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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샤쓰 ㅣ 눈이 깊은 아이 문학을 보다 1
방정환 글, 이일선 그림 / 눈이깊은아이 / 2014년 4월
평점 :
절판
만년샤쓰. 참 정겨운 제목의 이 이야기는 방정환 선생님이 몽견초란 필명(일제의 검열을 피하기 위해 그는 수많은 필명을 돌려가며 썼다고 한다)으로 1927년 잡지 <어린이>에 발표했던 원고를 되살린 책이다. 1927년이면 발표된 지 거의 90년이 다 되어가는데... 좋은 이야기는 세월을 거슬러 빛을 발한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가슴 따뜻한 감동과 깨달음을 준다. 아니, 모든 것이 흘러넘치도록 풍요로우면서도 오히려 마음은 더 공허한 시대라 더 그 울림이 크게 다가온다.
나는 사실 만년샤쓰에 대한 소중한 추억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2학년이었을 때, 담임선생님이 이 책의 주인공 창남이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셨던 것이다(그때는 현대화(?)해서 '만년셔츠'라고 들려 주셨다^^;). 키가 작았던 나는 교탁 바로 앞 맨 첫째줄에 앉아 선생님을 올려다보며 열심히 창남이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집이 타 버린 상황에서도 더 딱한 처지의 동네 사람들을 위해 가지고 있던 옷들을 나누어주었던 창남이와 창남이의 어머니. 추워서 떨고 있는 어머니를 위해 거짓말까지 해 가며 자신의 하나뿐인 셔츠와 양말을 벗어 드린 창남이. 새 원피스가 갖고 싶다고 부모님을 졸랐던 철없던 나를 너무나 부끄럽게 만들었던 이야기였다. 나도 창남이같은 사람이 되어야지,하며 일기도 썼던 기억이 난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나는 창남이. 여전히 밝고 쾌활하고 시원스럽게 잘 웃고, 누구보다도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창남이를 보면서 나도 덩달아 웃음이 난다. 이십 리 밖에서 학교를 걸어 다니면서도 언제나 씩씩하고, 다 해져서 너털거리는 구두를 헝겊과 새끼줄로 감아매고 오느라 생전 안 하던 지각을 하면서도, 체조 시간에 양복저고리를 벗으란 선생님의 호령에 맨몸 '만년샤쓰'를 보이면서도 언제나 구김살 없이 꿋꿋한 창남이. 하지만 그 시린 겨울에 맬가슴에 양복저고리, 다 해진 겹바지에 맨밥에 짚신으로 먼 길을 걸으며 얼마나 추웠을까. 그리고 아무리 밝은 창남이지만 친구들의 시선과 놀림이 왜 부끄럽지 않았을까.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저리다.
"한창남! 왜 웃옷을 안 벗나?"
창남이의 얼굴은 푹 수그러지면서 빨개졌다. 그가 이러기는 참말 처음이었다.
한참동안 멈칫멈칫하다가 고개를 들고,
"선생님, 만년샤쓰도 좋습니까?"
"무엇 만년샤쓰? 만년샤쓰란 무어야?"
"매 매 맨몸 말씀입니다."(26~27쪽)
항상 유쾌하게 웃던 창남이가 마지막에 어머니 이야기를 하며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는 모습이 자꾸 떠오른다. '남이 걱정이 있어 얼굴을 찡그릴 때에는 우스운 말을 잘 지어내고, 동무들이 곤란한 일이 있을 때에는 좋은 의견도 잘 꺼내는'(12쪽) 창남이에게 그런 아픔이 있었다니. 날마다 한 가지씩 옷이 없어지는 이유를 묻던 체조 선생님도, 창남이의 모습을 보고 고아원이다, 밥 얻어먹으러 다니는 아이 같다고 떠들던 아이들도 아마 같은 마음으로 함께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여덟 살의 내가 처음 만났던 창남이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때 일기장에 썼던 그 다짐도. 어른이 되어서 떠올려보니 참 부끄럽기만 하다. 자기연민과 번민으로 적지 않은 시간을 보냈던 것이 부끄럽다. 창남이는 결코 자신의 아픔 속에 갇혀있지 않았는데. 자신의 처지를 부끄러워하거나 비관하는 대신, 다른 이들의 아픔을 더 헤아리고 보듬어주었는데. 나는 창남이보다 훨씬 큰 어른이지만 마음의 키는 너무나 한참 아래다. 부끄럽고 막막하지만 마음을 다잡아본다. '만년셔츠'입은 창남이의 이야기를 열심히 들려주셨던 선생님을 떠올리면서. 그리고 33세의 나이에 서울대학병원 병실에서 "어린이를 두고 가니 잘 부탁하오"라는 말을 친구들에게 남기고 눈을 감은 방정환 선생님을 생각하면서.
그 어두웠던 시대에서도 오직 어린이들을 생각했던 방정환 선생님. 일제의 눈을 피해 필명을 써가며 창남이의 이야기를 쓰면서, 아마 행복한 얼굴이셨을 거다. 우리가 창남이처럼 이 세상을 살아가기를 바라셨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