 곳이다.
당연히 거기에 사는 생명체는.. 항상 오체투지를 하고 지내야 한다. 직립 생물은 존재 불가.
즉.. 2차원의 세계다.
반면에, 행성의 가장자리로 갈수록 중력이 급감하여 인간도 우주복만 잘 갖추면 어느 정도 지낼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지구인과 만나는 지적 생명체는 30-40cm 정도의 작은 랍스터다..(-_-;)..
중력이 강하니 길이가 긴 생명체는 있을 수가 없다.

3. 주인공은 인간이 아니고 바로 그 랍스터다.
직업은 선장. 배(여기서는 뗏목. 나중에 어엿한 범선 내지는 글라이더가 된다)를 몰고 행성 여기 저기를 다니며 무역을 하는 장삿꾼이다. 
장사 수완이 좋은 만큼 매우매우 똑똑하다. 그리고 부하들도 똑똑하다.

4. 사건의 발단은: 지구에서 보낸 무인 탐사 로켓이 각종 장비와 정보를 실은 채로 그 행성에 조난된다. 이를 찾으러 온 지구인들과 랍스터들이 조우하고, 지구인들은 랍스터들에게 그 로켓의 인양을 부탁하게 된다. 랍스터 선장이 워낙 영리해서 지구인 언어를 금방 습득하고 의사 소통이 된 것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 행성의 과학수준이 어마어마한 것은 아니다. 그냥.. 지구로 따지면 18세기 수준?

5. 중반부 부터는 본격 수색에 나서게 되는데, 지구인들은 여타 사정으로 직접 나서지 못하고 공중에 떠서 모니터 및 무선 연락을 랍스터들과 하게 된다.
즉, 후반부에서 본격 활약하는 주인공은 랍스터 선장과 그 부하들이다.

6. 그런데, 이 가재들이 진짜 신통방통하다. 온갖 고초와 모험을 겪는데 꿋꿋이 극복하는 과정을 보면 진짜 똑똑하기 그지없다.
그리고 진입 장벽이 높았던 전반부에 비해 모험으로 가득찬 후반부는 페이지가 그냥 죽죽 넘어간다.

7. 진짜 이 가재들은 산전, 수전, 심지어는 진짜 공중전(설마 이것도 겪을 줄은 예상 못했다)까지 겪는다. 
그런데, 이들 각종 모험들을 겪으면서 놀라울 정도로 학습을 해 나가며 지적으로 차곡차곡 업그레이드 된다.

8. 결국 로켓을 찾고 최종 작업을 하는 시점에서 랍스터 선장은 그동안 숨겨왔던 내심을 드러내며 지구인들과 최종 거래를 시작한다.
그것이 최종장 바로 전인 19장에서 랍스터 선장의 긴 대사로 나오는데, 그 대목이 진짜 대단하다.
장삿꾼이라 이윤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지적인 욕구와 장차 자기들 후손을 위한 과학지식의 전수를 논하는 대목 말이다.
사실 이 기나긴 대사는 실제로 고등학교 선생님인 저자가 대중들에게 과학 지식의 숙지와 전수의 중요성에 대해 힘주어 말해주고 싶었던 내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 읽고 나니 SF 판 서유기를 읽은 느낌이다.
이런 작품이 1954년에 나왔다니 놀라울 뿐이다.

초반 50여페이지의 진입장벽이 문제인데, 일단 책 말미에 저자가 이 작품의 설정에 대해 직접 쓴 설명문을 숙지하고나서 읽기 시작하길 권한다.
저자의 상상만으로 팬케이크 행성을 만들고, 탄탄한 물리 및 천문학 지식으로 튼튼하게 만든 설정에 대해 독자들이 허점을 지적해 주길 바라고 있다.
역시 선생님은 선생님이다. 이의 제기와 이에 이어지는 토론을 통해 뭔가를 가르치고 싶어하는 본능이 느껴진다.
인공적으로 별을 만든다면 바퀴 모양으로 뺑뺑 돌아가게 하여 원심력을 발생시켜서 중력으로 삼는다는 '링 월드'를 써서 MIT 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유도했던 래리 니븐과 궤를 같이 한다. 하드 SF 작가들은 다 이러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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