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 - 창의성을 깨우는 열두 잔의 대화
김하나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의 평범한 일상 속에 얼마나 많은 반짝임이 녹아있는지를 유쾌하게 깨닫게 해 주는 책을 만났다. 평소에 내가 하고 있었던 생각들과 맞아 떨어지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혹은 마음 속에 있으면서도 뒤죽박죽 정리가 안 된 생각들을 속시원히 좍좍 풀어주는 부분이 많아서 '맞아맞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면서 읽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퇴근길에 '나'는 단골인 작은 술집에서 '그녀'와 만나 대화를 주고받게 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한다. 재즈곡 <미스티>가 흘러나오는 순간 '나'는 그 곡의 탄생에 대한 얘기를 꺼냈는데, 옆자리에 앉은 '그녀'가 말한다. 그런 '창의성의 신화'에는 부작용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그리고 어쩐지 셜록 홈스가 왓슨과 나누는 대화를 내내 연상시키는, 그녀가 주도권을 잡는 다소 일방적인 대화가 이어진다. 재기발랄하면서도 진지하게.
'창의성의 신화'란 말에 무척 공감이 갔다. 워낙 붕어빵틀 같은 교육과정을 거치며 성장했기 때문일까, 창의성 창의성 하면서도 우리는 내심 창의성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깃드는 비범한 능력으로 여기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나 싶다. '아이디어와 영감은 공기 중에 떠다니고, 선택된 누군가가 거기 사로잡혀 신탁처럼 그걸 받아쓰기만 하면 된다는 신화'(18쪽)가 우리를 창의성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있는 것이라는 이야기다.
'창의성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특별한 소수만의 전유물이 결코 아니에요. 말했죠? 창의성은 하나의 태도라고요.'(28쪽) 그렇다. 창의성은 어떤 특별한 감각을 지녔느냐가 아니라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있다는 것.
거창하고 모호한 '창의성'이라는 말 대신에 벽돌처럼 쓸 수 있는 구체적인 말 '아이디어'를 사용하자는 그녀의 이야기는 물 흐르듯이 계속 이어진다. 우리가 겪는 모든 것에서 반짝이는 아이디어들이 존재한다는 것, 일상에서 깨알 같은 씨앗들을 발견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 서로의 아이디어들에 대해 마음을 열고 그것들을 곤죽이 되도록 굴리고 살을 붙이며 소통하는 것... '나'와 '그녀'가 대화의 연료인 셰리주를 기울이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이야기는 점점 더 풍성해져간다(셰리주... 이거 도수가 은근 강해서 홀짝대다 보면 몽롱해지던데, 이 사람들은 어째 갈수록 더 생기발랄해지는지!^^;).
대화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 에피소드와 온갖 인용들을 만나는 재미도 쏠쏠하다. 분식집 아주머니가 테이블을 옮기는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해서 노상에 세워둔 차에 꽂아둔 중고차 딜러의 광고지, 치즈가 든 샌드위치에 뿌린 고춧가루, 바르셀로나 시의 로고 디자인, 피카소의 <게르니카>의 스케치 과정, 온갖 소설과 영화 이야기, 고양이 사진가 쿠퍼, 간디의 비폭력 투쟁 이야기, 올레길의 이정표, 적정기술... 꽤 종횡무진으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이야기들 속을 이리저리 떠다니면서, 내 안의 곤죽에도 깨알같이 살이 붙는 느낌이 들었다. 호기심의 안테나가 전 방위적인 사람과 에너지 넘치는 대화를 나누고 기분좋게 잠자리에 드는 기분이랄까. 따스하고 풍요로운.
이 세상에는 우리가 새롭게 눈을 뜨고 방법을 찾을 씨앗들이 무궁무진하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문제에 부딪쳤을때, 늘 하던 식으로 하면서 불평을 늘어놓기보다는 사소한 것이라도 시도해보며 '이러면 좀 낫지'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다. '세상에 대한 불평불만을 말하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나아지게 할 아이디어를 내는 게 훨씬 낫지요'(246쪽)라는 그녀의 이야기를 기억하면서. 더 많은 반짝임을 발견하고, 더 많이 감탄하고, 더 나은 세상을 끊임없이 꿈꾸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