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에서 - 삶의 의미를 찾아 떠난 300일의 마음수업
이창재 지음 / 북라이프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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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올 한해를 되돌아보며 정리할 때가 다가오고 있다. 나름대로 열심히 달려왔지만 어쩔 수 없는 아쉬움과 후회스러움도 고개를 드는 이때, 마음 속에 잔잔한 울림과 위로를 주는 책 한 권을 만났다.

 

오직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곳, 백흥암. 사시사철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을 위한 선원을 열지만 외부인들에는 1년에 단 두 번 부처님 오신 날과 백중날에만 문을 여는, 세상과 철저히 차단된 곳이라고 한다. 다큐멘터리 영화감독인 저자는 젊은 날의 영혼을 온통 사로잡았던 첫사랑 같던 불교를 떠올리며, 자신이 가지 못한 길에 대한 절실한 궁금함으로 백흥암의 굳게 닫힌 문을 두드린다. 예상대로 촬영 허가부터 쉽게 나지 않았던 영화는 시작부터 가시밭길이었다고 한다. 그 후 300일이라는 시간은 얼마나 다사다난했던지, 오죽하면 '매번 촬영차 절에 내려갈 때면 휴가 마치고 복귀하는 이등병의 심정이었다(278쪽)'고 했을까!

 

자신이 가진 모든 것, 지금까지 누려왔던 편안한 생활을 포기하고 출가를 택한 비구니 스님들, 그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으며 마음 속이 차분히 맑아지는 것 같았다. '수덕사의 여승'같은 노래를 들으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뭔가 기구한 사연이나 이루지 못한 사랑 때문에 출가를 결심하게 된 분은 없었다. 가을바람에 낙엽 떨어지듯 자연스럽게 때가 되어 출가한 분들도 있었고, 가족과 사회의 울타리를 부수고 힘들게 출가한 분들도 있었지만 오직 부처님의 마음으로 살겠다는 결심으로 묵묵히 걸어가는 수행의 길.

 

그동안 궁금했던 스님들의 실제 생활에 대해서 많은 것을 알게 되었고, 느낀 점도 많았다. 출가를 결심하고 나서 삭발하기 전 짤게는 한 달에서 길게는 6개월 정도 절에서 그냥 사는 시간, '관찰의 시간'을 거치고 나면 은사 스님이 정해지고 삭발을 하고 행자 생활을 한다고 한다. 수습 스님인 행자 과정은 새벽부터 그야말로 쉴 틈이 없는 바쁜 생활의 연속이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사람들을 위해 일을 했을 때 내 마음에서 어떤 것들이 튀어나오는지를 보면서, 그 감정들을 보듬고 부처님 같은 마음을 갖기 위해 노력하는 행자 과정을 무사히 마친 후 수계교육원에서 공부한 후 계를 받고 스님이 된다.

고된 일을 하면서 내가 아니라 남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닦는 행자 과정, 절에서의 가장 굳은 일인 해우소 청소와 불 때는 소임인 화대 임무를 법랍이 높은 스님들이 담당하는 것... '천 년 넘게 이어져 내려오면서 자생적으로 만들어진 불교 내부의 전통과 규칙은 생각보다 훨씬 지혜롭고 사려깊었다'(121쪽)는 저자의 말에 동감하며 책장을 넘긴다.

 

안거와 만행, 도반과 사제 관계... 저자가 만난 스님들의 삶의 모습들이 담담하게 펼쳐진다. 세속의 관계를 끊고 출가했으나 이곳에서도 부모와 자식 같은 관계가 만들어지고, 보고 싶다는 말 한 마디에 몇 시간을 달려가 밤을 새우는 우정이 만들어진다.

감옥보다도 더 지독한 자기 통제의 공간, 무문관에 대한 이야기도 기억에 남는다. 감옥처럼 창문에조차 철창을 덧댄 세 평 남짓한 방에 스스로를 가둔 채 하루 한 끼만 먹으며 처절하게 정진하는 곳, 그 고통을 고비고비마다 넘기며 3년씩 견디고 나오는 마음들은 어떤 것일까. 마음의 공부라는 것이 세속의 공부처럼 뭔가 형태로 남아 보상을 받는 것도 아니고, 꼭 어떤 성취를 얻는다는 보장이 있는 것도 아닌 혹독한 수행의 길을 기꺼이 택한 분들을 생각하니 숙연해진다.

'살아가는 날들의 답은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길을 찾는 것, 자신의 길을 믿고 묵묵히 걸어가는 것, 그것이 아닐까? 무문관을 나서며 드는 생각이었다.'(257쪽)

 

향기로운 책이다. 백흥암에서 성불도 놀이에 몰두하시는 스님들의 모습, 천 포기의 김장을 함께 힘을 합쳐 영차영차 하며 달아오른 얼굴들, 참선 때마다 막대를 이용해 허리를 꼿꼿이 세우시던 영운 스님의 얼굴,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시는 소현 스님과 선우 스님, 무진 스님의 맑은 미소가 눈에 어른거린다. 밥을 하는 것도, 아궁이의 재를 치우는 것도, 모든 일상적인 생활에서 수행이 아닌 것이 없었던 스님들의 삶을 생각해본다. 자신을 돌아보고 남을 생각하는 모든 것이 수행이라는 것을 우리는 바쁘다는 핑계로 늘 밀쳐둔 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수행이 삶이고 삶이 곧 수행인 날들, 머리 깎지 않은 우리도 그런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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