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우울증 - 나는 이런 결혼을 꿈꾸지 않았다
김병수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12월
평점 :
품절


우울한 사모님들의 마음을 명화에 빗대어 가만가만 쓰다듬어 주는 따뜻한 책. 읽는 내내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녀의 깊은 속내를 그림을 빌려 헤아려보고 싶었'(11쪽)다는 저자의 마음이 전해져온다. 수많은 임상경험을 거친 정신과 의사, 우울증 분야의 전문가지만 결코 '다 알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고맙게 느껴졌다. 저자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에 대한 근원적인 어려움에 대해서, 우리가 얼마나 신중해야 하는지를 여러번 강조한다. 

 

'다른 사람의 관점으로 생각해보고,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말이 과연 쉽게 성립될 수 있을까? 이것도 쉽게 이루기 힘들다. 어떤 사람의 인생 역사와 그 사람을 둘러싼 현실은 마치 우주와 같기 때문에 모두 파악하기는 불가능하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과 타인이 바라보는 방식은 태어나면서 경험하고 학습된 결과물이다...(중략)...우리는 결코 한 사람이 다른 누군가와 동일한 방식으로 세상ㅇ르 이해할 수 있다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238쪽)

정말 끄덕여지는, 또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주는 이야기다. 누군가를 아끼고 생각해준다는 이유를 들어 너무 쉽게 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는지, 나의 마음에 비추어 다른 이의 이상과 욕구를 꿰뚫고 있다고 착각하지 않았는지(부끄럽게도 적지 않았던 것 같다). 저자의 표현대로, 세상에는 너무 많은 말이 흘러넘치고 있다. 억지로 다른 사람의 마음을 설명하려 하고, 다른 사람의 진심이 무엇인지에 대해 함부로 말하다가 오히려 그 마음을 왜곡하고, 그래서 갈등의 골이 깊어지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좀 더 겸손한 눈을 가질 것, 다른 사람의 마음을 쉽게 속단하지 않는지 잘 살필 것,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함부로 말하지 말고 침묵할 것...

 

어렸을 때 듣고 (그때는) 놀랐던 얘기가 문득 생각난다. 미국에서 가장 많은 수입을 벌어들이는 직업 중에 정신과 의사가 늘 손에 꼽힌다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시간당 몇백 달러씩을 지불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정신과 클리닉에서 털어놓는다는 사실 말이다. 과학기술은 나날이 더 발달하고, 세상은 갈수록 더 편리하고 화려해져가는데, 사람들는 자신의 이야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누군가가 더욱더 간절해지는 것 아닐까. 사람은 누구나 이해받고자 하는 절실한 욕구가 있고, 이것은 인간의 다른 어떤 본능적인 욕구보다 강한 힘을 지니니까 말이다.

아무리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문제가 없는 여유로운 삶이라도, '우울하고 삶에 의미가 없다'는 '사모님'들의 이야기를 그저 '배가 불러서 그런 것'으로 취급해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런 말이 사람을 진짜 아프게 만든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무척 공감한다. 그래서 더욱 저자가 내미는 속깊은 '그림 처방'이 따뜻하게 느껴진다. 왜 그녀들의 가슴이 답답하고 괴로운지 그 아픔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주는 그림들, 마음 한 구석으로 밀려나 있던 삶의 용기를 되찾을 수 있게 손을 잡아주는 그림들... 그 그림들의 위로를 오롯이 품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고맙다.

 

'삶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지는 모든 경험을 거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그리고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것을 향해 행동하는 것. 윈슬로 호머의 <여름밤>(1890)만큼 이런 마음가짐과 행동가짐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 있을까? (중략) 삶 또한 이런 것 아닐까? 누구에게나 밝음과 어둠이 함께 찾아온다. 어느 것 하나도 거부하지 않고 모두를 받아들일 수 있을 때 세상 속에서 춤추며 살 수 있다.'(303~304쪽)

앗, 좋아해서 책상 앞에 붙여놓고 자주 들여다보는 그림, 윈슬로 호머의 <여름밤>을 여기서 만나니 이렇게 반가울수가. 게다가 이 그림처방전(?)의 설명도 무척 와 닿는다. 무엇이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지, 어떤 활동이 삶의 의미를 느끼게 하는지 고민하고 바로 무조건 행동에 옮기라는 조언에 밑줄을 그어본다. '파도가 아무리 거칠어도, 바람이 불고 덮칠 듯해도 삶에서 주어지는 모든 것을 가슴에 품을 때 비로소 우리 인생도 춤이 된다(304쪽)'는 것, 그렇게 순간순간을 소중히 품고 춤추며 살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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