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4월의 눈처럼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37
멕 로소프 지음, 이재경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나는 길을 쳐다본다. 하나 물어볼게. 상상도 못하게 복잡하게 살면서 정상인 척하는 게 어른들의 세계야?

세상에 정상은 없-

됐거든."(154쪽)

 

아빠 길은 열두 살 딸 밀라를 '페르군타두라(Perguntadora)'라는 별명으로 부른다(길은 포르투갈어를 영어로 번역하는 사람이다). 질문이 많은 여자를 뜻하는 포르투갈어. 태어나서 처음 들어보는 요상한 발음의 이 단어가 책을 읽으면서 점점 정답게 느껴진다. 질문도 많고 호기심도 많고 직감과 상황파악력이 뛰어난 딸의 특별한 면을 사랑스럽게 생각하는(귀찮게나 버릇없게 여기지 않고!) 한 아빠의 다정한 말투가 내 귀에도 들리는 것 같다.

 

세상에 정상은 없다. 이 또한 길이 자주 쓰는 표현이다. 밀라의 말대로, 어른들은 복잡하게 엮이고 꼬인 삶을 끊임없이 '정상'이라는 포장지로 교묘하게 가리면서 산다. 어느날부터 그 겹겹이 싸인 포장지가 하나씩 하나씩 벗겨져갈 때, 진실의 맨얼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되었을 때, 어떤 얼굴로 그 진실을 바라보아야 하는 걸까. 진실을 마주보고, 때론 아프고 무자비한 진실을 딛고 일어설 힘은 무엇일까.

 

부활절 방학, 밀라와 길은 런던을 떠나 길의 오랜 친구 매튜가 사는 뉴욕을 방문할 계획에 들떠있다. 그런데 여행준비를 하던 중 그가 갑자기 사라졌다는 연락을 받는다. 그를 찾기 위해 길을 나선 '환상의 콤비'의 여정이 펼쳐진다. 의기투합한 이 콤비는, 아름답지만 행복하지 않은 인상을 받은, 유리집 느낌의 그의 집에서 남겨진 아내 수잔와 아기 가브리엘, 그리고 그를 기다리고 있는 충직한 개 허니를 만난다. 그리고 수잔에게서 매튜에게 산장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북부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4월에 내리는 눈으로 덮인

 

이 작가의 책은 처음인데, 뭐랄까 이야기를 풀어내는 스타일이 참 좋다. 사실 매튜의 행방만을 쫓아 가는 부녀의 여정만으로 구성되었다면 이 이야기는 다소 밋밋했을 것이다. 하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소녀 밀라의 시각에서, 밀라 의식의 흐름 기법(?)대로 그 여정 속에서 많은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튀어나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래서 심심할 틈이 없고 풍성하다.

아빠의 번역 이야기를 하며 번역과 언어에 대한 단상들이 나오다가, 매튜와 길이 젊었던 시절 같이 산속에서 조난을 당하던 때-그때 매튜는 길의 목숨을 구했다고 한다-의 이야기가 나오다가, 매튜의 실종에 대해 밀라가 단서들을 정리하고, 온갖 자능성을 타진하고 가설을 세우는 이야기가 나오다가, 밀라의 가장 친한 친구 캣(캐틀린의 애칭인데, 얘의 이미지도 그렇고 왜 야생고양이가 자꾸 떠오르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다시 현실로 돌아가 도로여행을 하고, 산장에서 매튜가 아닌 린다 아줌마와 제이크를 만나고, 제이크와 눈을 치우며 이야기를 나누고 그가 만든 음악을 듣고, 상점에서 캣에게 약속했던 멋진 부활절 달걀을 찾아내고, 매튜의 궤도에서 흩어져 있던 파편들을 하나씩 하나씩 찾아 모으고... 그래서 이 심플한(사실 많은 곳을 헤맸던 건 아니니까) 탐정들의 여정은 무척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남보다 눈치가 빠르면 때로는 외롭다'고 털어놓았던 소녀는, 이 시간들을 통해 한걸음 더 성장한다. 진실을 찾아가는 여정에서 발견한 사람들의 아픔에 대해서 헤아리고, 자신에게 거짓말을 했던 아빠를 이해하고, '누군가의 더러운 비밀이 되는 건 찝찝하다'고 하면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한 소년과 마음을 주고받고, 멀리 떨어져 있는 친구의 힘든 상황에 대해 가슴 아파하고 단단한 우정을 쌓아간다.

 

런던으로 돌아가는 밀라의 손에는 '파손주의'라는 빨간 스티커가 붙여져 있는 무지막지하게 큰 부활절 달걀이 들려져 있다. 상점 주인이 완강하게 팔지 않겠다고 해서 결국 돌아서야 했던, 캣의 슬픔을 달래줄 거라고 확신했던 멋진 카우보이 달걀이. 기발하고 반칙적인 거짓말로 그 달걀을 딸에게 선물한 길은, 부활절 방학 동안 열심히 자신의 친구를 찾기 위해 애써준 그 마음에 보답하고 싶었을 거다. 그리고 결코 쉽지 않은 여행을 함께 해 준 동지애의 표시로.

(환갑을 바라보는 아빠와 열두 살 딸의 대화와 서로 기대는 방식... 음, 뭐랄까 우리 문화에서 보면 꽤 낯설지만... 부럽기만 했다!!)

 

"나는 길에게 기댄다. 우리가 얼마나 단단히 묶여 있는지 아니까.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지금 당장은, 우리가 함께하지 못할 나중에 대한 생각은 잊기로 한다...(중략)... 나라고 늘 행복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어쩌면, 운이 좋으면, 세상에 고통을 추가하는 일만은 피해 갈 수 있을지 모른다."(2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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